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이승수 / 변화의 축에 놓인 공간과 사물

이선영

변화의 축에 놓인 공간과 사물

이승수 전 (2017. 10. 21- 2018. 1.27, 문화공간 양)

    

이선영(미술평론가)

    

사라진 조선소 자리에서 수집한 오브제를 바탕으로 작업한 이승수의 ‘남겨진 오브제’ 전은 제주의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장소와 깔맞춤이다. 마당을 포함한 전시공간의 반 정도는 화이트 큐브식이지만, 나머지 반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흉가나 다름없는 폐허인데, 이 전시를 위해 개방됐다. 문화공간 양은 평소에도 마을 기록 작업을 하는 등 단절된 역사를 이어가는 활동으로 지역의 소중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전시 장소에 대한 오랜 탐구가 엿보이는 이승수의 작품은 삶과 예술, 옛것과 새것을 연결 짓는다. 잇기 전에 단절이 있었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던 고향에 다시 돌아온 작가에게 제주는 편치만은 않은 곳이었다. 이 전시는 ‘세계적’ 관광지로의 변신을 꾀하는 제주의 대대적인 (재)개발 열풍에 파묻힌 지역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담겨있다. 그가 체감하는 급격한 변화는 약 5년이다. 개발이라는 것이 결국 소수와 다수를 재편하는 과정이기에 많은 지역 갈등이 재현되었으며, 그러한 현실이 반영된 작품들은 멜랑콜리와 박탈감, 때로는 날카로운 풍자가 있다.      
















바람을 막기 위해 유난히 낮은 천정을 가지는 지역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밀물과 썰물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침목의 영상은 더욱 크게 다가오며, 수직수평의 축을 따라 죽 나열된 바닥의 오브제들은 더욱 많아 보인다. 다른 방의 오브제들은 약간의 첨삭이 이루어졌다. 작가는 세월의 흔적을 오롯이 담은 침목의 색감과 질감을 신체의 일부를 떠오르게 하는 형상으로 변주했다. 악기로 재탄생한 나무토막도 있다. 폐허의 파편들은 잘 세척되어 깨끗한 곳에 세워놓은 것만으로도 의미를 확보한다. 그것들은 가차없는 마모의 시간으로부터 잠시 건져져 예술이라는 상징적 대상이 된다. 침목 조각 외에 노동자들의 신발, 식기류 , 무전기 등 생활용품의 잔여물도 발견된다. 돌, 쇠, 나무, 플라스틱 등 다양한 재료의 물건이지만, 비슷한 색감과 질감으로 변했다. 거기에 잠시 거처를 빌린 어패류의 흔적 등, 이질적인 것들이 한데 뭉쳐져서 거센 시간의 흐름을 타고 동질적 원소로 변해가는 중이다. 이승수는 자연사와 인간사가 교차하고 맞물려 있는 지점을 강조한다.


다른 방에는 비교적 온전한 형태의 침목이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연출됐다. 마치 시체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돌담과 감나무, 고양이들이 있는 마당에서 침목들은 장승처럼 우뚝 서서 또 다른 시공간과의 연결을 꾀한다. 발굴한 현장에서도 설치한 바 있는 비슷한 크기의 침목들은 다양한 형태와 질감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지상에 우뚝 서있는 침목들은 존재감이 있다. 문화공간 양과 연결된 폐가의 설치 작품은 유사 고고학적 아우라를 벗어던지고, 현재 진행 중인 폐허화를 풍자한다. 뿌리를 다 드러낸 죽은 나무가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천정을 받치고 있으며, 안전제일 표지판은 벽지무늬처럼 공허할 뿐이다. 쓰레기가 잔뜩 쌓인 큰 방에 떠 있는 작은 배는 섬이 곧 쓰레기로 뒤덮일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고조한다. 침목도 폐기물일 수 있지만, 여기에 널린 페트병 보다는 묵직하고 자연적이다. 이승수의 작품에서 침목은 그 기념비적 위용과 비밀스런 양상으로 매력적인 사물의 분위기를 되찾지만, 플라스틱 용기들은 기능을 잃은 상품, 즉 쓰레기에 불과하며 아무렇게나 다뤄진다. 








빈 배에 투사되는 영상은 개발에 관련된 지역 갈등을 뉴스들로 전한다. 흘러내린 용암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의 얼굴은 현무암으로 되어 있는데, 작가는 거기에 붉은 조명을 반사하는 방독면을 씌웠다. 개발지상주의에 붉은 경고등을 켜진다. 마당 한 켠의 삽자루 다리로 이루어진 의자 또한 같은 맥락이다. 작품 재료를 수집한 곳은 옛 조선소로, 1945년부터 2014년까지 70여 년 간, 일제시대에 삼별초군의 유적지를 무너뜨리고 만든 전신까지 포함하면 100년 가까이 되는 유적지라 할만한 곳이다. 대표적 굴뚝 산업인 조선업의 퇴조는 조선소가 있던 해안가를 숙박업소와 카페들이 줄지어있는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공간기획--앙리 르페브르가 [공간의 생산]에서 권력과 공간의 관련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을 합리화했다. 작가는 식민지시대, 해방과 산업화시대, 그리고 세계화시대라는 변화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장소들에서 의미심장한 변화를 감지한다. 발굴된 침목은 침묵하지만, 작가는 거기에서 자본의 논리만이 아닌, 자연과 역사, 인간과 예술이 함께 가는 변화를 촉구한다.   

 

출전; 아트인컬처 2018년 2월호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