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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보의 [현단계 한국 미술의 주요 현안 과제]에 대한 소견

이선영

전승보의 [현단계 한국 미술의 주요 현안 과제]에 대한 소견

  

이선영(미술평론가)

  

전승보는 [현단계 한국 미술의 주요 현안 과제]에 대한 발문을 ‘지난 20여 년간 한국미술계의 양적 팽창은 특히 공공분야(공공미술, 공공미술관 등)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근간을 이루는 미술시장이나 미술평론(학술) 등의 침체는 여러 우려를 자아내며 이제는 우리에게 보다 구조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요구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미술계 구성원이라면 체감하는 제도적 체계의 확장을 지적함과 동시에, 내실의 부족함을 말한다. 지방자치제의 시작으로 각급 문화재단이 속속들이 생겨나면서 눈에 보이는 현상, 가령 미술관 건립이나 레지던시 등의 활성화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발제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지난 20여년 간의 분명한 변화이다. 이전 세대들은 대부분 그러한 혜택 없이 청년기를 보냈다. 요즘의 젊은 작가들이 국내외 미술대학 졸업은 기본이고, 석 박사에다가 그 이후 현장에서의 경력을 쌓는데 공을 들이는데, 그 중심에 레지던시를 비롯한 공공적 지원제도의 확충이 있다. 


특히 공공미술같은 항목은 예술과 관련된 공공기관이 존재해야 하는 당위와 명분을 제공한다. 공공미술은 그 성공여부와 무관하게 예술 부문 공공기관으로서는 꼭 필요한 사업이 되었고, 또 많은 작가들이 그러한 추세에 맞춰 자신의 작업을 재조정하는 경향도 있다. 그것은 꼭 시류에 영합한다기 보다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기능 중의 하나인 공공성에 대한 깨어남이며, 제도에 의해 필수적으로 지출되는 공공비용을 활용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10년은 훌쩍 넘은 공공미술 사업은 미술시장에 맡겨져 있던 장식미술 사업에 대한 대안의 한 축이 되었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결과물들이 공공성이라는 큰 명분에 가려져 다소간 소홀했던 예술성 때문에, 왜 공공미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초적인 물음도 야기했다. 공공성과 예술성 사이에 대중성이 있다. 그 부분을 강하게 이끌어야 하는 분야는 발제자가 현재 침체 국면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는 미술시장이다. 


대중성은 공공기관이나 작가가 나설 부분은 아니다. 가령 ‘한집에 그림 한 점 걸기’ 같은 캠페인은 미술의 대중화와 관련되지만, 그것은 예술적으로 훌륭한 작품을 대중화하는 기술과 전략이지, 처음부터 작가가 대중성에 초점을 맞출 수는 없는 것이다. 미술시장은 1차 생산자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가져다 판매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좋은 작업이 나올 수 있는 풍토의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면서 그 열매를 함께 거둬야 할 것이다. 곶감 빼먹듯이 작가의 결과물만 취하고 (재)투자가 없다면, 그나마 얼마라도 작품이 팔리는 현실을 기적으로 알아야 한다.  ‘예술은 좋은 것이다’와 ‘예술인은 힘들게 산다’는 이미 마련되어 있는 막연한 대답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미술계의 현안 과제를 공적으로 질문해 보는 이러한 자리는 양자 간의 인과관계를 따져 보게 만든다. 즉 예술이 좋은 것이라면, 그래서 사회에  필요한 것이라면, 예술을 자신의 업으로 삼고 있는 최전선의 생산자들의 활동에 지속성이나 가속성이 필요할 것이며, 사회는 ‘예술인 복지 차원’에서라도 그 수단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발제자는 ‘4) (예술)미술인 복지와 지원 정책’ 항목에서 복지의 문제를 거론하지만,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근본적인 대안은 국민 모두에게 일정 정도의 월급을 주는 복지제도 일 것이다. 북유럽 등 선진국에서 실험하고 있는 이러한 형태의 복지는 현재의 예술인 복지제도처럼 '누가 예술가인가'를 판단하는 복잡한 장치 없이도 운용 가능하며, 그에 관련된 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다. 예술의 필요와 그 불가능성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말한다. 이러한 괴리가 너무 강조되면 이상에 다가가려는 현실적 움직임을 무모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상 자체보다는 이상으로 가려는 과정 중에 생성되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 대략 여섯 가지 문제점에 대한 발제자의 생각은 비록 해답보다는 문제 제기의 측면이 더욱 강하지만, 올바로 제기된 질문에는 이미 답이 있다. 그래서 답이 없는 문제라도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발제자는 미술계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 있어서 ‘미술인들의 연대와 소통을 통해 그 가능성을 높여 나갈 수 있다....무엇이 문제인지를 발견하고 공감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이유’를 강조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미술계에서 이름만 알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한 상황에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만나야할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 오히려 어색 한 경우가 있다. 상호간의 만남만 제대로 이루어져도, 각자 섬처럼 존재하면서 혼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발제자의 발표 자료는 ‘1) 미술교육, 2) 공공미술관 제도, 3) 미술시장 및 법ㆍ제도, 4) (예술)미술인 복지와 지원 정책, 5) 4차 산업시대와 미술, 6) 미술매개(자) 지원사업’으로 구분되어 있다. 일단은 발표자가 너무 많은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미술계의 주요 현안’이란 서로 맞물리는 과제라는 점에서, 한데 다루어도 될 법하다. 


