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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혜 / 죽음과 결합된 아름다움

이선영

죽음과 결합된 아름다움

  

이선영(미술평론가)

  

서인혜의 작품에서는 화면 하나하나가 마치 투명한 그릇이라도 되는 양, 혈액이 연상되는 밀도 높은 액체가 투명한 매질 속에서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더 시간이 지나면 균질 화 되겠지만, 작가는 과정중의 형상을 여기저기 풀어놓는다. 균질화란 해결, 또는 죽음이다. 유기체적인 비유에서 균질화란 해결보다는 죽음을 떠오르게 한다. 주변과 구별될 수 있는 경계가 없는 것에서 우리는 무생물과 같은 죽음을 본다. 경계가 해체되는 과정은 죽음의 시작이다. 그러나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언제든 자리를 바꿀 수 있는 삶의 짝패이다. 서인혜의 작품에서 붉은색으로 나타나는 혈액은 죽음 보다는 생명, 정지보다는 과정에 더 가깝다. 순간에 고착된 이미지를 완화시키기 위해서 작가는 비슷한 스타일의 시리즈 작품을 함께 배열한다. 작품마다 붉은 물감이 퍼져나가는 형태가 달라서 여러 개를 같이 놓고 보면 어떤 시간적 흐름이 느껴지는 것이다. 



[협력의 진화] 전(한원미술관)에서의 설치전경





그 밀도 높은 액체는 혈액, 특히 생리 혈을 떠오르게 하는데, 그것들은 종이 보다는 천위에 있을 때 보다 직접적이다. 최근 한 기획전에서 선보인 작품에서는 낡은 재봉틀과 붉게 칠한 천, 그리고 평면 작품들을 함께 걸어놓아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낡은 재봉틀은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작가보다 더 오래된 세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작가는 재봉틀을 붉은 실과 연결시켜 과거의 질곡과 모순이 현재에도 지속됨을 강조한다. 재봉틀 옆에 비치된 책제목 [여자의 일생]--할머니의 유품이다—처럼, ‘여자의 일생’은 한 여성이 태어날 때마다 되풀이 된다. 물론 사회가 진보하고 있으니 만큼 똑같은 반복이 아니라 차이가 있는 반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서인혜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피의 이미지는 보다 근본적인 것을 가리킨다. 혈연은 종족번식의 본능이라는 자연의 법칙 외에 사유재산을 계승하는 적자(嫡子)의 확보 문제와 깊이 얽혀 있다. 


진보 또는 발전이란 생산양식이나 생산력의 발전을 말하는데, 그에 걸 맞는 신체적 운명의 변화가 일어났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고 낳고 돌보는 역할에 상당부분 투자해야 하는 ‘자연적’ 운명을 가지고 있다. 서인혜의 요즘 작품들은 오래되었으면서도 새삼스러울 수밖에 없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그림이나 사물을 통해, 그리고 텍스트의 제시를 통해 총체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녀가 다루는 사물은 대체로 낡았다. 지금은 구하기도 힘들 세로줄 인쇄본 소설책이나 재봉틀이 대표적이다. 한 페이지씩 떼어 네 가필을 해 벽에 걸어 놓은 [여자의 일생]은 가독성은 떨어지지만, 어김없이 ‘여자’라고 집단적으로 호명된 성이 있다. ‘영원한 여성’ 즉 문명과 비교되는 여성에는 자연과의 끈이 선명하다. 이 자연은 착취와 소유를 포함한 대상화를 넘어서 다시 맥락화 되어야 할 것이기도 하다. 거기에다 한국화 재료 자체가 가지는 고풍스러움이 가세한다. 










여성이야기가 오래되었다 함은, 인류 최초의 불평등을 계급보다 성에서 먼저 일어났다는 유물론자들의 신빙성 있는 가설 때문이고, 새삼스럽다는 것은 그 많은 선구자들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은 여전하다는데 있다. 평등은 자유의 문제와 더불어 거듭된 도전이 아니고서는 결코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 난제로 남아있다. 페미니즘 예술 또한 이러한 도전에 가담해 오고 있다. 서인혜가 이러한 주제를 풀어나가는데 영감을 얻은 계기는 김치를 만들면서였다. 반으로 자른 배추의 형태나 그 위에 붉은 양념이 버무려지는 모습, 이후에 김치가 숙성되는 과정 등에서 여성성을 본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형태적 유사성 외에, 김치 담그기를 포함한 여성의 가사노동에 대한 평가절하에 대한 사회적 관심사가 보태졌다. 가사노동은 작가가 어릴 때부터 해왔던 예술 활동과 더불어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는 행위, 즉 경제학자들에 의해 ‘그림자 노동’으로 정의된 부분이다. 


