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박은하 /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일상의 신화

이선영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일상의 신화 

(2008. 7. 30—2008. 8.12, 관훈갤러리)

  

이선영(미술평론가)

  

박은하의 그림에서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한쪽 귀퉁이로부터 녹아 흘러내린다. 마치 플라스틱 소재의 사물들이 녹아내린 듯, 안료가 번진 듯한 형상이다. 습관과 반복에 의해 차갑게 굳어버린 일상에 이상 열기를 만들어내는 비정형 패턴들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대상세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출몰한다. 단단하게 외곽선을 보존하고 있는 대상들을 현실로 본다면, 경계선을 녹여 사물을 뒤섞는 뭉글뭉글한 패턴은 환상적이다. 그러나 박은하의 작품은 현실과 반대되는 허구, 또는 객관성과 무관한 내면의 몽상을 덧칠하는 작업이 아니라,객관적 현실에 잠재되어 있는 잔여물이나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작업에 가깝다. 비정형 패턴은 대상으로부터 흘러나온 색상 요소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상을 한정짓는 견고한 외곽선을 무작정 잡아당기고 늘려 이리저리 접고 흐르게 한다. 작가는 단순한 대상에 수많은 겹과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다. 


비정형 패턴이 화면 전체를 잠식하는 완전한 추상화는 일어나지 않으며, 현실은 변형 전의 상황과 변형 후의 상황을 동시에 보존한다. 이러한 양면성은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작가는 이 패턴의 기원으로 어린 시절의 비눗방울 놀이와 과학실험 시간에 접한 동물 플라나리아를 지목한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비누 막을 통해 보이는 내 작은 방과 그 막 위로 흐르는 색색의 띠들이 겹쳐져 하나의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나곤 했다’고 회상한다. 플라나리아는 무성적으로 증식할 수 있는 납작한 2차원적 생물로, 일상의 공간인 3차원을 무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적 위상을 가진다. 동시에 그의 작품은 2차원적 평면에 3차원적세계를 재현하는 회화가 가지는 본질적 차원을 부분적으로 회복시킨다. 비눗방울의 찬란한 반사면과 무한증식의 이미지가 결합하여 한계 지워진 현실의 또 다른 차원을 개시한다. 작품의 배경은 대부분 방이나 사무실 같은 평범한 공간이다. 


그러나 일상 공간은 그 안에서 휴식하거나 노동하는 인간들과 결합하여 일련의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늘어진 녹음테이프 소리 같은 기이한 궤적을 남긴다. 일상적 사물 중에서 특히 컴퓨터 화면 같은 인터페이스는 뭔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동시에 몰입하는) 은유적인 대상으로, 비정형 패턴이 출몰하는 주요 지점이 된다. 작품 [fatigue]는 컴퓨터 화면으로부터 출발하는 파동이 흐물거리는 인물전체를 에워싸는 소용돌이를 이룬다. 작품 [in a row]에서는 PC 방 또는 작업장의 사람들처럼 일렬로 앉아서 컴퓨터와 접속한다. 컴퓨터 화면과 마시는 커피, 손과 키보드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컴퓨터를 앞에 두고 제각각 매몰되어 있는 인간들은 가까이 붙어있지만 소통 면에서는 철저히 단절되어 있는 유아론적 세계를 이룬다.오늘날 컴퓨터 뿐 아니라 휴대폰, MP3 등 인터페이스가 장착된 사물들이 그러하듯, 개인은 물리적인 근접성과는 무관한 원거리 연결망을 구축한다. 새로운 사물들은 지금 여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환상을 키워주곤 한다. 


작품 [fatigue man]은 노숙자인지 노동자인지 알 수 없는 남자가 구두를 신은 채 누워있는데, 머리 위의 스탠드에서 비정형 패턴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잠든 사람을 에워싸는 몽상적인 분위기가 일상의 맥락을 지워버린다. 박은하의 작품에서 비정형 패턴은 사람과 사물, 사람과 환경과 접촉한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작품 [office]는 밖으로 투명하게 보이는 현대적 사무실을 그린 것인데, 사람이 있는 곳은 대부분 컴퓨터와 접속한다. 컴퓨터 화면은 물론이고, 책장, 그림, 휴지통 등에서 뜬금없이 분출하는 패턴으로, 수직수평으로 구획된 기계적 공간에 기이한 자취들이 남겨진다. 그러나 사람이 없는 불 꺼진 사무실에는 그 흔적들이 없다. 결국 비정형 패턴은 단순한 객체로 환원될 수 없는 주체와 관련된 형상인 것이다. 그것은 객체와 반응하는 주체의 환상, 무의식, 몸의 자취와 흔적과 관련된다. 때때로 객체 자체도 왜곡되어 표현된다. 어안렌즈로 포착된 실내 풍경이 그렇다. 


