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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순 / 활짝 피어난 독학자의 재능

이선영

활짝 피어난 독학자의 재능

  

이선영(미술평론가)

  

‘음기 마을, 하일순’ 전의 주인공은 현재 직업이 시골 농부다. 2014년 우연찮은 계기를 시작으로 4년여의 짧은 기간 동안 그렸던 그림들 중 일부를 골라서 전시하는 작품들의 면면도 놀랍지만, 어머니/화가, 할머니/화가, 농부/화가 일 수 있는 그 열린 가능성이 감동적이다. 자식 농사와 밭농사에 이어 예술 농사까지 3모작을 일구고 있는 하일순 할머니의 경우,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현대인이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삶의 유형이 아닐까. 2019년에 한국 나이로 88세가 되는 하일순 할머니는 고등교육은 물론이고 미술을 전혀 배운 적이 없다. 5년 전 캐나다에서 잠시 돌아온 큰딸이 자신의 태몽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그림으로 그려가며 설명해 준 것이 시작이다. 꿈이란 말보다는 이미지이기에, 그림으로 그려서 설명했던 것이다. 해석(해몽)은 이미지 이후에 온다. 그래서 미술은 늘 꿈과 무의식에 깊은 뿌리를 내린다. 무지개빛 비누방울 같은 경계 안에 이무기가 기세 좋게 혀를 내밀고 있는 장면은 소박했다. 








그러나 이 그림에 대한 가족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이후 1주일에 한편씩 작품을 완성해온 꾸준한 작업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과정을 거친다. 예술은 자신의 숨은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발현하는 방식이며, 또한 이를 통해 주변과 긴밀하게 소통하게 한다. 예술활동은 자신과 타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발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으로서의 예술가’에게는 예술이 주변, 특히 가족과 단절되는 지름길이 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할머니의 재능은 우연히 발견된 후에도 공식/비공식적인 교육을 따로 받지는 않았다. 미술 또한 언어이기에 미술을 통해 말을 하려면(표현하려면) 언어를 배워야 한다. 언어에 대한 교육은 보편성을 지향하지만, 문제는 예술이 특수성에 대한 기대치가 있다는 점이다. 가장 흔한 것은 다시 소박해지기, 즉 배운 다음 잊어버리는 것이다. 어눌함과 소박함은 정교함과 세련됨이 할 수 없는 어떤 표현을 하게 한다. 그것은 예술 단지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진실에 호소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에 상대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작은 징후도 큰 의미로 다가오게 한다. 이러한 경우는 미술의 역사 속에서도 선명하여, 미술의 전문성에 대한 자의식이 한창 고조되던 시기인 근대에 ‘원시’와 ‘야만’, 광인과 어린이의 표현법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비전문가들의 어법을 훔치기도 하고 차용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작가와 아버지의 작품이 협업 된 현대미술작품의 예가 있다. 때로 이러한 간접적인 단계를 넘어서 당사자가 직접 나서기도 한다. 미술사는 이러한 류의 경향에 소박파(素朴派, naive art)라는 명칭을 붙여주었으며, 가장 잘 알려진 예는 전직 세관이었던 앙리 루소이다. 이러한 맥락을 보자면 하일순 할머니의 미술 교육에 대한 부족함은 아쉬울 것이 없지만, 맨 처음 선물 받았던 필기구가 원형적인 매체로 굳어진 것은 형식적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한계로 작용한다. 매일매일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던 도화지에 색연필은 일종의 모태 언어가 되어 자리 잡은 셈이다. 












색연필은 가장 보편적인 필기구인 연필과의 유사성으로 그림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주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색연필에 싸인 펜 정도가 추가되었을 뿐이지만, 이제 4년 차인데 가능성은 열려있다. 전시되는 작품은 4년 동안 그린 167점의 작품에서 가족과 지인들이 엄선한 72점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비대위’가 꾸려진 것이 2018년이다. 가족들은 작품 하나하나에 대해 할머니 본인만큼이나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것은 할머니의 그림들이 손자 손녀를 포함한 몇 대에 걸친 가족들 간의 긴밀한 소통 수단이 되어 주었음을 알려준다. 작업의 시작이었던 태몽 그림은 할머니와는 22세 차이로, 아래 동생들에게 제2의 어머니 역할도 했던 큰딸에 대한 강인한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어젯밤 꿈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인간은 굳이 예술이란 것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만약 있다면 삶을 엄청나게 달라지게 할 수 있다. 하일순 할머니는 살아있는 예이다. 


