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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밸런스 전 / 역사의 끝자락에서

이선영

역사의 끝자락에서 

  

이선영(미술평론가)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귀국 보고인 ‘카운터밸런스’에는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반전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 삽입된 짐 모리슨의 노래 [the end]처럼, 모든 것이 끝장난 버린 듯한 암울하고도 냉소적인 비전이 깔려 있다. 특히 아버지 세대와의 괴리가 발견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둑한 전시장에 화려한 네온 빛으로 펼쳐진 환락가적 이미지 속에서 서구 문화의 신성한 도상들을 불경스럽게 변형시킨 코디 최의 작품이 그렇고, 모든 것이 부스러진 채 병렬적으로 배열된 이완의 작품이 그렇다. 거기에는 전쟁 영화같은 피흘리는 잔인함이나 강한 메시지는 없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에 못지않은 또 다른 차가운 전쟁이 펼쳐지는 장이다. 그것은 이 전시가 작년에 베니스에서 펼쳐진 국가 간 문화의 전쟁의 결과물이어서 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작품에 호명된, 서구 제국과 상호관계 속에 있었던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근대사가 그만큼 처절했기 때문이다. 




코디최 전시전경, 아르코 미술관(이하 사진 출전; 아르코미술관)



이완 전시전경



전쟁과 혁명으로 점철된 아시아의 역사는 산업혁명으로 먼저 근대를 치고 나갔던 서구 열강과 밀접하다. 예술감독 이대형은 ‘Mr. K’라는 익명의 인물인 할아버지와 1961년생의 코디최를 아들세대로, 1979년생의 이완을 손자세대로 가정하면서 매우 광범위한 소재를 다루는 전시작품의 서사를 구성했다. 이완은 황학동에서 Mr. K의 전 생애가 담긴 사진 1412장을 단돈 5만원에 구입하여 아카이브적 성격을 띄는 그의 작품에 포함시켰다. 실존했던 그 인물은 끝없이 나열된 수집물에 나름의 축을 만들어준다. 한국전쟁과 외환위기까지 모두 겪었던 김할아버지 세대에게 역사적 기억은 고통이자 사치였을 것이다. 그래서 앞만 보고 달리는 한국 근현대사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기묘한 기능주의를 발휘하여, 이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 하여금 비약적인 물질적 진보를 가져오게 했다. 과정보다는 결과로 마주하게 된, 즉 물화된 그 세계에 대한 두 세대 작가의 대응은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 교수도 했으며 동시대 문화지형도를 그리는 비평서도 출간한 작가 코디최는 이 나라를 뜨고 싶어 하는 좌절된 사람에게 무엇인가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서 그는 선진 사회에 유혹 당했고 유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완은 맹목적이리만치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수집하고 읽으며 해석 하는가 하면, 동시에 미궁에 빠트리기도 한다. 다소간 구별될 수 있는 두 방식에 의해 발전주의의 그늘에 있던 것들이 드러난다. 코디최의 작품에서는 어스름한 환락가의 빛으로, 이완의 작품에서는 냉랭한 실험실이나 박물관 같은 조명 아래에서 말이다. 이완의 경우에는 불 꺼진 무대도 관람의 대상이 된다. 그들에게 김 할아버지로 대표되는 역사는 끝났다. 그와 보조를 맞췄던 예술도 끝났다. 코디최의 작품에서 서양의 고전은 망가뜨리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이완의 작품에서 역사적 유물은 이리저리 분리된 채 싸구려 시뮬라크르로 제시된다. 그들의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예술의 대조 항으로 간주되었던 키치와 사물이 전면에 놓인다. 




 Venetian Rhapsody – The Power of Bluff (nightview)

Cody Choi, Venetian Rhapsody – The Power of Bluff,2016-17. Neon, LED, Steel, Canvas, PVC. 1243x1033x111cm. Night installationview at the Korean Pavilion, 57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LaBiennale di Venezia. Photo by Riccardo Tosetto. Courtesy of the Artist.



Color Haze (Venice installation view)

Cody Choi, Color Haze, 2016. Moving light, glasses,fog machine.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at the Korean Pavilion, 57thInternational Art Exhibition,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by Riccardo Tosetto.Courtesy of the Artist.

 



Cody's Legend vs. Freud's Shit Box (Veniceinstallation view)

Cody Choi, Cody’s Legend vs. Freud’s Shit Box, Ed2/3+AP, 2017. Bronze, wood, steel. Installation view at the Korean Pavilion, 57thInternational Art Exhibition,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by RiccardoTosetto. Courtesy of the Artist.

 



 The Thinker  (Venice installation view)

Cody Choi, The Thinker, 1995-96. Toilet paper,Pepto-Bismol, Wood. Installation view at the Korean Pavilion, 57thInternational Art Exhibition,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by RiccardoTosetto. Courtesy of ARARIO Museum and the Artist.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에서 말했듯이, 이성과 욕망을 앞세워 진보하던 역사는 끝이 나고 역사주의적 비전과 함께 했던 예술도 종말을 맞고, 또 다른 무엇인가를 동력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서의 고민이 담겨 있는 것이다. 후쿠야마의 책은 이성과 욕망에 의해 추동된 역사의 비전을 분명히 앵글로 색슨의 전통이라고 규정짓는다. 그것은 단지 배부르고 등 따순 것에 만족하는 물질주의적 전통을 말한다. 이성은 욕망을 충족시켜주었던 수단이 되었지만, 남은 것은 허무였다. 그래서 [역사의 종말]의 저자는 이성과 욕망으로는 충분치 않고, 일찌기 플라톤이 언급한 패기(thymos)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패기가 잘못되면 아무 이유 없는 전쟁이 만연할 것이다. ‘이해관계 보다는 열정’(앨버트 허쉬먼)을 중시했던 이전의 귀족 사회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니이체에 의하면 패기는 예술가의 덕목이다. 청년시절에 보다 발전된 사회인 미국으로 건너가 그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온갖 고생을 했던 코디최의 작품에는 서양 문화의 전설을 이끌었던 도상들이 냉소에 붙여진다. 패기에 찬 젊은 시절의 코디최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분홍색 소화제—그는 전시장 입구 또는 출구에 [소화불량에 걸린 우주]라는 콜라주 작품을 붙여놓았다--이다. 


