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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 / 기계적 체계를 풍자하다

이선영

기계적 체계를 풍자하다

  

이선영(미술평론가)

  

정승의 작업실이나 전시장을 가보면 전통적인 의미의 화가나 조각가와는 사뭇 다른 면모가 발견된다. 그는 미술작업에 필요한 전형적인 도구들보다는 기계장치나 부품들에 둘러싸여 있다. 2018년 초에 있을 전시 때문에 그의 작업실에는 지금도 3D 프린터 6대가 밤낮으로 돌아가고 있다. 기계가 나날이 발전하는 만큼 그의 관심사나 재료들도 점차 변해왔다. 그러나 그가 기계 예찬론자이거나 발 빠른 소비자(early adopter)라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그에게도 기계는 현대적 삶을 압축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이다. 근대이후 새로움과 진보를 도맡아온 과학기술은 생산력과 관련되어 예술보다 더 보편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각 분야의 경계가 존재한다. 현대미술이 대중들에게 보이지 않는 문턱이 있는 것처럼, 과학기술 또한 그러하다. 기술적 산물은 대중화될 수 있지만, 누군가 단지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 생산하고자 한다면, 엄연히 넘어야하는 문턱들이 있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끈(Prometheus’s String) / 3Dprinted(PLA), kidney bean, art sensor program / variable size / 2017



같은 작가인가 싶을 정도로 매번 새로운 작품으로 자신을 갱신하는 작가 정승은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매번 다른 언어를 습득해야 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타 분야의 언어를 어릴 때부터 해왔던 미술의 언어처럼 자연스럽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입에 재갈을 물고 말을 해야 하는 듯한 저항을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 정도의 유명작가라면 있을 법한 ‘고유의 기법’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새롭게 배운 언어로 거칠지만 강력하게 발언하고, 또 그 다음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반복적인 것을 재생산하는 일에 쉽게 싫증을 내는 작가의 성향이 반영되어 있다. 이제 막 40대 초반에 들어서 자기 스타일대로 속도를 내고 있는 정승은 요즘 과학 기술자들과의 협업 및 국내외의 전시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타 분야와의 만남이 계속될수록 자신이 맨 처음 왜 미술가가 되려했는지에 대한 정체성 문제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에게 언제 처음 왜 작가가 되려 했냐고 물었다. ; 

   

“14살쯤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한창 하던 시기에 남들처럼 대학 나오고 평범한 직장 생활하며 사는 모습보다는 뭔가 어렵지만 특별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후 미술을 공부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것 같아요. 지금 돌이켜 보면 고등학교 시절에 미술부 활동을 하며 작가 코스프레를 하고 다녔었는데, 그때의 열정이 지금보다 컸던 것 같아요. 환경적으로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너무 힘들어하던 시기라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작가가 되고 나서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들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프로메테우스의 끈(Prometheus’s String) / 3Dprinted(PLA), kidney bean, art sensor program / variable size / 2017



정승의 대답은 창조적이지만 불안한 삶을 사는 예술가의 처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지금도 그에게는 작업을 계속 한다는 것 외에는 어떤 확실한 것도 없다. 새롭게 다가오는 세계에 대해 기존의 언어로 말하려 하지 않기에 어려움은 가중된다. 익숙한 길은 아니어도 말해야 할 것을 제대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꾸준히 연구한다. 얼마 전 대만에서의 전시 때, 그는 식물이 성장함에 따라 발생하는 변화를 3D프린팅을 위한 정보로 변환시켜 입체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를 위해 관련 프로그램을 짜는데 만 2년이 걸렸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는 자신의 이력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2017년 타이페이에서의 전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평소 과학 혹은 공학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우주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암흑물질 이나 암흑에너지 등의 이론들은 내게 항상 흥미진진하게 다가오곤 하였는데, 최근 접하게 된 ‘우주공간이 어쩌면 무수한 정보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라는 이론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는 곧 새로운 생각으로 이어졌죠, 전 세대에서 후 세대로 유전자를 통해서 각 종족의 정보가 전달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주 공간에서 생명의 물질적 본질이란 정보의 전달의 연속성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본질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접근을 시도하는 미술과 과학 그리고 테크놀로지간의 협업을 통해 완성되고 있는 조각 프로젝트인 ‘Living Sculpture'를 구상을 하게 되었으며, 이와 관련된 전시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삼원색에 관한 착각(An Optical Illusion Of Contemporary People In Three Primary Colors) / printer, cable tie / 2x2x1.5m / 2008

 



