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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영 / 불안과 반복

이선영

불안과 반복

  

이선영(미술평론가)

  

강선영의 작품들은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는 것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작가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만은, 대개 어디론가 다다른 후 사다리는 차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물신숭배 과정에서 많이 활용되는 이러한 전략은 난데없이 튀어나온 듯한 신비로운 작품에 대한 이미지를 위한 것은 아닐까. 예술은 노동과 달리, 그 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미덕은 아니다. 강선영은 [still_life] 시리즈에서 작업의 출발점인 자신의 작업대를 그린다. 작업대로부터 작품이 생기니, 그것은 삶의 반영임과 동시에 작품에 대한 작품이기도 할 것이다. 문예사조사를 보면, 이 두 가지는 어떤 시기에는 극한적으로 대립하기도 했다. 삶에 괄호를 치고 작품에 대한 작품을 하는 이들은 예술의 이러한 거리감이 오히려 현실을 변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8년에 그려진 작업대에는 [wonderland]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그것은 자신에게 지극히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고 있음을 알려준다. 

STILL_LIFE 1  종이위에 샤프펜슬 73X151cm  2017



미학에서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소격효과 등으로 명명된 개념은 예술의 기본 방법론이자, 예술 그자체의 언어에 주목하기 시작한 모더니즘의 주요 어법이었다. 작업대는 보통 스케치에나 사용하는 연필을 이용해서 그려진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흑백 물감을 사용해서 완성된 것처럼 단단한 존재감을 가지며, 그 자체가 완성작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존재감에 비해 작업 도구들은 잘 정돈되어 있지 않다. 작업 중인 작업대는 당연히 어지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길어 올리는 것이 작업이지만, 작품이라는 새로운 질서로 재탄생할 무질서는 심란하다.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그리면 되겠지만, 작가로서는 그 상황을 잘 표현해내는 것도 정리 아니겠는가. 정리되지 못한 상황을 성공적으로 표현한다면, 실제의 정리 못지않게 만족감을 줄 것이다. 작품을 통한 정리는 실제 상황이 그렇지 못할수록 더 열심히 진행되기 마련이다. 


작품은 실제로부터의 결핍감을 해소해주며, 이러한 결핍이 작품의 추동력이 되는 경우도 있다. 방치는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예술과 삶이 괴리가 더욱 커진 근대시대, 불행한 삶과 성공한 예술작품의 짝은 거의 신화처럼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패턴은 사람을 불안하게 할 것이다. 삶의 무질서를 잘 표현한 작품에 감탄하는 사람도 실제 삶에서의 무질서는 감내하기 힘들다. 강선영의 작품에서 파일 같은 형태가 명확한 표지도 없이 층층이 쌓여있는 모습은 실제로 해야만 했지만, 미루어둔 숙제같은 무게감이 느껴진다. 숙제들이 쌓이고 쌓여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낭패감이다. 어릴 때부터 작업을 해와서 자신에게 그 밖의 삶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생애를 살아왔다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료들도 엄청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쌓아온 것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상황이라면 방향성을 잡는데 어려움을 낳을 수 있다. 



Wonderland / 종이위에 잉크 /140X334cm /2012



그래도 작품을 멈출 수 없으므로 자기 직시의 상황은 반복된다. 작업대 위의 사물과 함께 하는 또 다른 요소들은 마치 작은 열매나 구슬처럼 보이는 원이다. 그것은 작업대 위의 이런저런 사물과 달리 이질적이다. 그것은 무엇이며 어디서 쏟아져 나온 것일까. 작지만 입체감이 있고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쌓여있는 작품에서는 원근감도 느껴진다. 그것들도 작업대 위의 사물처럼 화면을 가득 채운다. 다른 요소와 함께 있다면 그 사이사이를 가득 채운다. 마치 공백공포(Horror Vacui)처럼 빈틈이 없다. 작품마다 하얀색, 녹색, 붉은색—마치 씨앗, 성장, 결실의 단계 같은--등으로 나타나는 작은 구슬들은 작품 [wonderland](2012)처럼 그자체로만 존재할 때 어딘가에서 실하게 영글어가고 있는 열매처럼 보인다. 피톨처럼도 보이는 그것들은 한 인간의 눈물과 핏물, 땀방울이 모인 것들이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마치 부처님의 사리나 진주조개의 진주처럼, 몸에서 흘러나온 이 비정형적인 것들은 결정화될 것이다. 