그것은 이방인으로서는 소화하기 힘들었던 ‘선진’문화에 대한 익살스런 반응이다. 근대적 주체의 상징인 ‘생각하는 사람’은 분홍빛 욕망으로 치덕치덕 발려진 채 배설구 역할을 맡으며, 한쪽 발을 세숫대야에 담고 있는 다비드상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할 수 없었더 세대의 심리상태가 반영되어 있다. 음탕한 춤의 도구는 예술작품의 반열에 올라있다. 도시의 야경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은 빈 술잔들로 이루어졌다. 그러한 정글같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예술가에게 필요한 덕목은 패기일 것이다. 마카오와 라스베가스를 합쳐놓은 [베네치안 랩소디]에 깔린 카지노 자본주의에서 필요한 것은 과감한 패를 던질 수 있는 인물인 것이다. 보다 젊은 세대인 이완에게 물질적 풍요를 안겨준, 그러나 그만큼의 억압과 착취가 뒤따랐던 서구적 이성과 욕망에 대한 대안은 아시아와 한국의 역사에 대한 보다 미시적인 탐구이다. 끝도 없이 펼쳐질 것같은 그의 수집품은 이전에 그가 참여한 전시의 제목처럼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2015)의 집결판이다. 




 Mr. K and the Collection of Korean History(Venice installation view)

Lee Wan, Mr. K and the Collection of Korean History, 2010-2017. Photographsand assorted archive objects.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at theKorean Pavilion, 57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La Biennale diVenezia. Photo by the Artist. Courtesy of the Artist.



 Made In (objectsinstallation)

Lee Wan, Made In, 2013-present. 12 documentariesand 12 objects. Made In objectsinstallation view. Photo by the Artist. Courtesy of the Artist.



 Proper Time (detailframe shot)

Lee Wan, Proper Time: Though the Dreams Revolve withthe Moon, 2017. 668 clocks.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at theKorean Pavilion, 57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La Biennale diVenezia. Photo by the Artist. Courtesy of the Artist.

 



 For a Better Tomorrow (detail frame shot)

Lee Wan, For a Better Tomorrow, 2016-17. Plastic.60x70x70cm. Installation view at the Korean Pavilion, 57thInternational Art Exhibition,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by the Artist.Courtesy of the Artist.



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의 균형추를 생각해 보는 ‘카운터밸런스’ 전의 부제는 ‘돌과 산’인데, 그의 작품은 산을 이루는 돌에 해당한다. 이완은 ‘Made In’ 프로젝트를 통해 수년간 아시아의 일상문화를 결정하는 정치 경제에 전방위적인 탐구를 이어왔다. 벽에 붙은 수많은 평면 모니터에서 동시적으로 상영되는 이미지는 하나하나에는 고유의 내용이 담겨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정신분열적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단면들을 반영하고 있는 수많은 수집물처럼 누구도 그 전체를 아우르는 실을 발견하기 힘들다. 그는 차라리 다양한 시점 자체를 있는 그대로, 주체적 관념에 물들지 않은 사물 그자체로 제시한다. 그것은 하나의 지배적 세계관에 대한 대안이다. 이완의 작품에 의하면, 일일이 만난 1200명의 사람들 중에서 선정한 680명은 하나의 시간이 아닌 제각각으로 흐르는 ‘고유시’를 살고 있다. 그러나 같은 상품으로 통일된 형식은 그러한 고유시의 상대성도 암시한다. 자본주의는 많은 도전을 받았지만,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추동된 이성을 수단으로 해서 발전되어온 가장 유력한 인류의 생산양식인 것이다. 


이전세기에 좌우익 전체주의를 낳기도 한 거스를 수 없는 굵은 흐름은 이 전시의 부제에 의하자면 산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산은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완이 제시하는 각각의 시간대는 개성적인 예술적 시간과 보다 잘 어울린다. 거기에는 당대를 지배했던 역사주의에 대항하여 수많은 텍스트로 이루어진 유미주의적 세계를 대안으로 내세웠던 니이체의 계보학적 비전이 있다. 계보학은 역사학과 달리, 기원을 신성시하지 않으며 목적을 가정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비전을 계승했던 미셀 푸코는 역사가 아닌 역사가로 인정받으면서 성이나 광기의 역사같은 새로운 역사를 서술했다. 부스러기로서의 세계는 파괴와 생성이 공존한다. 그것은 파괴의 흔적이기도 하고, 파괴에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청년 예술가의 이 장기적이고 큰 계획에서 역사와 예술의 종말을 넘어서려는 새로운 예술가의 패기가 느껴진다. 한국관의 예술감독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작가의 조합인 코디최와 이완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두 시간대, 그리고 그들의 선대인 익명의 선대를 아우르는 역사를 압축하려 했다. 그 압축파일을 풀어보는 것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출전; 아르코미술관 전시 평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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