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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미 / 흙의 마법

이선영

흙의 마법

 

이선영(미술평론가)

  

인체 형태 바탕 한 김보미의 작품은 주술적 분위기가 강하다. 어둑한 공간 속에서 봐야 할 부분만 강조된 조명으로 전시된 작품들은 현대적인 미술관보다는 박물관에 어울릴법한 배치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예술 이전에 주술이 있었고, 미술관 이전에 박물관이나 무덤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기이한 느낌을 주는 세라믹 인형들은 외형만 대략 만들고 유약 크레용을 사용하여 만화적인 방식으로 세부를 그려 넣었다. 세련되고 정교하기보다는 원시적 사물의 소박함과 현대적 유머가 뒤섞여 있다. 올해 전시된 작품과도 연관되는 [mummy figurines](2016)를 보면, 벌거벗거나 속옷만 입은 남녀 상이 쪼르륵 놓여있는데, 여기에는 붕대로 칭칭 감긴 미라 뿐 아니라, 침낭에 담긴 몸도 보인다. 여기에서는 여성과 남성, 고대와 현대는 동일한 반열에 놓여있다. 삶과 죽음도 같은 차원에 있다. 그러나 서 있지 않고 누워있는 상들은 죽음과의 연관성을 더 생각하게 한다. 주술적인 물건은 삶과 죽음을 총괄하여 작용하는 것이다. 




클래이아크김해미술관 전시전경, Untitled (Vessel), glazed earthenware, underglaze crayon, Approximately 65x 186x72cm, 2018


Untitled (Vessel), Untitled (Genitalia), glazed earthenware, glazed stoneware, underglaze crayon,  various sizes, 2018



이 전시에서 가장 큰 설치물은 두 개의 맞물린 도자기에 사체를 넣어 장례를 지냈던 관습을 참조한 것이다. 옹관(甕棺)같은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고대 무덤의 관뚜껑에 새겨진 왕이나 사제의 표정처럼 뻣뻣하게 허공 어디엔가에 있을 영원을 응시하기보다는 지상의 삶에 눈길이 맞춰져 있다. 여성상 자체가 현세적이다. 세계를 둘로 나누는 관습 속에서 여성은 현실 또는 현세를 대변해왔기 때문이다. 성인 여자 한 명 들어갈 정도의 용기(容器) 표면에는 여성의 얼굴과 몸이 그려져 있는데, 작가의 얼굴을 닮은 한 도자기 표면의 드로잉은 건강미 넘치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다. 그 뒤편에는 성기를 노출한 남성 하체가 빈 통의 형식으로 서 있다. 피어오르는 향처럼 표현한 음모는 생사를 초월한 자연의 생식력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죽음에도 충만한 생의 이미지, 또는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 진실이 있다. 피터 부룩스는 [육체와 예술]에서 ‘성이란 단순히 생식 능력뿐만 아니라,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자아의식을 형성하는 의식적 무의식적 욕망과 금지의 복합물을 모두 의미한다’고 말한 바 있다. 


성과 육체에 내장된 삶과 죽음은 수시로 자리를 바꾼다. 어릴 때부터 박물관을 즐겨 드나들었던 김보미의 감수성이 자리하고 있는 고대적 사고에는 동양의 윤회와 비슷한 관념이 있다. 옹관이라는 형식이 그렇지 않을까. 맞물린 두 항아리 안에 시체를 넣으면 시체는 태아의 자세를 하게 되고, 자신이 비롯한 흙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뭉크의 유명한 작품 [비명]은 남미의 고대 옹관에서 출토된 미라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뭉크는 이 오래된 이미지에서 소외가 일반화된 현대적 감수성을 뽑아냈다. 흙이라는 오래된 매체를 사용하는 예술가인 김보미에게 현대성은 몸이 가지는 정치적인 측면에 대한 자의식일 것이다. 생산과 소비의 중심에 놓인 몸은 늘 정치적이었지만, 현대에 와서 지배나 조절, 또는 저항이라는 모든 차원에서 그 수단은 더욱 정교해졌다. 미셀 푸코가 연구한 바 있듯이, 공개처형이나 죽음을 진열하는 식으로 겁만 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들에 작용하는 기술들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Untitled (Genitalia), glazed stoneware, underglaze crayon, 113x45x42cm, 2018



Untitled (Vessel), Untitled (Genitalia), glazed earthenware, glazed stoneware, underglaze crayon,  various sizes, 2018



그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 권력이 편재되는 상황을 현실화한다. 아직 서른이 안 된 젊은 여성 작가에게 몸, 특히 여성의 몸은 미시적 차원부터 거시적 차원에 이른 권력의 장으로 간주 된다. 이때 인류의 역사상에 있어 왔던 다양한 여성상은 인간 모두가 당면하고 있는 육체의 정치학에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다. 주물처럼 늘어선 인형들 중에는 복부가 팽만한 대지 모신 같은 이미지도 포함되어 있다. 이 풍요로운 여성상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며 창조하는 여성의 긍정적 이미지를 강조한다. 여성을 유형화시키고 계급으로 나누어 지배하려는 가부장적 질서에 도전하는 페미니즘은 ‘자기관리’라는 미명 아래 이루어지는 자기 감시와 검열, 그리고 억압을 거부하면서, 원시적 여성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할 것이다. 김보미의 작품에서 안이 채워져 있지 않은 껍질의 형식은 도자기라는 단단한 형식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유동적 측면을 강조한다. 