인류와 노동의 재생산을 위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지만, 사적 영역에 감춰져 있던 것들이 하나둘 발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히 출산파업이라고 해야 할 출생률의 저하에 대해 사회적 차원의 고민과 해법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한국사회에서 가사노동의 가치가 한 달에 170만원 정도로 계산되었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보았다. 그렇게 계산되었다고 해서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이 170만원 정도 된다니까 꽤 높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여자가 남자의 3배 더 많이 가사노동을 한다는 내용이다, 그림자 노동으로서의 예술 문제는 어떠한가. 물론 예술 관련 직업이 있지만, 그것은 작업과도 별도인 사회적 노동에 속한다. 예술적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서 ‘젊은 여자’가 할 만 한 아르바이트—여성의 그림자 노동은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에서도 평가 절하되기 마련이다--들을 전전하면서 작가의 문제의식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몇 년 전의 작품은 여성의 성기가 암시되는 등 보다 직접적인 발언이 앞서기도 했지만, 요즘 작업은 성의 문제를 보다 포괄적인 맥락에 놓고자 한다. 흐르고 번지고 얼룩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체액은 종이나 천에 표현한다. 아교 대신에 안료의 고착제로 사용되는 콩즙은 색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들기 때문에 붉은 물감의 흐름은 피를 넘어서 몸의 느낌으로 확장된다. 광목천에 채색하여 설치의 형식으로 제시되는 붉은 평면들은 ‘뫼비우스 띠로서의 육체’(엘리자베스 그로츠)의 여러 양상을 보여준다. 벽에 공중에, 또는 다른 사물들과 연관되어 펼쳐지는 다양한 표면들은 (여성을 억압하는)유기적 질서가 해체된 상태를 말한다. 표면들에 얼룩진 액체의 이미지에서 여성의 몸은 또한 유체로도 비유된다. 이 체액은 경계를 넘나든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가 [순수와 위험: 오염과 터부 개념 분석]에서 개진한 바처럼, 경계를 위반하는 것은 불순하다. 


순수와 불순은 절대적 구분이 아니라 상대적 구분이다. 즉 경계가 구분은 만든다. 인류사회는 오염을 야기하는 위반을 금기시해왔다. 현대미술은 이러한 금기를 활용하여 선정적인 방식으로 수면 아래의 종교적 힘을 부활시키곤 한다. 메리 더글러스의 논의를 더욱 확장시킨 철학자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이다. 엘리자베스 그로츠는 [뫼비우스 띠로서의 육체]에서 메리 더글라스와 크리스테바가 유사하게 사물, 실체, 객체의 견고성을 와해시키는 체액의 역할을 인식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피, 토사물, 타액, 담즙, 고름, 땀, 눈물, 월경, 정액 등은 제각기 통제의 정도를 달리하면서 스며들고 흐르고 통과하며 입구와 출구를 찾아가고 상호교환의 통로나 세계와 교통하는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크리스테바는 [공포의 권력]에서 여전히 주변적인 액체지만 오염시키지 않는 두 체액으로 눈물과 정액을 지적한다. 반면 월경의 피와 배설물은 불결한 체액이다. 경계를 위반하는 ‘아브젝트’ 또한 성적 차이가 있는 것이다. 










크리스테바는 사회 속에서 오염의 의식화 과정은 성별의 엄격한 구별에 대한 강박 관념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남성을 여성보다 우위에 두는 것에 대한 강한 관심이다. 누군가 한계에서 아브젝트를 인격화하면서 정화작용을 약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와 부분의 관계가 해체되어 가는 현대에서 승화의 모델은 점차 사라진다. 동일시할 전체나 완전성, 정상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승화는 윤리적 당위에 머문다. 감춰져야 할 것이 편재하는 서인혜의 작품은 승화와는 거리가 있다. 삶의 귀감이 될 만 한 형이상학적 관념이 승화의 몫이라면, 그 반대로 아래로의 흐름에는 퇴행이나 도착이 자리한다. 이 흐름은 단지 삶의 반대 항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까지 포함하는 삶을 말한다. 크리스테바는 [공포의 권력]에서 아름다움과 죽음의 결합이야말로 글쓰기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서인혜의 작품은 크리스테바가 내건 조건이 특히 여성적 글쓰기(작품)에 해당됨을 알려준다.

 

출전;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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