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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조각 전 / 이미지와 서사

이선영

이미지와 서사

  

이선영(미술평론가)

  

구리아트홀의 연말 기획전인 ‘상상조각’은 그림책 작가 및 일러스트 작가 7명이 참여한 원화 작품전이다. 그림책과 동화는 아이들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지만, 요즘같은 ‘키덜트’의 시대에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다. 예술성과 공공성 외에 대중성을 가져야 하는 미술관으로서는 필수 아이템일 것이다. 어릴 적에 푹 파묻혀 보았던 동화 속 삽화들은 이야기 진행의 한 대목으로 삽입된 것이면서도 그자체로부터도 또 다른 상상력의 시발점이 되곤 했다. 서사와 이미지는 함께 하면서도 각자 강한 부분이 있는 서로 다른 매체이다. 삽화의 원화 전시는 이야기에 부속되어 있던 이미지를 자율화시켜 그자체가 가지고 있던 잠재력을 극대화한다. 삽화가 또는 이야기의 원작자이면서도 삽화가는 문자적 서사를 이미지로 변환시킴에 있어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삽화는 자신이 지은 이야기에 대한 것이든 아니든 상상이 개입된다. 


전시 제목에 포함되어 있는 또 하나의 개념인 ‘조각’은 같은 직업군이면서도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지는 7명의 작가들이 모였음을 말한다. 그들의 작품은 각각 다른 영토를 연출한다. 그렇지만 조각들이 그것들이 관객의 상상력에 따라 이어질 수 있다. 가령 관객은 마녀를 만났다가 산타할아버지를 볼 수 있고, 애벌레를 봤다가 토끼를 만날 수도 있다. 집안에 있다가 숲으로 나갈 수도 있다. 그리고 각각의 조각이 조합되는 경우의 수는 많아질 수 있다. 여러 작가들이 참여했다는 점이 아니더라도, 애초에 삽화는 ‘조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선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의 한 단면인 것이다. 그러나 삽화가는 이야기를 함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단면을 선택함으로서 단편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고자 한다. 원화 전시회에서 이야기는 빠진다. 또는 부분적으로만 역할을 한다. 이미 출판된 책을 보고 온 관객도 있겠지만, 전시장에서는 각자 들고 온 원화로부터 출발하는 또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강현주, [La Luna], 2017


2017년 스페인으로 두 번째 순례 길을 떠났다는 강현주는 걷기와 생각하기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많은 문학가들이 걷기와 이야기의 관계를 논했고, ‘로드 무비’라는 말이 있듯이 영화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에서도 길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소재이다. 실제로 걷기가 생각하기를 고무한다는 의학적 연구도 있다. 작품 [숲 모자를 쓴 소녀]는 소녀의 머릿속에서 자라나는 식물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식물은 최초의 씨앗으로부터 급격한 변모 과정을 거친다. 강현주의 작품에서 식물들이 가득한 숲은 나무 이외에도 여러가지 생물체들이 공존하는 곳으로 리좀과도 같은 의외의 만남과 분지(分枝)가 자주 일어나는 장소이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나아가다 보면 시공간은 변화무쌍해져서 눈을 감고 상상하던 소녀는 달, 구름, 꽃, 물고기 등 위에 옮겨 앉는다. 상상은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여기와 저기를 넘나들게 한다.



구작가(구경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포옹], 2015


구작가(구경선)의 작품에 등장하는 토끼는 잘 듣지 못하는 자신을 대신하여 큰 귀를 가지고 있다. 캐릭터는 작품 속에서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지만 거기에도 현실의 그림자는 드리워진다. 구작가의 그림책 [엄마, 오늘도 사랑해]에 수록된 작품들은 다소간 불편한 현실을 살고있는 그녀의 든든한 방패 막도 등장한다. 토끼는 다양한 상황 속에 놓이면서 또 다른 자아를 연기한다. 하얗고 동글동글한 실루엣을 가진 토끼는 귀여움을 요구되는 캐릭터로 인기 있는 소재이다. SNS를 비롯하여 많은 현대적 매체들이 이러한 대역의 무대이기도 하다. 캐릭터로 대변될 수 있는 대역은 현실과 나 사이의 완충지대에 존재하면서 직접적 현실을 은유적 현실로 바꿔준다. 이렇게 일정한 거리를 둔 현실은 놀이의 방식을 통해 실험적으로 해결책을 찾는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도피처를 제공해 준다. 상상의 영역은 자아가 당면한 현실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해결에 도움을 준다. 예술적 상상은 현실에 대해 간접적이지만, 직선이 아닌 삶에서 우회로는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김선진, [혼자인 할머니의 집], 2016


‘나의 작은 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김선진의 작품들에는 여러 종류의 집이 등장한다. 수없이 이사를 다닌 끝에 정착한 작업실은 자신만큼이나 많은 주인을 만났던 공간이었다. 작가는 작품 [어느 날 아가씨의 집]처럼 화초를 가꾸는 마음으로 낡은 집을 점차 자신의 공간으로 변화시켜 나갔다. 그곳은 익명적인 공간이 아니라 자기만의 자리로 변화된 것이다. 작업을 포함한 모든 행위들이 결국은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의지의 발로이다. 작가는 ‘틀은 처음 모습 그대로지만 카센터도 사진관도 사랑방과 카페, 모자 공장 그리고 나의 작업실이기도 했던 작은 집의 이야기’를 펼친다. 공간은 사람을 담지만, 동시에 그 공간에 속한 사람의 상징이기도 하다. 특히 집은 자아 또는 자아의 연장으로 간주된다. [모자청년들의 집]에는 기이한 모자들의 컬렉션이, [혼자 할머니의 집]에는 각종 살림살이들과 고양이들이 자리한다. 집은 조금씩 모양새를 바꿀 것이다. 그 안의 사람이 변해가는 만큼... 




