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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전 / 디스토피아를 닮은 유토피아

이선영

디스토피아를 닮은 유토피아

공장 전 (2008. 5.16--8.17, 일민 미술관)

  

이선영(미술평론가)

  

 ‘한국 산업현장의 이미지’라는 부제로 열린 공장 전은 바닥에 짐승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는 도축 공장부터 티끌하나 없는 우주항공 산업 단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공장지대를 5명의 젊은 사진가들이 찍은 전시이다. 여러 종류의 공장을 가감 없이 그대로 찍어 놓은 작품들은 사진의 사실 기록적이고 수집광적인 측면을 두드러지게 한다. 공장 풍경의 기계적 정밀함은 사진이라는 복제 매체와 잘 어울린다. 생산력 증대를 위해 무자비하게 자연이 착취되는 장면이나 현장 속에 같이 찍혀진 노동자의 모습에서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증후가 발견되지만, 대체로 개인적인 감정의 무게가 실리지 않은 냉정한 사실 그 자체를 강조한다. 소비할 때 빼고는 ‘쿨cool’ 한 것이 세련된 태도로 간주되는 현대 사회에서, 감정이나 메시지의 과부하가 걸리지 않은 이러한 중성적 거리감은 때로 설득력 있다. 


전시 방식은 개별 작가의 시점을 중시하기보다는 비슷한 테마별로 묶여있고, 2층의 전시장의 일부 섹션을 제외하고는 액자도 없이 군집으로 붙여 놓은 형식이다. 마치 쌓아놓은 상품이나 컨테이너처럼 사진 가장자리의 네 모퉁이를 맞추어서 거칠게 배열했다. 그것은 많은 사진을 효과적으로 분류하고 전시하는 방식인 동시에, 공장 풍경이 가지는 익명성과 건조함을 강조한다. 소비에만 익숙한 현대인에게 이러한 산업 풍경은 낯설고도 기이하다. 탈산업사회에 대한 전망이 지나치게 과장된 나머지, ‘굴뚝 산업’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으로 생각되기 쉽지만, 이 전시의 사진들은 산업의 세계가 여전히 육중한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소비자로서의 일반인이 접하는 최종적인 상품의 세계가 가지는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그것이 생산되는 현장은 가상과 현혹이 들어설 여지가 없기에 현실의 적나라한 모습이 반영된다. 


산업시대의 전형적인 공장은 그때그때 우연적으로 자연이 제공하는 자원을 활용해왔을 뿐인 전통사회를 극복해왔다. 백승철의 [인천 남동공업단지]나 강상훈의 [현대 오일뱅크 대산 공장]은 자연 자원을 대량으로 가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도로 형식화된 세계로서, 그 자체가 거대한 기계들의 집합체로 보인다. 정밀한 사진으로 드러난 것들은 노동 생산성의 증대를 위한 장치들이다. 많이 소비하는 것이 미덕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량소비를 위한 전진 기지들은 비인간적이다. 생산력 증대를 위해 고안된 공장 설계에서 노동자의 위치는 기계의 일부분으로 편입된다. 소비의 유토피아를 위한 생산 공장은 유토피아와 거리가 있는 곳이지만, 주어진 목적 합리성에 의해 체계화되고 균질 화 된 환경은 유토피아의 또 다른 의미를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세속성과 합리성의 결합은 유토피아에 대한 잠재적 가능성만을 앞당겼을 뿐이다. 즉물적 시점이 완화되는 야경만이 24시간 불을 밝히는 미래 도시 같은 휘황찬란한 면모를 종종 보여준다. 


