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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이선영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이선영(미술평론가)

  


김재경은 [산책] 전에서 산책을 하면서 생기는 시야와 육체, 감정과 사고, 지각과 기억 등의 변화를 공시적으로 배열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산책은 매우 다양한 활동을 포괄한다. 물리적인 의미의 산책뿐 아니라, 새로운 사람과 책, 음악과 공연을 만나는 것도 모두 산책에 포함된다. 잠을 잘 오게 한다는 한약재 냄새가 나는 공(共)감각적인 공간은 산책의 범주에 꿈도 포함됨을 알려준다. 디지털 생태계가 펼쳐지면서 산책은 사이버 공간 속에서의 서핑으로 바뀐 듯도 하지만, 코드에서 코드로 이어질 뿐인 디지털 생태계에서의 ‘활동’은 실제의 움직임처럼 심신을 갱신하지는 못한다. 산책은 점에서 점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선적인 이동이며, 중간에 무수히 갈래를 칠 수 있는 복잡한 선적 이동이다. 비록 그 산책자가 철학자 칸트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경로를 통과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김재경에게 산책은 이야기이다. 공간에 들어서서 움직이고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봉산문화회관 설치 전경



다양한 공간적 관계로부터 생겨나는 시간, 즉 이야기를 펼치는 방식이 흥미롭다. 4 미터가 넘는 천정에 10-200cm 크기 사이의 자작나무 합판들이 180개가  벽에 붙어있거나 공중에 매달려 있고, 바닥에 놓여있거나 기대어 놓은 이미지들은 사람과 동물, 집같이 산책 중에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작가가 압축적으로 재현해 놓은 상징적 우주 속에서는 동물의 비중이 꽤 높아 공존의 의미를 살린다. 하나로 환원되는 시점(가령 인간중심주의같은)이야말로 작품 [산책]이 부정하는 것이다. 차 한 대 더 세우기 위해 잘려진 아름드리 나무,  로드 킬이 빈번이 일어나는 죽음의 도로는 만물과 대화하는 산책자를 슬프게 할 것이다. 두툼한 자작나무 판을 오려서 만든 대상의 실루엣들은 재현적 이미지이기보다는 그림과 기호의 중간쯤에 있는 것이 마치 그림기호(pictogram)처럼도 보인다. 사람 안에 쓰여진 글자나 말풍선 속의 글자들은 추상적 기호에 해당한다.  


한문과 한글, 유럽어권까지 다국적적이다. 산책이 아니어도 현대인은 걸어 다니면서 많은 언어적 활동을 하는데, 생각하기, 말하기, 노래하기, 듣기, 읽기 등이 그것이다. 걷기라는 시간적 현상은 언어적 활동에 내재된 시간성과 조응한다. 실제로 걷기가 사고를 활성화한다는 과학적 연구가 있으며, 그것은 경험적으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추상적인 사고를 추동하는 머리는 아예 말풍선 형태로 되어 있다. 말풍선을 거꾸로 배치하여 경쾌하고 멋스러운 분위기를 냈다. 머리 위의 돌출부는 실제의 말풍선과 끝말잇기처럼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이 짝패는 마치 하나의 반죽을 두 개로 갈라놓은 듯, 한 덩어리에서 나온 실체들이다. 이러한 이미지에 의하면, 사람은 말을 낳고 말은 사람을 낳는다. 그것은 상징적인 우주에서 태어나는 인간의 운명이다. 관객이 알아볼 수 있는 부분/없는 부분을 총괄해서 언어가 차지하는 부분은 꽤 크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말풍선을 위에 달고 있는 산책자가 관객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태평가부터 샹송까지 시나 노래가 많다고 해서 서정적이지만은 않다. 










라캉을 비롯한 현대의 정신분석학자들은 언어가 인간을 인간이게도 하지만 인간을 미치게도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인체 실루엣 안에 많은 기호적 도상들이 낙서하듯이 그려진 김재경의 작품은 인간이 결코 자연적으로 태어나고 사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이미지대로 오려진 나무 합판에 오일 스틱으로 쓴 글자들은 말 그대로 씌여진 것이지, 그려진 게 아니다. 김재경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드로잉이다. 공중에 매달린 평판 설치물들은 공간에 그려진 드로잉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은 여기저기에 써있는 다국적 글자를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저 조형적인 차원에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반쯤 비치는 노방 천에 쓴 글자들은 그 자체로 확정된 말이 아니라 ‘차이에 의한 연기’, 즉 ‘차연’(자크 데리다)으로 작동되는 언어의 면모를 표현한다. 간략하게 표현된 인체상이지만 특히 가장 중요한 눈이 생략된 인체형상들은 시야의 중심에 놓인 주체를 해체한다. 


