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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전 /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 관계를 위한 탐색

이선영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 관계를 위한 탐색

오래된 미래 전 (2008.12.11--2009.2.15, 서울 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

  

이선영(미술평론가)

 

 ‘오래된 미래’ 전은 날로 험악해져가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돌아본 전시이다. 본래 인간은 자연의 극소한 일부에 불과했으나 물질적 진보, 요컨대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통해 마치 자연으로부터 자율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양, 전체 시스템 속에서 그 비중이 커진 지배적 구성인자가 되었다. 그러나 자연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전체 계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를 감행하고, 이는 목전의 이익만 탐하는 인간들에게 재앙처럼 다가오게 된다. ‘오래된 미래’라는 역설적 표현에 내포되어 있듯이, 이 전시는 미래라는 시점에 과거를 배치한다. 이러한 배치는 미래를 과거와의 단절로 간주하는 진보주의적 비전을 거부하는 것이다. 전시 타이틀과 동명인 책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오래된 미래]에서 인간이 올바른 미래를 찾는 노력은 불가피하게 자연과의 더 큰 조화를 이루는 어떤 근본적인 패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존재해왔던 가치, 즉 자연 질서 속에서 우리의 위치, 우리 서로서로의, 그리고 우리와 지구 사이의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알아보게 하는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라는 대안적 비전은 이성과 도구를 통해 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되어 자연을 좌지우지하려는 환상에 대한 반성을 포함한다. 이러한 환상은 과학기술주의와 결합한 진보사상에 의해 실제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원시 지구의 물적 조건 속에서 살아있는 물질인 생명의 탄생을 비롯하여 진보는 잠재적인 면에서 가치 있는 것이지만, 진보의 구체적 실현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러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사회적 관계는 소수에게로 집중되는 이익을 위해 다수가 희생되는 방향으로 흘러왔고, 그 다수에는 사회적 약자 뿐 아니라 자연도 포함되었다. 그것은 물질적 진보라는 단선적인 길(모델)만을 인정함으로서 생겨난 폐해이다. 이에 대한 균형을 위해서는 현실도피나 몽매주의가 아니라, 또 다른 의미의 계몽과 이성이 필요하다. 21세기의 새로운 비전이 될 생태적 사고는 단순히 자연 회귀 같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그래서 결국은 체제 안주적인 발상을 넘어, 진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이 전시에 출품된 작품의 면면은 생태주의에 대한 비전을 구현함에 있어, 모호한 문명비판이라는 초월적인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현대성과 진보에 대한 다시 읽기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손과 사고의 움직임이 균형을 이룬 결과라고 믿는다. 이들의 작품은 전망 없는 비판이나, 비판 없는 전망을 넘어서고 있다. 구체적 현실 비판은 전망을 포함하는 것이고, 올바른 전망을 가져야만 문제의 핵심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미래’는 개인이나 사회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문제가,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의 문제와 연관된 것임을 암시한다. 관객이 처음 보게 되는 여락의 작품은 로드 킬 당한 동물의 사체를 소재로 한다. 인간만 다닐 수 있는 배타적인 통로인 고속도로는 생태계를 가로지르기 힘든 부분들로 조각내며, 그 무시무시한 속도로 수많은 희생물을 낳는다. 정은정의 작품에서 머리만 남은 사체 역시 희생물을 연상시키는데, 제의적 과정이 생략된 낱장의 사진들은 그로테스크한 면모를 보인다. 대만출신의 작가 다니엘 리의 합성 사진들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연을 보여준다. 


생물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적대세력의 모습을 흉내(의태)내곤 하는데, 자연물에 박힌 인간의 얼굴들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내재된 긴장감을 보여준다. 일본작가 우에마쓰 타쿠마의 작품에서 종과 종 사이의 만남은 괴물이 가지는 양면성--금기의 위반에서 야기되는 괴기스러움과 일탈적 해방감--을 가진다. 불길함보다는 축제적인 활기를 느끼게 하는 그의 작품 속 자연들은 인간의 분류체계를 초월하여 상호 침투하며 공존한다. 김인배의 작품은 형식적으로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넘듯이, 내용적으로 사람과 동물, 사람과 인공물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물고기를 닮은 유연한 형태는 억압적 체계를 빠져나가는 적절한 형태로 보이며, 목전에 펼쳐진 분해된 사물을 종합적으로 인지하는 거대한 조상은 전능한 존재를 떠오르게 한다. 강태훈과 공공엘피는 인간이 투쟁적으로 점유하는 영토의 개념을 다룬다. 강태훈은 소유와 전쟁의 인과관계를 세계지도 아래의 전자 계기판으로 보여준다. 나날이 늘어가는 국방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전체주의적인 의식의 조작이다. 