 Car(essai II) / car, cable tie / 4.2x1.6x1m / 2008



새로운 언어에 개방적인 작가는 매너리즘에 빠질 틈이 없다. 정승은 새로운 언어를 통해 도달할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그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지 않을까. 동료작가나 과학 기술자들과 협업이 효과적으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작가 또한 적어도 반 정도는 상대 쪽 언어에 몸을 담궈야 한다. 그렇지 못한 협업은 겉돌고 결국 실패한다. 예술에 있어 형식은 어떤 내용을 포장하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어떤 내용에 대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정보의 흐름으로 보는 정승의 관점은 다른 분야와의 대화에서 공통의 지점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준다. 최근의 대표작품인 [프로메테우스의 끈](2017)은 끈 모양으로 길게 갈래를 지어가며 뻗어나가는 구조물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우주 만물의 근원을 진동하는 끈이라는 모델로 설명하는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드러난다. 


그는 이 작품을 위해 전시장에서 콩을 77일간 키웠다. 콩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 맺고 죽을 때까지의 크기와 소리 등을 센서로 받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컴퓨터로 전달한 후 3D프린터로 뽑아냈다. 여기에서 그는 식물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내부로 들어가 성장의 움직임을 물리적으로 가시화한다. 자연은 외관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으로 펼쳐짐으로서 자연 고유의 역동성이 가시화되는 것이다. 콩의 성장과정과 관련된 결과물은 콩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은 미시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거시세계의 법칙을 중첩시킨다. 콩의 성장은 1차원적인 끈의 요동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는 콩보다 더 큰 우주에도 해당된다. 이전시대에 그러한 종합적 사고는 유비(類比, analogy)라는 종교적 관념에 의해 설명됐다. 그러나 이제 초끈이론같은 과학적 가설은 만물의 기원과 목적을 설명하는 이론(theory of everything)으로 자처한다. 




Landscaping A Machine / felt fabric / variable size / 2013



Car(essaie I) / car / 9x8x2m / 2006



Plastic tables(essaie II) / plastic table / 3x4m / 2004



초끈이론은 우주의 법칙에 있어 우연성의 몫을 얼마큼 인정하는가를 두고 경쟁했던 이론들 간(상대성이론 vs 불확정성의 원리)의 대립을 끝낼 수 있다는 기대에 부응한다. 예술가 또한 첨단 과학이론의 모델에 둔감할 수 없는 것이, 그 또한 만물의 기원과 목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담론에 대한 회의로 특징지어지는 탈(post) 근대적 경향 때문인지 몰라도, 지엽말단적인 일상에의 매몰이 많이 발견되는 한국의 화단에서 정승은 드물게 거대담론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 중의 한명이다. 물론 거대담론 중 이데올로기에 대한 작가의 비판은 매우 강력하다. 이데올로기는 이해관심에 따라 갈라지는 당파적 사고로 이편이냐 저편이냐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결론은 집요하게 재현한다. 그렇게 해서 각 당파에 맞는 색깔이 재생산되며 동일성의 원리는 보존된다. 자기 자신만을 지시할 뿐인 유아론(唯我論)적인 원형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구조이다. 


같은 것은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정승의 작품 [현대인들의 삼원색에 관한 착각](2008)은 무의미하게 왕복하면서 동일한 것을 재생산하는 복사기를 통해 재현의 의미를 묻는다. 그는 이 작품에서 복사기를 분해하고 한번 묶으면 다시 풀 수 없는 케이블 타이로 다시 붙여 놓았다. 털보처럼 부숭부숭 털이 난 듯한 복사기는 날렵한 기능적 대상을 벗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로 변해버렸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자동차를 괴물로 만든 적도 있다. 작품 [Car](2006)는 자동차의 내장을 덮고 있어야 할 표피를 이리저리 잘라서 거대한 절지동물처럼 만든 것이다. 이동수단이라는 기능을 넘어 상징이 된 자동차는 사물이 생명을 가지는 물신적 대상으로 선택됐다. 작품 [Landscaping A Machine](2013)에서 자동차는 내장이 모두 적출된 듯한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자동차라는 소우주를 이루는 수많은 부품들은 분업의 결정체라 할만하다. 근대적 분업은 비약적인 생산성을 낳았지만, 그것은 인간을 위한 생산이기 보다는 생산을 위한 생산으로 귀결되면서 인간의 휴식을 빼앗아갔다. 




