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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름 키퍼 전 / 역사의 끝에서 바라본 풍경

이선영

역사의 끝에서 바라본 풍경

안젤름 키퍼 전 (2008년 4월 4일--5월 24일, 국제 갤러리 신관) 

  

이선영(미술평론가) 

  

 1945년 생으로, 전후 독일에서 금기시된 역사적 소재를 과감히 끌어들여 현대회화의 신화적 존재가 된 안젤름 키퍼의 전시는 광활한 자연에 투사된 인간 역사가 있다. 벽면과 전시실 중앙 등 1층 전체를 차지하는 작품 [양치식물의 비밀]은 이 전시의 부제이자 대표작이다. 채집된 식물 표본처럼 견고한 20개의 금속 틀에 안치된 식물들은 그것들이 속해있던 생태계도 같이 수집한 듯한 바탕 면 위에 배치되면서, 전시실 벽면 전체를 채운다. 흙덩어리를 비롯한 혼합매체로 이루어진 두터운 바탕 면은 식물의 단순한 배경이기 보다는 오래된 대지와 공기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양치식물은 거의 살아있는 화석으로 간주될 만큼 긴 역사를 가지는 생물로, 이번 전시의 많은 작품에 등장하는 식물 모티브가, 사회와 역사로 대변되는 인간적 시간 주기에 비해 월등히 긴 자연의 주기를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자연의 긴 주기는 성좌와 은하수로 가득한 우주로 투사되기도 한다. 2층에 전시된 작품 [오리온]은 점점이 뿌려진 하얀 은하수 위에 떠있는 별자리 위에, 식물, 글자, 숫자들이 새겨진 작품으로, 우주적 시간과 인간적 시간을 대비하거나 교차시키는 키퍼의 중층적 표현 방식을 집약한다. 1층 전시장 가운데 식물들 앞에 세워진 낡은 건물 두 채에 달린 녹슨 문은 봉인된 역사를 상기시킨다. 그것은 순환하며 재생하는 자연과 달리, 시간의 시험에 무력한 인간의 기념비를 표현한다. 황무지로 뚫린 길을 뒤덮은 식물 뭉치가 있는 [땅 위의 하늘] 역시, 한 문명의 종말 이후에도 건재할 자연을 상징한다. 무너지고 녹슨 퇴락한 분위기가 살아있는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상징을 통해서이다. 키퍼가 섭렵했던 식물학, 신학, 연금술 등은 그가 구사하는 상징주의의 무궁무진한 아카이브가 된다. 


가령 전시실 밖으로 보이는 납으로 만들어진 책은 연금술에서 어둡고 둔중하지만 금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금속을 상징한다. 신의 예언과 역사가 기록된 지식의 보고로서의 오래된 책의 이미지는 일시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보다 긴 시간의 주기와 접할 수 있는 귀중한 존재임을 예시한다. 인간, 자연, 역사, 신화, 우주 등 그가 회화에 끌어들인 주제들은 단번에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되풀이하여 해독되어야할 비밀스러운 기호들로 나타난다. 그것이 몇 초 이내에 해독되지 않으면 유통되지 않는 부박한 신호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끌어들이는 요소이다. 키퍼가 형상화한 광활한 대지와 하늘에는 지나간 것이라고 서둘러 폐기해 버린 오래된 기호와 사물들이 가득하다. 거기에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다시금 복잡한 상징의 그물망으로 엮여진다. 특히 키퍼의 작품에 나타나는 숫자나 기호들은 상징적 우주로 진입할 수 있는 비밀스런 열쇄가 된다. 


기호가 관례적인 형식이 아니라 사물과 분리 불가능하게 얽혀있는 연금술적 사고는, 사물과 분리됨으로서 투명해졌으나 동시에 빈곤해진 시각 언어를 풍부하게 해주는 요소이다. 키퍼의 작품에서 성좌, 그리고 식물과도 연결되는 연금술적 모티브는 거대한 순환주기를 가지는 자연의 영원성을 표현한다. 예측할 수 없는 기후처럼 변화무쌍한 그의 바탕화면은 연금술적인 변성의 이미지가 구체적인 소재 뿐 아니라, 형식에도 관철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묵시록적인 파괴와 분리될 수 없는 갱생과 재생의 이미지는 한 화면에 공존하면서 역동적인 긴장을 자아낸다. 숫자와 글자 같은 기호들이 떠 있는 중층적인 화면 위에 작은 옷들이 붙어있는 작품 [태어나지 않은 자들]처럼, 작품은 사자와 산자 뿐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까지 아우르거나, 작품 [땅 위의 하늘]처럼 지상과 하늘, 세속과 초월적 세계를 맞붙여 놓는다.  


