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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경 / 유일한 복제품

이선영

유일한 복제품

  

이선영(미술평론가) 

  

배문경은 이번전시에서 민화에 흔히 등장하는 호랑이들로 작은 왕국을 만들었다.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호랑이는 다양한 색과 크기로 출력되어 가장 큰 호랑이를 정점으로 가장 작은 호랑이까지 순차적으로 배열된다. 15가지 색과 12 종류의 크기를 가진 호랑이들로 이루어진 설치물은 산 또는 구릉지처럼 보인다. 크고 작은 호랑이들의 계열로 구축된 왕국은 자연 만큼이나 도시문명을 떠올린다. 색색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호랑이/산은 인공이 자연을 대체해 가는 현실을 말한다. 깊은 숲이 남아있지 않은 현대에 호랑이는 사라졌지만, 그럴수록 인공적인 복제는 더욱 활발하다. 배문경의 작품은 원본은 사라졌지만 복제의 기술은 더욱 발전된 현대를 반영한다. 작품 구성요소들의 계층화는 액상의 플라스틱을 수평적으로 쌓아가면서 구성된 형태와 동형적 구조이다. 호랑이들로 이루어진 산의 가장자리로 가면 출력되다가 만 불완전한 조각들도 배치되어 있다. 




범어아트스트리트 전시전경



가장자리는 중심의 축을 향해 나아가면서 좀 더 완성된 형태가 되는 듯이 연출된다. 지층처럼 쌓여가는 구조는 시간이 공간화 된 형태이다. 작가가 영감을 받은 호랑이는 그림 속의 호랑이다. 다리 사이에 꼬리를 잡아 빼고 날카로운 발톱마저 감춘 장난스러운 포즈의 호랑이는 큰 고양이처럼 생겼다. 흔히 [까치 호랑이]라고 알려진 원래의 그림 속 호랑이는 맹수의 왕 같은 위용보다는 친근한 모습이다. 배문경의 작품에는 까치가 등장하지 않지만, 그 옆에 있던 호랑이는 조선시대 익명의 선대 화가가 그렸던 것처럼, 까치와 상호작용하는 듯한 익살스런 표정이 남아있다. 오방색을 포함한 민화의 화려한 색은 갖가지 플라스틱 색상으로 모사된다. 배문경의 설치작품이 색의 조화를 꾀했다고 할 수는 없다. 15가지의 색깔은 그저 다양함의 기표일 뿐이다. 자연에만 날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명에도 날 것이 있다. 


언제부터 호랑이가 한국의 대표(?) 동물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자연 생태계에는 더 이상 호랑이가 서식하지 않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가 호랑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뭐든 참고를 해야 했으리라. 참고 대상이 사진이 아니라 그림, 그것도 사실주의에 충실한 형태가 아니라, 민화(또는 현대의 만화 같은)처럼 형태와 색의 변형이 자유로운 것이라면, 이를 3차원상에서 복제하는 것은 재창조에 버금가는 기술적 과정과 상상력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는 기시감 있는 소재를 선택하여 반복 속에서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보여주려 한다. 배문경의 이전 작업에는 대가들의 작품도 등장하지만, 익명의 작가, 그것도 수많은 버전이 있는 작품, 한국의 호랑이가 되었지만 미술사적으로는 중국으로부터 왔다는 이 도상은 애초부터 본래의 정확한 기원을 특정할 수 없다. 배문경은 정밀하게 모사하지만, 어떤 기원을 상정하는 재현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 




범어아트스트리트 전시전경



그것은 재현(표상)이 아닌, 원본 없는 복사, 즉 시뮬라크르(simulacre)이다. 굳이 원본이 있다면 작가가 프로그래밍 한 파일이 될 것이다. 수 백 년의 세월 동안 모사가 이어졌고, 변이가 일어났다. 21세기의 작품에서는 ‘스마트’한 복제기기를 통해 3차원 상에서 구현되면서 보다 생경한 모습으로 모사되었다. 호랑이를 백두대간과 일치시키는 상상력도 있지만, 배문경의 작품에서 무수히 많이 복제할 수 있는 기계적 과정을 거친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호랑이는 지형을 연상시키는 구조이다. 민화의 평면적인 이미지는 또 다른 지형도로 재탄생한 것이다. 지형의 중추를 이루는 가장 큰 호랑이만 점박이에 붉은 눈을 가진 민화 속 호랑이처럼 칠해졌다. 한 마리만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나머지들은 3D프린터로 출력된 색 그대로다. 그러나 가장 큰 호랑이의 경우 부분들이 이어져 있기에, 한 번에 복제된 작은 것들보다 불완전해 보인다. 조합으로 이루어진 덩어리는 색으로도 완전히 감춰질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줄줄이 서있는 색색의 호랑들은 싸구려 돼지 저금통과도 다를 바 없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예술작품이 그러한 상품과 다른 점은, 그것이 유일한 복제품이라는 사실이다. 배문경의 작업실에서 허공에 붓질을 하듯이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3대의 3D 프린터는 날씨 등 물리적인 상황에 따라 미세하게 다른 생산물을 낸다. 복제 과정에서 생겨난 사소한 차이들은 또 다른 원본이 될 만한 긍정적인 기표이다. 색과 형태, 숫자상의 이러한 차이는 원본과 복제의 구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플라스틱 출력물이라는 존재태는 동일하다. 사진의 발명이 결국 영화를 이끌어냈듯이, 2차원을 3차원으로 복제하는 과정은 차수를 늘려가며 반복될 수도 있다. 기술이 더욱 발전한다면 말이다. 그림이나 사진을 3차원으로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은 조각이 있지만, 조각으로 캐스팅하기 힘든 이미지가 있을 수 있다. 배문경의 작업에 활용된 3D프린터는 조각 작업을 좀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 이상이 있다. 




