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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 대안적 삶에서의 예술

이선영

대안적 삶에서의 예술

  

이선영(미술평론가)

  

도예 레지던시 수로요는 도예 부문의 작가가 아닌 이에게도 문호가 개방된 곳이지만, 이정민은 전직 사회복지사라는 점이 특이하다. 지금도 지역에 기반한 사회적 기업--‘등비빌 언덕 청년협동조합 이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의 일을 하면서도, 이제 곧 30세가 될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고 있다. 이정민이라는 특이한 존재는 복지나 사회적 기업, 그리고 예술 활동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한다. AI와 100세 시대 인간에게는 생산 활동보다는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이때 예술은 단순히 열심히 노동해서 마음껏 소비한다는 근대가 만들어 놓은 패러다임과 거리를 둔다. 그러한 패러다임에는 회복할 수 없는 커다란 동공(洞空)이 생겨났고, 예술은 이 동공을 충만하게 채워줄 ‘오래된 미래’로 기대된다. 물론 그것은 잠재적이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예술 이외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예술과 접속해야 할 것이다. 




이정민, 반두상 17×14×15(h) 청자토(옥색,시노) 고화도소성 2018



이정민, 민낯 30×33×31.5(h) 백조형토(코발트,천목) 고화도소성 2018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의 ‘로망’이라는 공무원은 아마도 생존이라는 의미에서의 ‘확실성’을 보장해준다면, 작업이란 그렇지 않다. 경제적인 불확실성은 물론, 작업 자체에도 불확실성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자유와 소외를 동시에 일으키는 예술가적 삶에 선명하며, 사회적 분업으로부터 ‘자율성’을 부여받은 근대 이후, 보편적 조건이 되었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작업을 시작한 것은 확실하지만 지루할 수 있는 삶으로부터 단지 도피하기 위한 것일까. 이정민은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도예 작업에 대해서는 ‘순수한 원재료 같은 느낌이 좋다고 한다. 예술은 자기 주도형 활동으로, 그의 기대치에 부응해 줄 것이다. 짧은 기간 동안 작업과 공연, 그리고 전시까지의 과정을 마친 그에게 적어도 작업하는 삶의 맛 정도는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도예 작업을 하기 전에도 그림, 목공, 가죽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해왔으며, 궁극적으로는 자기가 직접 지은 집을 목표로 한다. 


물론 그 집안에 들어갈 거의 모든 것, 자신이 사용하는 모든 것은 자가 제작된 것이어야 한다. 이정민이 이전에 했던 조직 생활은 분업을 기반으로 한 것인데, 분업은 생산력을 높이지만, 개인의 총체성을 희생시킨다. 예술은 파편화된 삶을 극복하고 총체성을 복구하려는 유토피아적 이상의 중심이 되곤 하며, 이정민 또한 그러한 기대를 안고 낯선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에게 그 총체성은 우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부엉이 모양의 작품은 어릴 적 사진을 보면서 젊은 시절 어머니와 함께 찍힌 부엉이 박제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가족을 위한 여성들의 희생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그저 과거 회고적일 수 없다. 부엉이 상의 아래가 뚫려 있어 마치 가면처럼 쓸 수 있다는 점은 도예를 그저 완상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을 표현한 작품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추상적으로 압축한 가운데, 같은 크기라는 점이 눈에 띈다. 




이정민, 남과여 21×21×34(h) 18×19×34.5(h) 산백토(무광흑유) 고화도소성 2018



이정민, 부엉이엄마 19×19×32(h) 청자토(황이라보, 무광재,청자,무광흑) 고화도소성 2018



이정민, 부엉이할머니 25×25×23(h) 청자토(황이라보, 분청) 고화도소성 2018



이정민, 행복한 도자기 32×37×59(h) 산백토(천목,cocu) 고화도소성 2018



대안의 삶을 꿈꾸는 이에게 차이가 차별되지 않는 동등한 관계는 기본이 될 것이다. 그는 텅 비워놓은 형태 안쪽에 불을 넣어 등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다고 한다. 말랑말랑한 흙도 도예 작업 과정을 통해 굳게 되는데, 그의 작품은 이렇게 굳어진 것에도 뭔가 움직임과 활동성을 부여하려는 의지가 있다. 원통 모양에 구멍을 내서 빛이 새어 나올 수 있게 한 작품도 같은 맥락이다. 부서진 초등학교 의자를 도예 작업으로 ‘보수’한 작품은 기능주의가 그 기능을 다 할 때 예술이 할 수 있는 보다 중요한 몫을 암시한다. 곧 완성될 왕관 형태의 작품은 그가 감동적으로 보았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 록그룹 퀸에 관련된 것으로, 왕의 관이지만 세부를 섬세하게 해서 여성성을 부여한 형태이다. 에이즈로 사망한 동성애자 프레디 머큐리에게서 지금도 억압받는 소수자의 삶을 본 이정민은 남성/여성의 이원대립이 야기하는 갈등을 돌고 도는 원의 형태로 화해시키려고 한다. 다양성의 공존이야말로 그가 예술작업에서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이며, 그러한 기대는 매우 합당하다.   

 

출전; 수로요 도예레지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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