회화라는 정지된 장면에도 불구하고, 대조되는 범주들의 공존이 내포하는 에너지의 낙차로 인해 역동성이 발생한다. 그것은 중층적 깊이를 주는 얼룩과 더불어 끊임없는 변화의 환영을 낳는다. 이러한 비전은 질풍노도를 구가 했던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와 공유하는 것이지만, 추상표현주의의 세례를 받은 현대화가인 키퍼에게 보다 장대한 스케일로 확장되고 있다. 그는 회화를 하나의 거대한 연금술적 화로로 삼아 억압되고 금기시된 소재를 비롯한 많은 소재를 쓸어 넣어 주체의 뜨거운 열기로 변용시킨다. 특히 역사나 민족, 대지 같은 키퍼의 주요 모티브는 형식주의에 의해 자체 동력이 사라진 현대회화를 부활시키는 계기가 된다. 전후의 독일에서 금기시된 역사는 키퍼의 회화에서 묵시록같은 종교적, 신화적 소재를 통해 복귀되었다. 제 3제국의 나치나 비극적인 유대인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독일의 풍토에서 역사는 신화적 사고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독일 근대사의 비극을 장식했던 나치즘이 가지는 유사(類似) 천년왕국설과 선조성을 띈 유대의 역사관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반된 상황을 넘어서, 서구 역사에 깊이 각인된 공통된 시간관이 존재한다. 인간과 문명의 흔적이 기호로만 남아있는 광활한 폐허 속에 잠재된 불이나 잿더미 같은 이미지는 자연을 극복한 문명과 그 주인공인 인간  모두가 최후의 심판에 의해 끝장난 종말적 풍경이다. 창조로 시작되어 종말로 끝나는 이야기에서 전능한 구세주는 사라지고 잔여물만이 남아있다. 키퍼가 화면에 적극 끌어들이고 있는 기호를 비롯한 다양한 소재들은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의 의미를 보여주는 듯하다. 카알 뢰비트에 따르면 성서는 서구인에게 친숙한 역사의 모델이다. 시초에 시작되고(태초에...) 종말의 비전으로 끝난다(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첫째 권은 창세기요, 마지막 권은 묵시록이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는 오직 하나의 진보가 있다. 신앙과 불신앙, 그리고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간에 계속적인 대립을 향한 진보인 것이다. 여기에서 역사는 종말론과 중첩된다. 새로운 미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개념을 창조해야 한다. 새로운 창조를 위한 파괴는 불가피하다. 다양한 층위에 속하는 기표들이 쇄도하는 키퍼의 파국적 장면들은 구원사가 세속적 진보이론으로 변형되고, 그것이 물질주의와 전쟁의 광기를 낳은 역설적 상황이 내포되어 있다. 파괴를 통한 창조라는 키퍼의 묵시록 패턴에서는 이전시대의 낭만주의부터 표현주의에 이르는 풍토, 즉 독일의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을 사로잡았던 총체성의 갈망을 엿볼 수 있다. 독일의 심오한 정신성으로 대변되는 이러한 갈망에 있어 좌파와 우파는 크게 구별이 되지 않았다. 


피터 게이는 [바이마르 문화]에서 유럽에 속해 있으면서도 ‘서구의’ 가치로부터 분리시켜, 자신을 이보다 격상시키려 했던 것은 독일적 이념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고 지적한다. 독일의 근현대 예술에서 신화와 자연, 그리고 공동체(민족)는 물질주의와 합리주의 문명과 대조되는 것으로 반복해서 호출되곤 한다. 그것은 지금 여기로부터 단절하고 역사의 문명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 무한한 시간과 공간이라는 미지의 영토로 도약하려는 숭고한 충동이다. 키퍼의 풍경화는 시각적인 면 뿐 아니라 관념적인 면에서 광활한 시야를 확보한다. 어두운 카오스의 에너지로 가득한 자연에는 인간과 역사, 신화가 투사되어 있으며 시초와 종말은 동시에 언급된다. 그러나 낭만적 폐허를 채우는 상징의 부스러기나 잡동사니만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구가되었던 회화의 부활을 이룰 수는 없었다. 키퍼의 작품은 추상표현주의로 대변되는 모더니즘의 유산과 종합됨으로서 회화의 토양을 다시금 비옥하게 만들었다. 


출전; 컬처뉴스(www.culturenews.net) 기사입력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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