물론 그림이 2014년이 처음은 아니었다. 2남 3녀를 키우는 동안 미술 관련 숙제는 상당 부분 할머니의 손을 거쳤고,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어 교실 뒤편에 전시되기도 했던 것이다. 자손들도 할머니의 재능—장남은 고 2때 까지 미술부장을 했다고 함--을 이어받았지만, 엄혹한 생존의 시대에 미술을 전공한 한 자식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경인 미술관에서 열리는 ‘음기마을, 하일순’ 전은 미술에 대한 온 가족의 로망을 담아낸 소중한 행사가 되었다. 지금은 조금 업그레이드 되었지만, 2014년 그림을 시작하던 당시 초등학생들이 사용하는 12색 색연필과 겉표지에 만화가 그려진 스케치북이 전부였다. 곧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재능을 하루하루 발견해나가는 기쁨은 상당했을 것이다. 일본에서 사업을 했던 아버지 때문에 1932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무남독녀로 남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라 추정되지만, 10세에 한국에 와서 초등학교를 마친 것이 전부다. 












한국전쟁 전에 결혼한 그 시대의 평범한 여성, 더구나 3남 2녀의 어머니로 현재에도 밭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인 하일순 할머니에게 ‘예술’이라는 단어 자체가 먼 나라의 이야기 일 수 있다. 그러나 할머니는 인생 후반기에나마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었다. ‘재능은 숨길 수 없다’는 속설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성사 과정에서도 나타나듯, 좋은 조건도 없지 않았다. 군청 공무원이었던 남편과 함께 70년대까지도 호롱불을 켜고 살아야 했던 지방에서 넉넉지 않은 살림을 꾸려나가면서도 어머니의 숨은 재능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3남 2녀를 반듯하게 키웠고, 수십년간 정든 마을을 떠나지 않은 채 자신의 삶의 방식을 유지했다. 우리는 한국의 대도시가 팔순 노인에게 어떤 곳인지 잘 알기에, 고향에서 자신이 해왔던 일을 계속하면서, 추가로 예술작업까지 하는 하일순 할머니가 가히 동급 최강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할머니는 자식들이 살고 있는 서울에 가면 갑갑하고 갈데가 없어서 싫다고 하며, 심지어는 괜찮던 몸도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작품에는 할머니의 현 거주지인 경남 거창군 가조면의 풍광들이 담겨있고, 지역에서의 활발한 사회생활, 그리고 수백 포기의 고추 농사를 짓는 농부로서의 체험 또한 반영되어 있다. 할머니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꽃들은 주로 집과 밭 사이에 있는 300미터 정도의 논길에 피어있는 것들이다. 할머니는 생업이자 일상인 밭일을 하러 가면서 다양한 들꽃들 꺽어 와서 화병에 꽂고 그린다. 마당에 핀 꽃들도 그린다. 코스모스처럼 지척에 있는 소재들은 정확한 재현에 표현의 유희도 더해진다. 화분으로 가득한 집안팎은 할머니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족들에게 선물 받은 식물 도감같은 참고서는 본 것을 보다 정확하게 보강하게 한다. 고추 농사를 짓기 때문인지 고추를 그린 작품은 다른 식물보다 더 정확하고 생생하다. 












꽃 주변에 있는 곤충과 동물, 산야 등이 풍경화로 확장된다. 거창의 명산으로 알려진 미녀봉은 할머니의 주요 작업장인 주방 창문에서 일부가 보인다. 고향의 대지에서 평생 농사짓던 할머니는 음기가 강한 미녀봉의 정기를 내려받지 않았을까. 팔순 노익장은 그러한 추측이 사실일 수 있음을 반증한다. 그림은 아무리 놀이처럼 진행되는 것이어도 농사짓는 것 못지않은 에너지가 투자되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 그림 그리기는 현재를 넘어서 과거를 소급하여 행복한 유년시대에 대한 기억이 유토피아적인 정광 속에 표현되어 있다. 유년시대는 누구에게나 꽃피는 봄이다. 설사 실제가 그렇지 않았더라도 수 십 년의 세월은 과거에 대한 인상을 변화시킨다. 시간이 이어지듯 공간도 이어진다. 화면 중앙 가득히 자리한 꽃들은 마치 거대한 나무처럼 땅과 하늘을 이어준다. 특히 꽃대가 수직인 작품은 단순한 풀이 아니다. 작은 나무다. 작은 풀을 기념비적인 스케일로 재현되는 것이다. 마당의 코스모스를 화면 가득히 포착한 작품은 표현하기 좋은 전면을 주로 그렸지만, 햇수가 지나갈수록 꽃들은 정면성을 벗어나 다양한 크기와 각도, 개화의 정도를 보여준다. 