작품 [stir]는 렌즈에 의해 휘어진 피사체로서의 실내에서 여러 색의 물감들이 뒤섞이는 빠른 흐름을 만든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현실을 휘젓고 있다. 작품 [suck the earth in]의 휘어진 공간은 아예 비누 방울같은 형상이다. 중심으로부터 분출하는 패턴은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다. 비정형 패턴은 그림이라는 틀도 넘어서려 한다. 미술관 3층에서 퍼포먼스 형태로 보여준 벽화는 벽에 붙여진 그림에서 패턴이 화면 밖으로 분출한다. 때로 패턴들은 대상의 경계를 넘지 않고 그 내부에서 휘몰아친다. 이렇게 비물질화된 대상은 또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입구처럼 보인다. 박은하가 고안한 플라나리아 패턴은 무언의 대상을 열린 것으로 만든다. 또는 분명하게 확정된 기능과 의미를 교란시킨다. 그것은 향기처럼, 소리처럼 경계를 넘어 통상적인 대상의 의미를 누수 시킨다. 친근한 환경은 알아들을 수 없고 알아 볼 수 없는 울림과 형상으로 변모한다. 방향을 알 수 없는 끝없는 굴절을 통해 현실은 녹아내리고 늘려지고 스며든다. 


일상 풍경은 느슨해 보이지만, 기호화된 소비품목으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다음의 동선과 동작이 예견되어 있는 기계적인 과정의 연쇄이다. 그것은 의미로 너무 꽉 차있거나 아니면 텅 비어있다. 그의 작품에서 대상과 기호 간의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는 헐거워진다. 기표와 기의가 끊임없이 미끄러지듯이, 비정형 패턴은 고정된 형태와 의미를 와해시키고 투명한 독해를 거부한다. 일상은 본질적으로 자명한 것이기 보다는, 사회에 의해 합의된 신화로 구축되어 있다. 인공적이고 자의적인 기호의 세계가 연출하는 자연적인 효과는 일상을 신화적인 것으로 만든다. 박은하는 이러한 일상의 신화를 소격시킨다. 그의 작품에서 견고해 보이는 사실은 또 다른 의미와 가치의 세계로 변형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가 [현대의 신화]에서 말하듯이, 예술은 기호의 자의성을 증가시키고,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가능한 극단까지 느슨하게 한다. 개념의 떠도는 구조가 예술작품에서는 최대한 이용된다. 형식화된 구조는 허물어지고 그 잔해들은 또 다른 의미를 생성하기 위해 요동친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예술만이 가진 특성은 아니다. 


일상의 신화를 이루는 물건들 역시 예술가의 시선으로 변형되기 전에 스스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사물들은 고정된 기능의 기호를 넘어서, 다양한 형태의 감각성을 갖추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새로운 기술도 예술처럼 대상과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점차 좁혀 나간다. 일상의 물건이 구체적인 접촉과 사용의 대상이 되면 주체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사물과 인간이 비정형 패턴으로 연결되어 있는 박은하의 작품은 현대적 사물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주체화의 과정을 표현한다. 몸은 물질적, 정신적 체험의 중심이 되며 주변 환경과 끝없는 소통과 교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의 플라나리아 패턴은 주체와 객체 사이를 연결하는 복잡한 통로가 된다. 인간을 둘러싼 일상의 사물들은 몸의 연장이며, 그 자체로 마술적이며 연금술적인 활기를 띄고 있다. 주체와 객체는 상호 구별할 수 없는 매개 지대에서 격렬하게 뒤섞이면서 또 다른 관계망을 형성한다.

  

출전; 컬처뉴스(www.culturenews.net) 기사입력 2008-08-18 18:07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