대량소비를 위한 생산기지가 보다 원초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가공물이 자연일 때이다. 구성수의 채석장 풍경은 어머니-지구를 파헤쳐 그것을 생산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 드러나 있다. 지구 자원에 대한 대량 소비는 기생충처럼 숙주를 피폐화시키면서 스스로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다. 이정록이나 강상훈의 작품에서, 닭이나 돼지를 토막 난 고기로 생산하는 현장은 생산 시스템에 대해 더 이상의 중성적 관점을 유지하기 힘들다. 작가들은 애써 냉정하게 찍었지만, 보는 관객은 그렇지 않다. 완전히 목숨이 떨어지지 않은 채 거꾸로 매달려 털 뽑히는 닭들이나,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비좁은 곳에서 알 낳는 기계로 전락한 모습은 대량생산, 소비 시스템에 스며있는 잔인한 메카니즘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자연은 무한히 착취되지만은 않는다. 자연은 이에 저항하며, 예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대응 방식을 만들어낸다. 자연에 대한 대량 착취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촛불 시위가 연일 열리고 있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도축 공장의 적나라한 사진을 보는 것은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인간을 자연의 주인으로서 선포하는 근대 계몽주의는 전통적 공포를 없앴지만, 새로운 공포를 불러들였다. 그것은 더 이상 어두운 숲이나 거친 들판에서 발생하는 공포는 아니지만, 그 파괴력은 더욱 막강하다. 현대문명은 투명한 백색 공포를 도래시켰던 것이다. 그 공포는 이제 모든 것이 드러나 보이는 투명한 사각형 작업장에 존재한다. 사진들은 세세히 나누어진 분업 체계에 속한 인간 군상들을 보여준다. 성냥 공장이나 과자 공장 같은 영세 공장이나 원자력이나 항공 산업처럼 첨단 분야를 가리지 않고, 노동자의 모습은 부속품으로 그려진다. 


장용근의 묵뚝뚝한 공장 노동자 사진은 도구적 합리성 및 관료적 장치 속에서 추상화 인간의 모습이다. 한명의 개인이기 보다는 전체의 일부분으로 보이는 그들은, 공장 생산품처럼 틀 지워진 모습이다. 그것은 과학과 기술, 그리고 이성은 인간을 사물화 시키고 있음을 예증한다. 장용근이 찍은 원자력 공장의 사무실 풍경은 조명, 계기판,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사각형으로 이루어졌으며,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려고 한다. 그러나 전능한 원격 조절 장치는 체계로의 집중이 낳을 수 있는 거대한 위험을 유예하고 감추고 있을 뿐이다. 기술은 진보와 축적에 대한 규칙화된 방식을 가지지만, 시스템 속의 인간은 감시와 규율에 얽매여 있다. 여기에서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의 완전한 분리가 이루어진다. 공적 세계는 기능적 효과만을 중시하는 체계이다. 이러한 기준으로만 측정되는 체계들은 노동자를 위해서는 닫혀있고, 무한한 생산력을 위해서만 열려있는 듯하다. 


이 전시의 사진가들이 찍은 공장들은 사실주의에 충실한 산업자본주의의 풍경이지만, 같은 시대의 산물인 모더니즘과도 관련된다. 지금 여기라는 동시대성과 하찮은 사실을 미적 대상으로 주목하기 시작하는 때가 근대이다. 평범한 일상을 기념비적인 스케일로 재현하는 방식 자체가 근대 민주주의의 산물이다. 백승철이 찍은 인천지역 항구의 풍경이나 구성수의 울산 공단의 풍경들이 가지는 완연한 인공성은 리얼리티가 자연스럽게 소여된 것이 아니라, 조립된 것임을 알려준다. 가상으로 보일만큼 우아한 기하학으로 가득한 풍경들은 명증한 사실 자체가 구성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현실 자체가 구성된 것이고, 사진은 구성에 대한 구성인 것이다. 따라서 현실의 단편으로서의 사진은 사실도 허구도 아니다. 사진은 회화와는 다른 샤프 포커스나 색다른 각도를 통해 객관적 사물성에 주목하지만, 그것이 단편이자 표면이며 어떤 맥락 속에 놓이고 읽혀진다는 점에서 단순한 반영을 넘어선다. 사진이 가지는 분석적이고 실증적인 사물에 대한 기술(記述)을 구체적인 의미로 엮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아있다.       

  

출전; 컬처뉴스(www.culturenews.net) 기사입력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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