누구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공간에 통을 바꿔 낄 수 있을 것 같은 가변적 측면이다. 또한 거기에는 세계인종의 전시장 같은 나라에서 오랫동안 살고 작업하면서 작가가 느꼈을 육체에 생각과 감수성이 담겨 있다. 김보미가 가지는 젊은 동양 여성 예술가로서 정체성은 보편적이기 보다는 특수한 경우로 인식되며, 차별로 이어지는 차이를 각인한다. 작가는 전시장 구성에 자소상을 새워 놓았는데, 바닥에서 솟아난 듯한 손은 얼굴이 놓여있는 좌대를 그저 중성적인 받침대가 아니라, 대문자 ‘I’ 처럼 보이게 한다. 그것은 육체가 생물학적인 본질이기 보다는 텍스트이며, 나에 대한 생각이 자율적이기보다는 사회의 상징적 질서로부터 연원한 것임을 암시한다. 물론 그것은 사회적으로 구조화되었기에 다시 재구조화될 수 있으며, 이러한 해체/재구성은 백인 남성으로 가정된 주체에 도전하는 수많은 주체들에게서 일어나는 일이다. 




Heidi's Monologue, performance, 2018



Head (Heidi's), Glazed and slipped stoneware, yarn, 40x30x30cm, 2018



Untitled (Crown), glazed stoneware, gold luster, 47x30x27cm, 2018



예술은 이러한 주체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실뿐 아니라 상상과 관련되는 예술은 나를 비춰지는 상상의 표면, 즉 거울처럼 작동해 왔다. 특히 보여지는 존재로 간주 되어온 여성에게 거울이라는 상상적 단계는 중요하다. 노랑머리에 하얀 얼굴을 한 마스크를 쓴 작가의 모습은 오늘날 성형부터 유전자 편집에 이르는 여러 선택지에 놓인 육체의 상황을 유희적으로 표현한다. 육체는 인형 속에 또 다른 인형들이 계속 나오는 러시아의 인형처럼 본질보다는 표면적 현상으로 간주 된다. 표면은 뫼비우스 띠처럼 요동치며 자신의 국면을 상황에 따라 변화시킨다. 본질은 이원 항을 대립하는 사유를 파생시켰고, 이러한 대립 구도 속에서는 타자화된 더 많은 주변적 존재가 있음을 생각할 때, 핵심이 없이 표면적으로 요동치는 육체라는 상상은 부정적이지 않다. 김보미의 작품에서 손으로 꾹꾹 눌러 만든 추상적 두상은 황금빛 왕관을 쓰고 있다. 그것은 서로를 빈약하게 했던 여성도 남성도 아닌, 유동적인 주체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이 아닐까. 


주체는 예술작품을 만들지만, 동시에 예술작품 또한 주체를 만든다. 이러한 상호성은 예술의 중요한 특징이다. 흙으로 인간 형상을 만드는 누구라도 진흙을 빗어 인간(남자)을 만들고 그 갈비뼈에서 여성을 만들었다는 지배적 신화로부터 자유로울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작가인 김보미에게 ‘창조’의 이미지는 보다 유희적이다.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보면, 그녀에게 작품 제작 과정은 요리와도 같다. 요리는 대체로 여성의 영역이었다. 작가는 요리사처럼 이것저것 넣어서 마술과도 같은 것을 만들어 낸다. 이 마술은 심오한 형이상학처럼 정신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에도 작용하여 삶을 유지하고 풍요롭게 만든다. 입처럼 벌리고 있는 변기같은 작품은 육체의 일부를 연상시킨다. 공적 장소에 노출된 욕망의 배설구는 욕망이 막힘없이 흐를 수 있게 배치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것은 ‘자신을 대신하는 마법의 물건’으로서의 작품이기도 하다. 




For Alice, Slipped and glazed stoneware, 46x50x31xm, 2018



Untitled Figurines, stoneware, underglaze crayon, various sizes, 2018



작가는 요리와 청소, 출산과 육아를 담당해왔던 여성들의 일을 예술에 포함 시킨다. 예술작품의 창조 대신에 인류의 재생산이라는 임무에 오랫동안 묶여 있었던 여성들은 자신들이 해왔던 것들을 굳이 배제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신화/종교/예술 등을 구별하고 다시 위계 질서화 하는 근대적 미학과도 거리를 둔다.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보편적인 매체인 흙은 그러한 구분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어왔다. 작가는 자신의 몸을 포함한 관심사를 표현하는데 흙이 매우 적당하다고 본다. 흙은 사람의 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작가는 ‘clay body’라는 영어 표현의 의미를 작품의 주제와 형식 모두에 관철시킨다. 무덤 출토물같은 작품형식은 불을 통과하는 도예작업과 화장(火葬)의 공통점을 보여준다. 또한 깨지기 쉬운 도자기는 육체의 취약함과도 연결된다. 김보미에게 흙은 원시부터 현대를 이어주며, 자신과 사회를 이어주는 근본적인 예술을 가능하게 해주는 마법의 물질이다. 

 

출전; 클래이아크김해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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