박은미, [풍선마녀와 아이들], 2018


박은미는 자신의 그림책 [풍선마녀]의 주인공들을 그림과 설치작업으로 표현한다. ‘상상놀이’라고 부제를 붙인 작품들은 거울과도 같은 납작한 면을 뛰쳐나와 3차원 공간에 자리한다. 작가의 상상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작품은 거울에 내재된 분열상이 있다. 거울은 분열된 육체를 상상적으로 통합시켜주지만, 간극은 남아있다. 작가의 동화적 상상력은 이 간극을 확대하고 객관적인 언어로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유통시킨다. 상상의 언어는 정확함보다는 풍부함을 지향한다. 작품 속 등장인물이 마녀라는 가정은 설치작품들에서 보여지는 조각난 육체들이 변형의 단계에 있음을 말한다. 부분적 육체는 온전한 전체라는 모델을 기준으로 본 결핍이 아니라, 변화의 단계 속에서 활기차다. 천정에서 내려오는 짝짝이 스타킹의 발은 통과하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경계 위에서 이동 중이다. 거울에 관련된 신화는 현실 따라하기의 저주에서 풀려난 존재들이 거울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상상을 말한다.




이명애, [드론 택배], 2016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라면’이라는 부제를 가지는 이명애의 작품들은 이 전시가 계속되는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전 세계 아이들의 공통적인 신화적 존재인 산타 할아버지에 얽힌 이야기이다. 작가는 ‘나름 눈치 빨랐던 전 일곱 살 때 이미 산타할아버지는 우리 유치원 체육 선생님인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놀이, 더 나아가 상상이 그렇듯이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은 물리적 사실보다는 유희적 규칙이다. 물리적 사실은 유희적 규칙에 의해 너무 둔탁하다. 물리적 사실에 체계적으로 접근해서 자연의 법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들은 소수의 과학자에게만 해당된다. 그러나 유희적 규칙은 그렇게 놀기로 결정하는 모든 차원에 존재한다. 이미 알고 있어도, 심지어는 아니까 재미있는 것, 허구인지 알지만 기꺼이 속아주는 것이다. 그것이 기만이고 불필요한 일일까? 예술적 허구는 잠이나 꿈의 역할과 비슷하다. 깨어있음이 가능하려면 잘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수애, [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2015


‘아름다움 찾기’라는 부제를 달은 이수애의 작품은 자신이 지은 책 [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에 삽입된 이미지이다. 이야기의 저자와 삽화가 일치할 때 그림책은 더 자족적인 우주를 형성한다. 작품 속 손이 여럿달린 애벌레는 미용실 의자에 착석한 나뭇잎 손님들의 헤어스타일을 만들어가면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나뭇잎 손님의 머리를 매만지는 애벌레의 수많은 손들은 마치 영화 [가위손]의 주인공처럼 마술사 같은 면모가 있다. 영어에서 미용사는 미학자와 같은 단어로 표현된다. 패션이나 헤어스타일, 화장법 등 일상 속의 미학은 전문 미학과 같은 수준에서 생각된다. 다양한 실루엣과 엽맥을 내장한 나뭇잎은 그자체로도 아름답다. 그렇지만 그것이 죽음을 통해 순환하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자연물이 아닌 인공물 나뭇잎은 썩지 않고 폐기될 뿐이다. 작가는 다음해에 재생될 것을 기다리는 낙엽을 공략하는 벌레들의 움직임에서 죽음을 포함한 삶의 국면을 본다.      




한경은 [숲마을과 발자국], 2017


‘호수아이와 세 개의 씨앗’이라는 전시부제는 한경은의 첫 그림책 제목이기도 하다. 이미지들은 그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자아낸다. 아이의 손안에 있는 [세 개의 씨앗]은 어떤 은유를 품고 있는 것인가. 생물학의 법칙에 의하면 씨앗 안에 이미 예정되어 있는 운명이 접혀져 있지만, 외관만으로는 그것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미지의 것으로 남아있다. 담쟁이덩굴이 빽빽한 도시의 건물들을 뒤덮고 있는 작품 [숲이 된 도시]는씨앗 이후의 국면일 것이다. 작품 [호수]는 일견 아름답지만 자세히 보면 도시가 물속에 잠겨있는 묵시록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빛을 향해 나아가는 한 인물은 절망 속의 희망을 나타낸다. 작품 [숲 마을과 발자국]은 말 그대로 동화 속 풍경 같은 모습이다. 만약 이야기가 해피앤딩이라면 이러한 이미지가 되지 않을까. 거기에는 각자의 앞마당이 있는 집들이 드문드문 있으며 자연은 풍요롭고 소복이 쌓인 눈이 지상의 결점들을 한꺼풀 덮고 있다.


출전; 구리아트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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