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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룡/ 자물쇠와 열쇠로 본 세상

이선영

자물쇠와 열쇠로 본 세상

  

이선영(미술평론가)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나 중국과 한국에서 미술대학을 다니고, 또 양국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던 조각가 김권룡의 최근 작품은 열쇠를 용접하여 만든 철조작품들이다. 주제에 따라서 철 이외에 나무 같은 재료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중국에 있는 작업실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작업실 한 켠에는 다양한 형태의 열쇠 꾸러미가 가득할 것 같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동네마다 열쇠 장인들이 영업을 하고 있어서 반짝거리면서 찰랑거리는 다양한 열쇠 꾸러미들을 구경하곤 했는데, 이제는 상당수가 디지털 도어록으로 바꾸는 추세라 그런 열쇠 가게들을 찾기 힘들다. 세상은 점차 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정되는 것들로 가득해진다. 생활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물건들이 점차 사라질 무렵, 물건들은 사물로, 때로는 유물로 다시 나타난다. 예술에서 사용된 물건이 바로 사물이다. 사물은 물건에 비해 좀 더 많은 겹을 가지고 있다. 



[관계-1]



사물은 최초의 기능을 대신하는 또 다른 기능들을 부여받는다. 가령 김권룡에게 금속 열쇠는 조각작품의 재료가 된다. 그가 용접작업을 통해서 늘려나간 것은 뻔한 물건에 잠재된 층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은유는 그가 구사하는 주된 어법이다. 전통과 자연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점차 새로운 상품으로 가득해지기 시작할 무렵, 초현실주의자들은 금 새 낡은 것이 되는 새로운 물건들이 가지는 독특한 힘을 발견하고, 이를 예술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초현실주의자들에게는 만들어진 것보다 발견된 것이 더 가치가 있었다. 그것은 대상보다는 대상을 보는 주체로의 관심 이동을 말하지만, 대상의 지위가 점차 불확실해지는 만큼 주체의 위치도 불확실해져 간다. 1981년 생의 젊은 작가에게 세상은 열쇠로 따고 들어가야 하는 수많은 문으로 보였을 것이며, 작업이란 그 앞에 놓인 수많은 문을 통과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는 ‘자물쇠라는 덩어리는 본인이 마주하고 있는 잠겨진 문이라면, 수많은 열쇠들은 그 문을 열어나가려는 본인의 고민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문도 있을 것이며, 스스로 만든 문도 있을 것이다. 문은 주체에 앞서 존재하는 상징적 우주의 주된 구조물이다. 작업하는 삶이란 최소한 투트랙을 통과해야 한다. 작업하는 삶이 길어지고 깊어질수록 자신이 만든 문을 통과하는 일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리고 더 어려워질 것이다. 작품이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나름의 자율적 여정을 거치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것이라 할지라도 열쇠가 필요할 때가 있다. 정신분석학이 발견한 무의식의 영역이 그런 것 아닐까. 무의식이란 의식과 함께 나에게 속한 것이라고 간주 되지만, 동시에 낯선 대륙이다. 무의식적인 나는 자명한 것이 아니라 발견되어야 하는 미지의 대상이다. 예술 또한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만, 나는 알려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보통 사람들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직업이나 나이, 성에 따른 정체성을 자기의 전부 인양 생각하고 산다. 그러나 그러한 정체성마저도 극히 취약한 바탕에서 구축된 것이라는 점이 유동적인 사회환경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김권룡이 작품은 금속으로 된 단단한 것이지만, 용접을 통해서 무게감을 덜어낸다. 용접된 열쇠들은 망을 이루면서 개방감을 보여준다. 그것은 불가분한 단단한 덩어리가 아니라 입자들의 모임이고, 그가 작품 제목으로 잘 사용하는 [관계]이다. 관계를 통해서 대상이 만들어진다. 형태만큼이나 형태와 상호작용하는 빈 공간이 중요하다. 마치 원자론에서 허공의 존재가 중요하듯이 말이다. 허공은 변화가 시작되고 진행되는 곳이다. 그의 작품에서 열쇠는 마치 원자처럼 헤쳐 모이면서 다양한 사물을 만든다. 흩어진 원자들이 모이는 양태에 따라 다른 모양이 만들어진다. 작가는 그러한 작품들에 [관계]라는 제목을 붙였다. 열쇠는 열쇠 구멍이 있는 어떤 대상을 상정하고 있으며, 음과 양처럼 양자 간의 관계가 성립된다. 잘 맞는 열쇠, 맞지 않는 열쇠 등으로... 작가는 열쇠와 자물쇠의 관계를 ‘모순(矛盾)’과 비교한다. 열쇠와 자물쇠는 창과 방패와 같은 관계를 가진다. 