이파리들은 마치 추상적 패턴처럼 공백을 메우며, 사이사이의 공간은 꽃의 기운으로 가득한 색으로 채워 넣는다. 바탕색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땅과 하늘만 구별되어 있고 각각의 색 영역이 있다. 그것은 꽃이라는 주된 소재가 줄 수 있는 단조로움을 상쇄하려는 방식이자, 나날이 풍요로워지는 색 선택을 반영한다. 할머니는 2014년 12색에서 현재는 64색 색연필을 사용한다. 여러 개의 꽃이 배치된 작품들은 재현이면서 추상이다. 코스모스들을 마치 가로수처럼 배치하고 사이사이에 벌과 나비가 있는 작품이 그렇다. 꽃이 나무 같다면 나무는 꽃 같다. 꽃/나무의 아랫부분은 그냥 직선이 아니라 작은 언덕인데, 이 언덕은 때로 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돌멩이가 작은 산이면 산 또한 돌멩이다. 잎 사이사이의 공간이 다른 색으로 칠해지듯, 산의 몸통에 나이테같은 패턴이 둘러쳐 있는 것도 재미있다. 최초의 그림에 이무기를 둘러싼 무지개색 패턴을 염두에 둘 때, 그것은 어떤 영역에 대한 할머니만의 개념을 표현한다.










할머니의 작품에서 땅은 본래 그렇듯이 풍요로운 색감을 압축한다. 특히 농사를 지으며 사계절을 체감하는 관찰자의 눈에 땅/산은 결코 ‘고동색’이라는 하나의 관념으로 고정될 수 없는 법이다. 자손들이 할머니의 그림에 감탄하며 더 고급진 색연필과 도화지를 제공할수록 화면을 더욱 화사해지고 질감도 풍부해지는 것이 보인다. 산은 정면뿐 아니라 단면처럼도 보이고, 지상의 모든 풍요로움을 가능케 할 기운을 압축한다. 대지는 실재감의 원천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창 명산 미녀봉(처녀봉)의 기운이 하늘을 찌르고. 그 아래 번성한 지상의 식물들을 곤충이나 새, 동물을 불러들인다. 한국인의 상상에 친숙한 신화적 동물인 호랑이, 화목한 가족을 연상시키는 새의 모습은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작품 속에서 우화적 서사를 들려준다. 동물들은 속눈썹이 강조되어 마치 인간의 눈같이 보이며, 여러 다른 동물이 함께 등장하여 대화적 관계를 가진다.


가령 암탉과 수탉이 마주 보고 그 사이에 병아리 5마리가 옹기종기 있는 그림은 3남 2녀를 둔 할머니의 가족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그들을 지붕처럼 감싸고 있는 등나무는 이전의 민화가 그랬듯이 기복적인 면도 있다. 할머니가 미술대학을 비롯해서 고등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수예같은 여성적 취미 활동을 했을 것이라고 볼 때, 식물의 형태가 그러한 공예에 걸맞는 장식적 패턴처럼 보이는 것도 자연스럽다. 할머니의 작품은 식물도 그렇지만 관심사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고, 비현실적인 배치가 두드러진다. 그것은 할머니의 그림이 원근법을 비롯한 조형의 언어가 체계적으로 적용된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재현적 사실성과 추상적 패턴이 큰 차이가 없는 식물은 이러한 비체계성이 자유로운 표현방식으로 다가오지만, 초가집이나 기차 등 인공 구조물이 재현되는 경우에는 어색하다. 그래서 그림은 꽃을 중심으로하는 자연 풍경화가 압도적으로 많다. 




2014년 최초의 작품인 태몽 그림



작은 풀은 큰 나무의 축소판이고 그 역도 성립된다. 나뭇가지나 엽맥은 프랙털 기하학을 주장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드는 예이다. 작은 것과 큰 것은 규모의 차이를 가지면서 반복된다. 그것은 과학적 원근법이 전제하는 총체적 세계이기보다는 자신의 지각과 기억에 근거한 개별적 세계의 집합이다. 그것은 바깥으로 뚫린 창에 체계적으로 배열된 세계가 아니라, 오며가며의 일상적 경험이 반영된 지도 같은 풍경이다. 한 화면에 하나씩 그린 작품은 평면적이며, 여러 요소가 등장할 때는 크기 차이로 원근감을 준다. 가령 뒤편의 물레방아 돌아가는 초가집은 앞편의 큰 풀보다 작다. 그 둘의 관계는 종합적이기 보다는 병렬적이다. 이러한 세계는 공간의 합리적 재현보다는 공간을 채우는 사물의 풍부한 질감으로 가득하다. 할머니는 자신의 관심이 쏠려 있는 세부의 정확성을 나름의 방식으로 강조하면서 자연의 풍경이자 심상의 풍경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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