작가는 시계, 하이힐 같은 도구적 물건들에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는 수도꼭지를 부착하여, 일방적인 사용의 개념을 전도시키고자 한다. 공공엘피는 온난화로 인해 바다 속으로 사라질 어떤 섬나라 풍경을 소금 더미와 선인장으로 표현한다. 인간들이 무분별하게 배출한 오염물질은 기후의 변동을 야기시켜 사막화를 비롯한 삶의 터전의 소실을 앞당기고 있다는 메시지이다.  이학승은 인간이 만들어낸 소리들에 눌려 들리지 않던 타자들의 소리를 복원하려 한다. 이러한 소리들은 인간 끼리만의 소통을 위해 제거해야할 소음이 아니라, 병든 인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소리 약’이다. 세계 여러 지역의 돌멩이들을 그것이 놓여있던 주변 풍경이나 사연과 함께 담은 김순임의 작품은 발에 채이는 하찮은 미물에게도 소중한 존재감을 부여한다. 손정은과 공성훈의 작품에서 스스로 파괴한 자연을 복구하는 인간의 노력은 기이한 산물로 나타나곤 한다. 손정은은 울창한 숲을 거니는 새 같은 유토피아의 풍경을 연출한다. 숨겨진 스피커에서는 풍요로운 자연의 소리 등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이 전체는 자연과의 유대를 잃고 부실한 가설무대 위에 얹혀 있을 뿐이다. 겉으로 자연스러운 듯하나 그렇지 않은 이물감은 공성훈의 풍경에서도 나타난다. 공원 속의 인공연못이나 인공 절벽이 있는 풍경은 원초적 자연이 아니라, 손쉽게 자연을 즐기고 소유하려는 인간에 의해 순치된 풍경이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연못을 노니는 오리들은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대량 살처분 되는 도구화된 자연을 떠오르게 하며, 누군가에게 보여 지기 위해 밤에도 붉을 밝히는 인공 자연은 진정한 휴식이 없는 삶을 예시한다.

자연의 협력 없이 인간의 힘만으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은 심현주의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잠실대교에서 청담대교에 이르는 1.92km 의 한강변을 촬영하여 꼴라주 형식으로 재편집한 영상은 인간의 욕망에 조응하는 질서로 환경을 재편한 이상적 도시의 이미지이다. 그런데 도시의 대기를 채우는 것은 물고기들이다. 그것은 영상 앞에 놓여진 어항 속의 물고기들을 실시간 투사한 것인데, 이러한 조합은 연출된 인공낙원이 어항처럼 닫혀 있는 계라는 암시를 준다. 


닫혀진 계 속에서의 아귀다툼을 피해 이상향으로 떠나려는 임승천의 거대한 배는 그 자체가 또 다른 닫혀진 계이다. 머리 셋 달린 배는 눈이 셋 달린 소년과 함께 괴물로 변해버린 이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의 작품에서 바벨탑 형태의 도시는 파괴를 통해서만 앞으로 전진 할 수 있으며, 바벨탑 안쪽에서 본 듯한 하늘은 자그마한 물웅덩이처럼 보일 뿐이다. 김주연은 현대적 삶을 소격시킨다. 아파트 등의 인공낙원에서 축소된 자연으로 소유되었던 화분들은 출토된 유물처럼 배열된다. 그것은 일정한 단위로 분절된 현대적 시간 주기를, 고고학 같은 장기지속의 시간대로 변형시킨다. 인간사는 자연사에 귀속되는 것이다. 정경희는 사슴의 뿔 부분을 잠자리 날개로 전치한 형태를 통해 여기와 저기뿐 아니라, 지금과 그때를 연결하는 공시적이고도 통시적인 그물망을 표현한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절대적인 질서로 간주된 현재는 상대화 된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게 끊어질 듯 이어지는 벽 위의 그물망은 언어, 예술, 종 다양성을 향한 탈중심화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출전; 컬처뉴스(www.culturenews.net) 기사입력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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