[관계-문]



그의 작업은 대량으로 만들어진 것, 즉 레디 메이드인 열쇠들을 하나하나 용접해 가면서 구성되는 전형적인 아나로그 작업이지만, 디지털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대두된 ‘키워드’ 또한 떠올린다. 이제는 정보가 너무 많은 나머지 키워드 없이는 정보라는 바다를 항해할 수 없다. 키워드는 정보화 시대의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본 모양으로 만들어진 작품 [관계-구]는 받침대에 비스듬히 걸린 지구 부분이 열쇠로 되어 있는데, 마치 사이버 공간에서의 인터넷 표시처럼 지구를 촘촘하게 둘러싸는 정보의 망을 떠오르게 한다. 하트의 양 굴곡을 이어주는 선으로 이루어진 작품 [관계-10]은 전 지구적인 차원이든 사적인 차원이든 상호 간에 이어지는 것들은 마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김권룡의 작품은 지구촌 시대를 반영한다. 정보가 돈이 되는 시대의 창과 방패는 자물쇠와 열쇠일 것이다. 이전 시대에 은행강도가 있었다면, 이제는 암호의 열쇠를 훔쳐가는 해커들이 있다. 


열쇠가 단순히 열쇠를 넘어 그 자체가 몸통을 이루곤 하는 그의 작품은 언어의 자기지시성을 강조한다. 즉 김권룡의 작품에서는 자물쇠와 열쇠의 구별이 사라진다. 가령 작품 [관계-1]은 자물쇠 모양의 형태를 보여주는데, 열쇠 구멍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물쇠의 몸통 부분은 열쇠들로 이루어져 있다. 문(門)이라는 문자가 들어가는 작품에서처럼, 열쇠는 일종의 기표로 다가온다. 기표는 본래 대상이나 의미와 연결된 것이었지만, 점차 분열을 거듭하면서 거의 자율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대상이나 의미와 붙어있지 않고 끝없이 미끄러지는 기표에 대한 현대적 담론이 있다. 마단 사럽은 자끄 라캉에 대한 입문서인 [알기 쉬운 자끄 라깡]에서 자끄 라캉은 소쉬르를 비롯한 언어학자들과 달리, 기표와 기의 간에는 안정성이 없음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라깡의 설명에 의하면 기의는 기표 아래서 미끄러지며 이것을 위치시키고 경계를 정하는 우리의 노력에 저항한다. 


[알기 쉬운 자끄 라깡]에 의하면, 소쉬르로서는 말은 기호이며 기표와 기의의 결합이다. 그러나 라깡에게 기표는 대상이 아닌 언어의 사슬을 지칭한다. 즉 기표는 다른 기표만을 지칭할 뿐이다. 기의가 마침내 유효범위 내에 들어올 때에도 이것은 더 많은 기표로 용해될 뿐이다. 기표와 기의 사이의 빗장을 라깡은 의미화에 저항하는 장벽이라고 설명한다. 라깡은 기표와 기의라는 두 영역이 결합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표 아래 기의의 끝없는 미끄러짐이 있다고 주장한다. 마단 사럽에 의하면 라깡의 이론에서 진실은 기표와 기표 사이의 공간에, 그 사슬의 구멍에 존재한다. 김권룡의 작품에서 열쇠들로 이루어지는 자물쇠의 이미지는 몸통은 사라지고 기표만이 표면에 떠 있는 현대의 존재를 표현하는 듯하다. 의미보다는 기표가 중시되는 사회에서 남는 것은 열쇠들 뿐이다. 더 이상의 비밀의 문은 없다. 열쇠들의 연결고리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관계-구]



기의/기표의 임의적 관계에 대한 현대적 담론이 다소 난해하다고 생각된다면, 일상 속 상품의 세계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생산된 것들에는 가격이 매겨지지만, 가격이란 유동적이다. 가격이 상품에 딱 붙어있는 것은 아니다. 말과 사물의 관계처럼 말이다. 심지어 가격을 맞추기 위해 생산된 것을 폐기하기 한다. 상표는 어떠한가. 유명 브랜드의 상품에서 가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상표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 비용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이전 시대의 주체/객체의 구별에 의거한 이원론이 사라져가는 것처럼 결국 하나의 추세, 즉 코드화만이 남게 된다. 코드화된 것만이 상품이 되어 거래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은 코드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코드화 될 수 없는 것은 무가치하거나 아니면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코드화되고 나자마자 그 코드를 벗어나야 하는 운명을 가진 예술작품은 전부 아니면 무(無)라는 잔인하고도 흥미로운 게임에 속하게 된다.  

  

출전; 미술과 비평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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