일상의 사물 사이에 배치된 경우에 그것은 무질서 감의 지표가 된다. 작은 구슬은 조그만 축의 변화가 있어도 굴러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가는 일본 유학 중에 지진을 경험해서 질서가 깨지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 처절하게 깨달은 터이다. 지진같은 대재난은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이 깊은 뿌리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지표면 위에 살짝 걸쳐 있는 것으로, 인간적 범위 밖에서의 충격으로 모든 것이 산산이 조각날 수 있음을 알려 준다. 작품 [wonderland 12](2012)와 [wonderland](2014)에서는 파괴된 가옥들 사이에 구슬들이 흩어져 있다. 강선영의 작품에서 풍경은 정물처럼, 정물은 풍경처럼 보인다. 무너진 집들에 해당되는 풍경이 작업대 위에서도 펼쳐진다. 물론 작업대는 지진이 난 것 같은 풍경에 비해 질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부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분류기호가 없는 파일들이 비스듬하게 꽂혀 있는 [still_life](2017)나 여러 가지 물건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수직으로 쌓여있는 작품 [still_life](2017)를 보면 불안하다. 뭔가 하나 뽑으려면 우르르 무너질 것이 확실하다. 




Wonderland / 종이위에 아크릴 /140X182cm /2012



비교적 최근에 제작된 [still_life](2017)에서 샤프펜슬로 그린 강한 흑백 대비, 간혹 그러한 대비에 포인트를 주는 색색의 아크릴 물감은 심란할 수도 있는 정물/풍경에 활기를 부여한다. 작가는 ‘불안한 상황이라고 반드시 우울하게 표현하라는 법은 없다’고 말한다. 강선영이 즐겨보는 책과 화구들이 놓여있는 작업대는 작가의 분신이라 할 만하다. 거기에는 그 물건의 주인공의 희로애락이 깔려있다. 더불어 나타나거나 단독으로도 나타나는 작은 동그라미들은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사물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메시지나 느낌을 전해준다. 작은 구슬들은 무엇인가를 덮고 있다. 완전히 덮지 못할 때 묻혀있던 것들은 비죽이 튀어나온다. 남겨둔 하얀 공간은 ‘오리는 느낌으로 잘라서 버리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덮거나 덮이지 않으면 삭제하는 것, 거기에는 의식/무의식의 상호관계가 있다. 오려진 공백으로 나타나는 무의식은 의식이 트라우마 때문에 억압하거나 해결할 수 없어서 제쳐 놓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공백은 나머지의 형태를 결정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 


동그라미를 그리는 작업은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정신분석학은 반복의 역할을 죽음과 상처를 비롯한 위험한 상황으로부터의 방어기제로 설명한다. 반복은 백신과도 같은 것이다. 치명적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작은 위험을 겪어보는 것이다. 치유나 죽음의 공포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던 종교는 반복을 활용해 왔다. 반복은 주기적으로 행해지는 의례를 비롯하여 심신의 수행 등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죽음의 공포를 열락으로 변화시킨다. 일상생활에서도 반복은 큰 역할을 한다. 인간은 자유를 원하는 것 같아도, 노동을 비롯하여 일상의 질서가 조금만 무너져도 불안해한다. 그것이 단조로운 노동 사회가 유지되는 바탕일 것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보다 촘촘해진 이래, 소비의 시간 또한 획일화되지 않았나. 일상과의 차이를 만들어야 하는 예술에서도 반복은 필수다. 작가는 동그라미를 그릴 때 해소되는 불안감에 대해 말한다. 정신분석학에서 불안은 공포와 달리, 두려움의 대상이 확실치 않은 현상으로 정의된다. 



RE:)WONDERLAND series/종이위에 아크릴/ 각각 45.5X53cm/2018



인간에게 두려움의 최종적인 원인은 죽음일 것이다. 불안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공되었던 모태로부터 분리된 순간부터 시작되는 원초적인 것이며, 욕망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해결책은 원래의 모태로 되돌아가는 것인데, 그것은 개체의 차원에서는 죽음을 말한다. 작가에게 영향을 주었던 두려움에는 일본 유학 중에 겪었던 지진이나 모친의 건강 악화, 더 근본적으로는 작가로서 작업하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확실한 것에 매달리고 싶고, 사소한 일상 또한 새로운 기분으로 받아들여진다. 작업이 생각만큼 진전되지 않을 때도 손쉽게 쥘 수 있는 연필은 자기 행동의 항상성을 유지해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두려움은 겉모습을 변화시키며 작품에 깊숙이 자리한다. 정물화는 유한한 인간에게 죽음을 잊지 말라(Memento mori)는 교훈을 담은 대표적인 장르였다. 작가의 분신인 작업대의 물건들을 그린 작품 또한 죽음의 알레고리를 담는다. 흑백과 컬러의 대조, 그리고 흑백의 경우 중간 톤이 없이 명암이 강한 대립은 삶과 죽음의 대립만큼 선명하다.     

 

출전; 경남차세대선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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