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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수진 / 깨지면서 깨치다

이선영

깨지면서 깨치다

  

이선영(미술평론가)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우연치 않은 계기에 도예를 접한 주수진의 초기작품 [행성 X-수로요]은 20대 중반에 만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을 표현한다. 그러나 주수진은 수로요에서의 작업 과정 중에 미지의 세계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이미 자신의 내면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예술이든 뭐든 진실로 소중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이, 즉 이미 자신의 바탕에 그러한 문화적 유전자가 있었던 이의 몫이다. 이들에게 우연은 필연이 된다. 이러한 문화적 유전자가 없거나 있었더라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사는 삶을 우선시함으로서 그 유전자가 억압되거나 활성화되지 않은 이들에게 예술은 그저 가능성으로만 남는다. ‘행성X_수로요’에서 ‘일상에서 만날 수 있던 재료(흙, 불, 물, 나무 등)’는 미지의 것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아이 때는 그 비중이 높지만 점차 줄어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현실화하기 위해 주수진은 작다면 작은 기회를 크게 활용했다. 




주수진, 밤에 피는 달, 종이백자, 백자토,(흑유,천목) 고화도소성, 46x46x46(h),2018



주수진, 달빛은 고르게 비춘다, 백자토(세라믹크레용, 백유), 고화도소성, 5x5x15(h), 2018



아르바이트로 만난 도예체험은 그녀로 하여금 추석 때도 집에 안가고 도자 작업에 푹 빠져 살게 했다. 수로요에서의 결과물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 [밤에 피는 달]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치가 응집된 것이다. 인류의 상상계에서 밤은 노동과 이성이 지배하는 낮과 달리, 꿈과 무의식의 보고이며, 달은 그 대표적인 상징이다. 주수진은 이 작품에서 전통 달항아리를 변주했다. 우선적으로는 달항아리를 실제로 구현하는 기량의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 달항아리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시대에, 그녀는 수로요에 방치되어 있던 달항아리를 활용했다. 심미가들의 눈에 의해 자세히 묘사되곤 하던 달항아리의 그 섬세한 선과 미묘한 색에 대한 분석을 까맣게 칠해지고 꽃까지 붙어있는 새로운 버전의 작품에 적용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도자토를 밀대로 밀어서 수제비처럼 얇게 만들어 겹겹이 포개서 만들어 붙인 꽃은 오래된 사물을 완상할 때의 과정, 즉 무한한 겹의 미학을 실행한다. 


그것은 달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던 그녀의 체험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보는 사람에 따라 징그러울 수도 있으니 일단 달항아리의 돌연변이라고 치자.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서 돌연변이는 원본보다 더 융통성있게 생존할 수 있다. 주수진 버전의 달항아리는 검정 드레스를 입은 세련된 모습이다. 그것은 달에 내재된 고전적 여성성을 현대적으로 번안한다. 그러나 주수진에게 달은 정해진 경로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탈과 이러한 이탈을 이탈로 보지 않고 따스하게 품어주는 희망을 상징한다. 깨져 방치된 불량항아리는 다른 삶으로 탄생했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정해진 궤도를 이탈하면 ‘불량품’ 취급을 받는 다양성 부재의 상황에서 이렇게 거듭난 존재에 자신을 투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달의 변주인 또 다른 작품은 반사되지 않는 항아리에 영상을 쏜 것이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고 했던 백남준의 말처럼, 달은 항아리와 함께 어떤 이야기를 담은 매체가 된다. 




주수진, 깨어져도 아름다울 것들, 백자토(결정유) 고화도소성, 2018



주수진, 테스트를 위한 테스트피스, 백자,청자,분청토(결정유,옥색유),  고화도소성, 2018



주수진, 균형, 백자토, 분청토(청자유),고화도소성, 2018



깨진 접진 틈으로 빛이 새어 나오는 작품은 ‘망가진 것’에 대한 의미를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작품을 위해 만든 테스트 피스를 산의 능선처럼 겹겹이 세워 만든 작품 [테스트를 위한 테스트 피스] 또한 자체의 단점을 감춰야 할 것이 아니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성으로 삼는다. 주수진의 작품 스타일은 조금만 맘에 안 차도 깨버리는 정통 도예가의 전형적인 모습과 정반대이다. 작업의 산물들은 성공한 것이나 실패한 것이나 버려지는 것 없이 활용된다. 환경을 포함한 대안의 삶을 꿈꾸며 새로운 출발을 계획하고 있는 이로서는 당연한 선택인 것 같다. 작품 [깨어져도 아름다운 것들]에서 유약이 흘러내려 생긴 얼룩은 또 다른 무늬로 거듭난다. 멀리서 보면 깨알 글씨처럼 보이는 얼룩은 달을 보면서 생각했던, 또는 현실의 삶에서 깨지면서 깨우쳤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읽혀진다. 주수진은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수로요에서 도자와 연극체험을 함께 했던 동반자와 함께 미지의 대륙 뉴질랜드로 떠난다.   

 

출전; 수로요 도예레지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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