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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 / 어스름한 풍경

이선영

어스름한 풍경

  

이선영(미술평론가)

  

실제 가보면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장소들이 최은경의 그림에는 감미롭다. 파스텔톤의 색감으로 대기에 부드럽게 녹아드는 필법에 따른 결과이다. 거칠거칠하고 육중한 바위도 구름처럼 가벼워지고, 공사장 파이프들도 천뭉치 같다. 경계란 긴장감을 주는 요소지만 명확한 선이 없는 그림은 두리뭉실하다. 그러나 최은경이 그리는 풍경의 실제는 한국사회의 모순이 중층적으로 쌓여 있는 작은 전쟁터들이다. 내용과 형식의 낙차 속에서 의미가 발생한다. 작가의 감성이나 태도에 따라서 형식은 결정된다면, 최근 작품, 특히 ‘우리 마을의 어스름’ 전에 나온 작품들은 차가운 현실도 따스하게 바라보는 심성의 발로인가, 아니면 실제를 왜곡하는 기만인가 판가름하기 힘들다. 흐릿한 풍경들에는 구체적인 장소성이 지워져 있다. 작가는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 만한 기표들을 흐릿하게 처리한다. 간판이나 플래카드에 정확히 적혀 있었을 문자들은 미지의 상형문자로 뭉개진다. 




인디프레스 설치전경



 비옷 입은 아이들, Oil on Canvas, 112x146cm, 2018



그러나 그 풍경들은 몽환적이기는 해도 비현실적이거나 이국적인 구석은 없다. 그곳은 왠지 친숙한, 즉 한국의 지방, 군소도시 주변을 닮아있어, 기시감이 있다.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장소인 것이다. 몽롱한 색감과 흐릿한 경계면으로 인해 지시대상은 불확실하지만 추상은 아니다. 작품의 소재가 되는 지역들을 뒤섞거나 밤낮을 바꿀 정도의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허공에 메달린 곳이 아니라 실제에 바탕 한다. 실제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조형언어의 자율성이 더 드러나는 역설적인 그림이다. 그곳들은 대개 작가가 장단기적으로 거주하면서 오고 갔던 한국 안의 작은 도시들이다. 수도권 일대에 전 인구의 반 이상이 거주하는 편중 현상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지방은 새로이 개발되는 곳과 방치된 곳이 나뉘어져 있고, 방치된 곳은 폐허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도시에서는 땅 한 뼘을 가지고 치열하게 지지고 볶아대는 가운데 폐허화 또한 가속화 되는 것이다. 


최은경이 그리는 장소들은 유령화 되고 있기에 몽환적인 것일 수도 있다. 특히 비나 구름 같은 기상 현상들이 가세하여 흐릿함은 더 강조된다. 날씨가 궂지 않아도 막에 감싸인 듯한 희뿌연한 풍경은 끝없이 흔들리는 듯하다.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는 장소는 껍데기만 있는 무대같은 모습이다. 작품 [겨울나무]에서 인적이 없는 쓸쓸한 길에는 배우 없는 조명만 밝혀 있다. 후경에는 가로등 빛이 강렬한 마을이 있는 작품 [우리 마을의 어스름 2]에서는 전경의 주차금지 고깔들이 사람들을 대신한다. 인간과 사물은 같은 힘에 의해 배열된다. 어떤 장소에 사람이 드물어지는 것도, 사물의 질서에 관철되는 같은 힘에 의한 것이다. 깃발 든 사람이 등장하는 작품에는 여러 힘들 가운데 권력이 암시된다. 여기에서 권력은 안개처럼, 구름처럼 편재하며 권력이 작동될 대상에 스며든다. 그 권력의 존재는 가려져 있으면서도 드러난다. 




 여름 소풍, Oil on Canvas, 112x146cm, 2018



 밤 소풍, Oil on canvas, 53x65cm, 2018



 물바람 1, Oil on Canvas, 130x162cm, 2018



나지막한 지붕이 보이는 마을 풍경이 있는 [우리 마을의 어스름 1]에는 태양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미군기지의 레이더이다. 지방 군소도시는 권력의 주변부에 있지만, 이 주변은 주변화를 거부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작품 [우리 마을의 어스름 4]에서 야간 가로등 빛 아래에서 깃발 들고 걷는 사람들은 깃발과 어울리지 않는 고요하고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분위기가 있다. 비록 미술사에서 초현실주의가 혁명을 외치기도 했지만 말이다. 시골의 작은 도로에 깃발 든 사람들과 경찰들이 보이는 [우리 마을의 어스름 5]은 이런 곳에서 도대체 무슨 첨예한 이해관계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것은 중심/주변의 관계에 깔린 갈등의 연장이다. 그곳은 현대사회의 모순을 규모와 차원을 달리 한 채 무한히 반복되는 지점 중의 하나이다. 서울 토박이인 작가는 작업 때문에 지방을 돌아다니는 중이라, 지나가면서 보는 관점이 드러난다. 작품 [비옷 입은 아이들]은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야기한 물대포 포격 광경이나 세월호 사건같은 대량 수몰 사고를 떠올리는 장면으로, 유리창의 물자국이 선명한 창을 통해 본 풍경이다. 