특히 우리 미술계는 각자 열심히 하고 있지만 서로 소통이 부족하여, 모순이 확대 재생산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론과 실기, 이론이라면 기획과 교육, 비평 등, 각 분야 간에 분담이 잘 안되어 있는 것은 큰 문제다. 미술계는 아직도 원시생물처럼 미분화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 결과 각자 전문적 역량을 키우는 대신에, 비슷한 일들을 반복하면서 고갈되는 경향이 있다. 가령 누군가는 미술계의 현안과제에 대해 또 다른 발표를 할 때 이번처럼 모든 것을 말해야 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미술계 구성원 모두가 비슷한 일을 조금씩 다 해야 한다는 점, 그것은 서로에 대한 진정한 필요와 유대 대신에 사이비 자족성에 머물게 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가 돌아가야 만족스러운 예술인의 특성 또한 이러한 고립에 일조하는 경향이 있다. 발제자가 요구하는 ‘미술인의 연대’는 서로의 진정한 필요에 의한 만남이어야 한다. 


발제자의 넓은 관심을 다 포괄할 수는 없고, 나의 관심과 관련해 처음과 마지막 항목에 대해 보충 코멘트를 하고 싶다. 발제자는 ‘1) 미술 교육 중 초중고 미술교육 부문’에서, ‘미술교과 과정 개편, 실기 교육 중심에서 감상 교육 중점으로’와 ‘초·중·고 미술과목의 필수교육 과정 채택으로 감성개발, 인성교육’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앞으로 ‘4차 산업 시대와 미술’과도 관련된 것이다. 예술적 창의성은 기계가 대치할 수 없는 부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화될 것이다. 발제자는 그 조건으로서 예술 항목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제안한다. 실기교육 만큼이나 감상교육이 중시된다면 현재 미술사, 미학, 예술학 등등의 전공자들이 애써 공부한 것에 걸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지금처럼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하게 이루어지곤 하는 미술이론 관련 교육은 인문학의 한 분야로서의 전문성을 갖춰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예술에서 출발하는 진정한 교양 교육도 가능하다. 미술계는 정치 분야만큼은 아니어도, 지지자들이 필요하다. 예술이 유지, 확장되기 위해 사회로부터 재원을 끌어오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부문은 이러한 지지자들의 확충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인력들은 발제자의 분류에 의하면  ‘미술매개(자)’이다. 그는 ‘미술평론 원고료(미술저널, 공공기관) 현실화 및 지원’을 주장하는데, 그것은 최근 관심사가 되고 있는 ‘작가보상금(Artist Fee)’과 함께 대두되는 문제다. 미술계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작가에 비한다면, 비평가나 기획자에 관련된 지원제도는 찾기 어렵다. 일부 대중들은 ‘자기들 좋아서 하는 일에 사회가 왜 지원을 해주나’라는 의문을 제기 할 수도 있지만, 현재 집행되고 있는 문예 기금은 엄한 곳에 쓰이는 다른 세금들을 생각하면 거의 ‘새 발의 피’라고 할 만한 수준이다. 발제자는 ‘한국미술계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경쟁력에 비추어 미술계의 총합이 지나치게 낮다는 것에 있다’고 본다. 


예술에 대한 사회적 비용에 대해 발제자는 이에 대해 ‘미술계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의 범위를 넘어섬을 말한다. 미술계의 성장은 제도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 판단과 공감대 형성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대중에게 미술이 알려지는 경로는 대부분 미술작품 그자체가 아니다. 저널의 지면을 대부분 차지하는 것은 미술작품에 대한 어마어마한 액수, 위작 대작 등과 관련된 소유권 문제 등이다. 그러한 사건들이 이슈화될 때 마다 대중들은 ‘그들만의 리그’라고 냉소적 반응을 보인다. 그러한 풍조는 작품을 팔 수 없는 대다수의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위화감을 조성한다. 그러나 미술이 왜 그런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담론의 형성은 이론 분야의 일이다. 물론 매력적인 작품이 먼저겠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발제자가 제안하는, ‘원고료, 전시기획 비용 등 각 협회기준 조견표(최소) 마련’이 현실화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출전; 서울 문화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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