Multi Complex (essaie IV) / Extension cords, moving sphere by sensor, mixed media / variable size / 2015



A Struggle For Evolution / electric fan / 1.5x0.5x0.5m / 2008



Rainbow From Warnedland-morse code / warning light case, Morse code transmitter, LED light / 5x0.2(dia.)m / 2016



작가는 자동차의 내장이라 할 만한 부분들을 푹신한 쿠션으로 만들어 휴식의 장으로 만들었다. 펠트 천으로 하나하나 꿰매 완성된 부품은 전체를 모른 채 부분만을 집중하는 생산, 즉 갈갈이 흩어진 노동의 시간을 잇는다. 그것은 총체적인 노동, 즉 예술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정승은 대중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물건을 활용함으로서 변형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플라스틱 의자나 테이블, 스탠드 같은 흔한 물건도 미지의 생물체나 기하학적 대상으로 변모하곤 한다. 그의 작품에서 낯익은 것은 낯선 것이 된다. 기이함은 일상의 이면이다. 복사기를 소재로 한 작품에서, 삼원색처럼 순수를 지향한다는 당파들은 독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립을 위한 대립을 일삼는다. 복사기의 원리는 기계적 반복이다. 현대의 소비사회나 관료사회의 바탕이 바로 기계적 반복이다. 정승은 반복적인 사물을 하나의 모듈로 삼아서 연결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시각적 재미를 넘어서 사회에 대한 풍자와 관련된다. 수 십 개의 멀티탭을 이어서 만든 작품 [Multi Complex](2009)는 그 끝에 쓰러진 채 간신히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와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진정한 삶의 목적을 잃은 사회, 조직을 위한 조직, 비대화된 체계가 야기하는 사회를 풍자한다. 경광등을 이어 만든 작품 [Rainbow From Warned Land](2014)는 경고의 수위를 더 높인다. 그 내부에 관객을 관찰하는 CCTV를 감춘 채 이상향에 관련된 노래가 흘러나오는 경광등의 열은 하나의 물건이 단위가 되고, 그것이 연결되어 기능과 의미를 만들어내는 원자론적 사고를 담는다. 고대 자연철학에서의 원자는 현대의 정보로 바뀌었다. 정보로 충만한 세계가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는 의문에 붙여진다. 수천 개의 인형이 거대한 경기장에 둘러앉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둘 바닥으로 떨어지는 작품 [Spectacleless Complex](2011)는 같은 틀에서 나온 로봇같은 복제물로서 비유된 대중들이 소모품처럼 사라짐을 표현한다. 




Spectacleless Complex II / around 2000 nohohon toys, mixed midia / 6.4(dia.)x4m / 2013







자잘한 기계음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인상적인 작품 [Cycling Complex](2009)는 쳇바퀴처럼 정해진 궤도를 무한히 경주하는 모습으로, 기계적 반복 속에서 고갈되어가는 삶을 풍자한다. 정승의 작품에서 원형의 구조는 같은 지점으로 돌아오게 하는 순환의 원리를 표현하지만, 아나로그에 충실한 그의 작품은 반복 속에서 미세한 차이를 야기한다. 같은 생산라인에서 나왔을 인형들의 수명은 같지 않고, 주변의 물리적인 미동이 만들어내는 우연적인 요인이 차이를 만들며, 이러한 차이가 반복을 더욱 기계적인 것으로 다가오게 한다. 예술은 그러한 반복을 또 다른 차원에서 반복함으로서 차이를 만들어낸다. 정승의 최근 작품은 가상공간과 생명까지 확장되는데, 이때에도 실재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는다. 세계는 정보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인터넷을 매개로 의사소통의 폭발이 이루어졌지만 인간의 몸을 비롯한 실재의 몫은 남아있다. 


사이버네틱스 이론가들의 희망과는 달리, 정보에는 잡음(noise)이 있을 수 있고 전달 과정은 완전히 투명하지 않다. 비록 실재는 점차 가상에 의해 식민화되어가는 추세에 있지만 말이다. 육체가 물질을 다루는 고전적인 의미의 미술작가는 가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의 감각이 있다. 그 점이 예술과 과학기술이 갈라지는 부분이며, 정승이 주목하는 부분이다. 과학기술조차도 결정론보다는 확률론적 사고로 전환된 시점에서, 과학과 예술은 어느 때 보다도 가까워졌고, 정승은 준비된 작가로서의 면모를 펼칠 것이다. 정보를 통해 보다 체계화될 이미 다가온 미래의 사회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질문에 정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Cycling Complex / 200 cycler toys, power supplier, mixed media / 3.2x3.2x0.2m / 2010