작가는 주변에서 재생산되는 권력투쟁을 멀리서 바라본다. 그렇지만 그것은 떠도는 자신의 삶과도 관계되는 내재적인 풍경이다. ‘우리 마을의 어스름’이라는 제목은 작가가 그곳들을 ‘우리’라는 범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우리 마을, 우리 집 등등은 존재가 출발하는 가장 자명한 토대였지만 위기에 처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사라지려는 것들을, 스펙터클의 사회에 의해 위기에 처한 회화로 기록한다. 일종의 동종요법이다. 아련한 색감과 형태는 이미 사라진 것에 대한 기억 같기도 하다. 가족이 둘러앉아 야외에서 점심을 먹는 모습을 그린 [여름 소풍]은 이미 이 세상의 모습이 아닌 듯 비현실적이다. 소풍자리에 깔린 바위들을 구름처럼 부드럽게 묘사한 탓에, 어떤 관객은 여기에서 무릉도원을 보았다고도 한다. 야간조명을 켜고 낚시하는 사람들을 그린 [밤 소풍]은 아래의 반사면 때문에 낚시꾼들이 공중에 걸려 있다. 작품 [물바람 1]도 물의 반사면 때문에 바닥이 없는 듯한 심연의 현실이 드러난다. 




 물바람 2, Oil on Canvas, 73x61cm, 2018(우)



 물바람 2, Oil on Canvas, 73x61cm, 2018(좌)



 앉아있는 사람, Oil on Canvas, 91x117cm, 2018



작품 [노년의 꿈]은 낙향하여 여생을 보낼 땅을 바라보는 아버지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이지만, 묵직한 하늘의 구름 탓인지 그 아래의 빈 땅은 밝은 미래를 약속할 것 같지 않다. 벌겋게 파헤쳐진 땅이 있는 [아무도 마을]도 용도가 불확실한 ‘부동산’으로 보일 뿐이다. ‘우리 마을의 어스름’ 전에서 ‘우리’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오용되고 남용되었기 때문에 다소간 풍자적인 울림이 있다. 줄 하나에 매달려 빌딩 유리창 청소하는 사람 두 명을 다른 각도로 포착한 한 쌍의 작품 [물바람]에 나오는 노동자나, 작품 [앉아있는 사람]에서 공사 자재들이 가득 쌓인 어수선한 풍경 구석의 날품팔이 노동자를 누가 ‘우리’로 호명해줄 것인가. 썰렁한 현실을 감싸는 따스한 기운만이 연대하는 타자의 존재를 암시한다. 한편 인간을 대신하는 수직적 존재인 나무들이 있는 자연 풍경은 보다 여유롭다. 그것은 인간사 보다 큰 주기를 가지는 자연사에 속한다. 


세월호 사건의 흔적이 아직 가시지 않은 진도 근처의 풍경을 채우는 바다와 하늘, 땅과 나무는 보라의 무한한 계열이 펼쳐지는 장이 되었다. 자연은 하나의 색조만으로도 무한히 풍부하게 표현될 수 있다. 물론 최은경의 작품에서 자연과 역사는 섞여 있다. 최근 작품에는 물이나 구름같은 이미지가 두드러지는데, 그것은 깃발을 들고 투쟁을 야기할 만큼 심화된 사회적 모순을 다소간 완화해준다. 그것은 비 오는 날 유리창으로 본 풍경처럼 멀리에 있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등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고난은 한국의 중소도시 주변부가 아니라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감내해야 하는 운명적인 것이 되었다. 모든 것을 뒤섞는 물의 이미지, 그리고 지상의 크고 작은 사건들 위에 무심하게 떠 있는 뜬구름은 작가가 바라보는 이 세상 풍경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을 있는 그대로의 잔인한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내지 못하는 작가의 천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우리 마을의 어스름 4, Oil on canvas, 112x162cm, 2018