그것은 언어의 중심에 주체가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주체를 중심에 놓는 시야의 대표적인 관례는 원근법이다. 주체의 눈으로부터 발사되는 사각뿔 형태의 체계 위에 대상들이 차곡차곡 배열되어있는 르네상스 이래의 그 전통 말이다. 그러한 관례가 벽 뒤로 뚫린 창문을 전제했다면, 김재경의 경우 그러한 가상적 창문을 깨 버린다. 전시장은 원근법적 체계를 이루는 평행의 면들이 산재된 것으로 가정된다. 실제로 몇 년 전 작품은 반투명 아크릴로 작업하여 깨진 파편 같은 느낌을 더 주었다. 거기에서는 가까이서 본 고양이, 멀리서 본 새, 언덕을 올라가는 사람, 아침에 본 집, 몇 년 전에 들었던 노래, 지난겨울의 나무 등이 함께한다. 다양한 시공간이 공존하는 그곳은 유토피아이기보다는 헤테로피아이다. 그래서 전시공간은 하나의 좌표가 아니라 무수한 좌표들이 잠재한다. 거기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하고 있지만, 시공간적으로 시점과 종점이 같지 않다. 










실루엣으로 표현된 것들은 직선적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복잡하게 휘어져 있는 미로 같은 시공간에서의 이동이다. 이러한 유동적인 시공간 속에서 몇 년 전에 죽은 고양이를 생전의 모습으로 만날 수도 있고, 나의 어린 시절 집을 방문하거나 내 미래의 모습을 맞닦뜨릴 수도 있다. 다양한 스케일의 크기 때문에 매우 많은 것들이 잡다하게 걸려있는 것 같지만, 김재경이 사용하는 이미지는 많지는 않다. 작가는 선택된 핵심적인 구성요소로 최대한 다양하게 연출했을 뿐이다. [산책]은 시각적이기보다는 언어적이다. 그것은 조합의 방식에 따라 다른 문장을 만드는 언어인 것이다. 만약에 그 반대의 경우라면 그저 색색깔의 모빌이 걸려있는 장식적인 작품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특히 화려한 색감과 유희적 형태들이 그러한 느낌을 줄 것이다. 그러나 김재경의 작품은 형태의 유희만큼이나 이야기가 중요하다. 


가령 김재경의 설치 작품에는 집이 많이 보이는데, 그것은 산책은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일수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작품 속에 내재된 서사성과 관련지어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이 된다. 어떤 도상은 나무 패널 위에 가지런히 안착되어 있기도 한데, 이런 작품은 매달리지 않고 그림처럼 벽에 걸린다. 그림 또한 무수한 변곡점을 가진 미로의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나무판을 오려서 만든 이미지들을 여러 높이로 매달아 놓은 공간에 가늘게 새어 들어온 바람은 그림자 유희를 낳는다. 그림자처럼 새까만 도상도 벽에 붙어있다. 검은 새는 빅뱅처럼 잠재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우주 너머의 또 다른 차원을 암시하는 듯한 구멍(또는 통로)처럼 보인다. 벽 귀퉁이에는 날개 달린 사람이 어중간하게 걸쳐 있는데, 날아오르려 하는 것인지 추락 중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대체로 공간에 띄워있는 많은 이미지들이 아래로의 중력을 향하는 것은 분명하다. 










새와도 같은 자유로움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땅에 발을 딛는 지상의 삶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공간적인 유희를 즐겨하여, 둥그스름한 천정의 한켠의 공간을 놓치지 않고. 작은 집, 동물 이미지들을 배치했다. 좁은 골목길을 연상시키는 이 구역은 피할 수 없이 맞닦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길게 드리워진 노방 천은 공간을 분리하면서도 이어준다. 앞판에서 단절된 이야기가 뒤판으로 연결되거나, 뒤판의 글자들이 앞판의 번역이 되는 등, 단절과 연결의 관계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보다 정확하게는 단절이 연결을 야기한다. 모빌처럼 매달려서 약간의 움직임은 있지만, 키네틱 아트라고 할 수는 없는 김재경의 작품에서 움직임은 관객이 다가서서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 기호들은 다른 배치와 다른 관계망을 이루어 다른 이야기로 엮여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거기에는 원근법 이전의 서양 회화나 동양화에서처럼 다시점이다. 하나의 중심이 아닌 다양한 중심으로 이루어진 우주 안으로 관객을 밀어 넣는 작품 [산책]은 그림 안으로 산책하게 하는 장치이다. 

 

출전; 봉산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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