‘예술가들처럼 상상하는 방식이 사회의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효율성이라는 명분하에 현대의 산업사회는 점점 더 기계적인 체계를 갖추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개개인의 소모품화는 마치 어쩔 수 없는 옵션인 것처럼 인식되어지는 현실은 그 동안의 현대문명의 방향성에 큰 문제가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이데올로기 시대 이후 방향성에 대한 고민 없이 눈앞의 물질적 이익만을 쫒아온 결과물인 것이죠. 이러한 상황의 개선을 위해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과거의 자료를 기반으로 한 전문가들의 예측성 대안이 아닌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예술가들을 닮은 상상력 가득한 제안들을 통해 전혀 새로운 방향에 대한 논의를 이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정승의 작품에서 경광등이나 멀티탭은 기능적 물건이면서도 무한히 증식되는 생명체의 모습이 있는데, 그것은 그 이후 정보와 생명을 연결시키는 작업의 전초가 된다. 작품 [The Gate of Senses](2017)는 전시장 안에서 자라는 식물이 담기는 정보들을 3D 프린터로 형태화하는 과정에서 식물에서 채집한 정보들이 담긴 숫자들을 배열한 것이다. 어두운 중심은 생명에 내재된 무한이라는 심연을 암시한다. 반면, 사물로 된 원형의 작품 [Useless Tool](2010)은 제 자리 걸음을 하는 것 외에 아무런 기능이 없는 너트를 통해서 무의미한 반복이 지배하는 일상을 표현한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장치만 비대해지고 기능은 없는’, ‘인간들은 소모품처럼 추락하는’,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흡입하는 기능만 있는 청소기에 분출하는 기능도 추가한 작품 [Robotic Irony](2009)는 반복이 야기하는 장난스러우면서도 묵시록적인 비전을 보여준다. 




The Gate Of Senses / real time animation with 7 sensors / 2017



Useless Tool / 3D animation / 5:34sec / 2010



전시장 바닥을 돌아다니며 신문지, 패션잡지, 가짜 돈, 광고지 등을 잘게 자른 조각들을 흡입하고 품어내는 청소기는 생산과 소비의 무한한 주기를 만들어내는 상품들이 결국 쓰레기임을 말한다. 전시장 벽에 붙은 거울은 환경의 차원에서 반복을 구체화한다. 거울은 인쇄물처럼 반복적으로 가시화된다. 정승의 작품에서 생명은 사물에 비해 더 섬세하게 다뤄진다. 자라나는 콩에서 나온 각종 수치들이 동심원처럼 펼쳐진 작품은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과학적 모델을 구체화한다. 이전의 원자론이 작은 입자라는 모델로 세상을 봤듯이, 작가가 관심을 가지는 끈이라는 모델 또한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그는 거시 물리적 모델을 미시 생물학적 모델로 바꾸고, 컴퓨터라는 만능 기계를 매개로 구체화했다. 과학 기술과 대화하는 예술이 넘어서야할 난관은 많다. 바벨탑의 신화가 말해주듯이, 갈라진 언어(분야)들은 어딘가에 이미 존재하는 자연의 법칙을 수많은 다른 말로 하게 하였다. 


정승은 프랑스에 유학 가서 미술을 공부했지만, 무엇인가를 배운다함은 각 국가의 언어, 각 분야의 언어, 각 시대의 언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거대한 언어의 바다는 만유인력을 발견한 근대 과학의 거인 뉴턴이 스스로를 진리의 바닷가에서 모래알을 가지고 노는 소년에 불과하다는 비유를 했던 것과 같은 거대한 언어의 바다가 가로 놓여 있다. 자신이 마주한 세계에 진지한 이들은 그가 과학자든 예술가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간극을 넘어설 수 있다면 대화는 더욱 효율적일 것이며 더욱 빠른 진보가 가능할 것이다. 세계화와 정보화를 통해서 이 간극은 극복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말 정보혁명 시대의 여명기를 지나고, 이제 그것이 양극화나 획일화 등 많은 희생이 따른 결과라는 것이 밝혀진 지금, 예술가는 또 다른 방식의 보편언어를 지향한다. 이러한 시대의 추세에 대응하여 작가는 앞으로 어떤 작업으로 대응해 나갈 것인지 물어보았다. ;     


  




Robotic Irony / robotic vacuum cleaner, glamour magazines, newspaper text, imitation currency, mirror / variable size / 2009

   


“온라인 정보를 기반 AI가 적용된 살아있는 조각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선 첫 번째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서 앞으로 공학자들과 함께 새롭게 개발 과정을 거쳐야 할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70퍼센트가 물로 구성된 인간의 몸이 점점 메탈릭한 기계의 견고함을 갈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human like(인간을 닮은)에만 집중하고 있는 기계들의 모순적인 방향성에 대한 대안을 찾는 시도를 전시, 토론, 퍼포먼스 등의 형식을 통해 이어가고자 합니다.”

 

출전; morningcalm 중문판(대한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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