 우리 마을의 어스름 5, Oil on canvas, 112x162cm, 2018



 우리 마을의 어스름 2, Oil on canvas, 112x162cm, 2018



 우리 마을의 어스름 3, Oil on canvas, 97x130cm, 2018



한국 사회의 모순이 극도로 돌출되었을 때, 바쁘게 작업하는 와중에도 주말 촛불집회에 꼬박꼬박 참여할 만큼의 행동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작가의 성향은 작품의 면면에 스며있다. 그러나 최은경의 작품은 작가의 성향이나 경험 같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넘어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것은 근대를 추동하는 어떤 근본적인 힘에 대한 표현이다. 작가는 ‘우리’와 ‘마을’을 무색하게 하는 한국사회의 모순이 펼쳐지는 장을 암시하거나 명시한다. 긴급한 사회적 현안과 관련된 풍경에 스며있는 물이나 구름의 이미지는 근대의 유동성을 표현한다. 마샬 버만은 [현대성의 경험]에서 ‘현대적으로 된다는 것은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생활을 소용돌이로 경험하는 것이고 영원한 해체와 재생, 고난과 고통, 애매성과 모순 대립 속에서 자신의 세계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묘사하면서, ‘견고한 모든 것이 대기 속에 녹아버리는 세계의 일부분이 되는 것’으로 현대성을 압축한 [공산당 선언]을 인용한 바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도 [액체 근대]에서 근대가 액체적 속성을 가졌다고 요약하면서, ‘근대적이라는 것은 멈출 수 없다는 것, 가만히 서 있기는 더욱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풍경 곳곳에 물바람이 들이치는 최은경의 작품에는 이러한 근대적 유동성이 내재한다. 여기에서의 변화는 현실적이면서도 잠재적이다. ‘모더니즘은 시간과 공간의 경험에서의 위기에 대한 반응’(데이비드 하비)이며, 근대예술가는 이러한 상황과 관련된다. 모더니즘을 정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시인 보들레르는 근대의 예술가가 유동적이고 순간적인 것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두 가지 근대를 구별한다. 그에 의하면 과거의 근대성은 무거운 것으로, 오늘날 가벼운 근대성과 대조되며, 확산이나 모세혈관 식 분산과는 대조되는 고체의 특성을 지닌 응축된 상태이다. 또한 그물망 식의 조직과 다르게 체계적이다. 최은경이 포착하는 근대는 후자이다. 




 겨울나무, Oil on Canvas, 130x97cm, 2018



 우리 마을의 어스름 1, Oil on canvas, 91x117cm, 2018



물, 바람, 구름같은 유동적 요소들은 굳어진 것들을 상대화한다. 작품 속 깃발을 든 사람들 또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요소이다. 즉 그들은 마샬 버만이 [현대성의 경험]에서 ‘현대성이란 역설적인 통합, 즉 분산된 통합을 의미. 그것은 또 영원한 해체와 갱신, 투쟁과 대립, 애매모호성과 고통이라는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 우리 자신을 밀어 넣는다’라고 표현한 바 있는 상황 속에 있는 주체들이다. [액체 근대]는 지난날 장구한 세월의 전근대 시기 동안 시공간은 긴밀히 얽혀 있었고, 따라서 거의 구분 불가능한 삶의 경험으로서 견고하고도 외관상 침입 불가능한 일대일 교신 속에 봉쇄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된 순간부터 근대는 시작된다고 본다. 지그문트 바우만에 의하면 근대에 들어와 시간은 역사를 갖는다. 그러나 그 시간성이 단선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발전이고 누군가에게는 진보인 선적 시간성은 좌우를 막론하고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그렇지만 근대의 단선적 시간성은 완벽히 관철되지는 않는다.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큰 방향성 가운데에서도 시간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다른 속도로 흐를 수 있다. 최은경이 다루는 장소는 대개 지방의 원도심으로, ‘창조적 파괴를 통한 발전’(슘페트)이라는 근대의 개발 논리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곳들이 지체되어 보이는 것 자체가 근대적 시간 감각에 의한 것이다. 그곳들은 개발이 지연된 곳, 전통적 의미의 마을을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질서가 수립된 고도 아닌 과도기적인 곳이다. 최은경은 길을 자주 그린다. 길이 바로 과도기적 공간이다. 최은경의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길 위에 서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었던 안정된 상태도 아니고 근대 시스템의 혜택을 받는 곳도 아니다. 자연스러운 사멸에 맡겨진 채 방치된 곳이다. 그곳에서의 삶 또한 피폐하다. 만약 그가 중심만을 바라본다면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곳은 시간이 느리게 가거나 멈춰진 것처럼 보이며, 파괴를 아니면 전진하지 못하는 근대적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아무도 마을, Oil on canvas, 130x97cm, 2018



 노년의 꿈, Oil on canvas, 162x130cm, 2018



 (진도에서의) 섣달그믐,  Oil on Canvas, 130x194cm, 2018



비판적인 지점이 있는 가운데 심미적인 면모 또한 있는 곳이다. 그 점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으로 이동하여 여유 있는 여생을 꿈꾸는 아버지의 모습에 투사되어 있고, 전국을 떠돌며 작업하는 삶을 이어가는 작가의 현실과도 닿아있다. 그런 곳들이 아니라면 타자화된 예술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다. 근대적 발전이 저지된 곳, 지체된 곳, 방치된 곳에서 근대는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낸다. 최은경은 근 몇 년 동안 전국에 산재한 레지던시에 참여하면서 접했던 외곽지역의 민낯과 노쇠한 몸통을 주시해 왔다. 화려한 발전상이 가리는 자본주의의 물신적 체계에 현재하는 또는 잠재하는 균열은 기후를 형성하는 요소들로 인해 더욱 느슨해진다. 최은경의 흐릿한(부드러운) 풍경들은 역설적으로 분명(날카로운)하기도 한데, 그것은 근대자본주의의 모순에 의해 함께 고통받는 예술가들을 포함한 타자들의 실천이 집중돼야 할 지점들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전; 전북도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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