(참고작품) 3D_고흐의 방, 3D print, acrylic color, 47×32×40cm, 2015



(참고) 3D_고흐_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Projection mapping, 3D print, 130×130×110cm, 2016



이전작업에서 작가는 동서양의 명화를 3D로 프린트한 하얀 덩어리에다 그림 이미지를 매핑하기도 했다. 원래의 이미지는 3D 프린터에 최적화된 형태로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플라스틱으로 출력된 호랑이들은 강정처럼 속이 비어있다. 작품의 규모를 키워서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속을 채워야 한다. 그 때도 그냥 재료의 덩어리가 아닌 벌집모양의 구조로 채워진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그동안 해왔던 명화 출력 작업의 연장 선 상에 있다. 이전 작업의 목록을 보면 반 고흐의 카페, 방, 세잔의 정물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등이 있다. 작업실 선반에는 이중섭이나 샤갈 등의 그림이 입체화 된 것들이 가득 놓여있다. 서양 명화의 경우 참조 대상에 충실한 사실주의 보다는, 참조 대상의 왜곡과 변형이 심한 표현주의나 입체주의 풍의 작품이 선택되곤 했다. 3D프린터를 붓으로 삼아 다시 그리는 작품은 단순히 건축의 축소모델 같은 것이 아니다.


기계를 매개로한 개작(改作)은 최초의 그림에서 행해진 것 못지않은 변형을 거친다. 가령 반 고흐의 카페나 방이 입체화된 출력물은 원근법이 과장되어 앞으로 쏟아질 것 같은 공간 표현이 발견된다. 세잔의 정물화의 경우 애초의 공간 변형에 거슬러 평평하게, 즉 정물화의 정물처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다시 그리기(배문경의 경우 다시 만들기)는 원래의 왜곡을 또 다른 차원에서 반복한다. 배문경이 소재로 했던 반 고흐나 세잔, 피카소의 경우, 3차원적 대상을 2차원의 평면에 담아냄에 있어 어떠한 변형이 있었는가. 그녀가 참조한 대표적 근대 예술가들은 이전처럼 원근법이라는 환영의 장치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자연적 대상의 견고성과 화면의 자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으려한 세잔이 대표적이다. 명화를 원본삼아 3차원 상에 구현한 플라스틱 덩어리는 복제이면서도 추상이다. 그 이중적 과정은 모더니스트의 고민에서도 발견된다. 




(참고) 3D_세잔_병과 사과바구니가 있는 정물, 3D print, acrylic color, 45×33×28cm, 2015


(참고) 3D_아비뇽의 처녀들,3D_아비뇽의 처녀들, Projection mapping, 3D print, 120×70×110cm, 2015



근대미술의 시조라고 평가되는 세잔의 예를 들어보자. 세잔의 작품에는 산이나 정물의 덩어리에 대한 사실적 감각과 태피스트리처럼 미묘하게 짜여 진 화면의 조화가 있다.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세잔의 회의]에서, 우리들이 체험하는 지각은 결코 기하학적인 원근법이나 사진술의 원근법이 아니라는 사실, 실제로 우리 눈이 넓은 표면을 훑어볼 때 우리가 연속적으로 받아들이는 형상들은 서로 다른 시점에서부터 본 것처럼 전체 표면이 뒤틀려 보인다는 것, 그런데 세잔은 이처럼 변형된 형태를 다시 캔버스에 옮겨 놓았다고 본다. 그 결과 어떤 하나의 질서가 나타나 우리 눈앞에서 대상이 스스로 구성되어 드러나는 듯한 인상을 주게 되는데 여기에 세잔의 천재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앨런 보네스가 [모던 유럽 아트]에서 베르그송을 인용하면서 해석한대로, 세잔의 작품이 시간 내에서 그리고 시간을 통해서만 공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과 관찰자의 변화하는 의식을 고려한다는 점이다. 


피카소를 비롯한 입체파는 지각의 과정에 내재된 시간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진보라는 측면에서 모더니즘을 과학과 비유하기 좋아 했던 이들은 이를 ‘4차원’ 이나 ‘상대성이론’ 등과도 연결 지어 해석하기도 했다. 원재료가 되는 플라스틱 줄을 순차적으로 녹여서 프로그램화 된 대로 층층이 쌓아가는 3차원 출력방식은 시간성을 암시한다. 근대예술가들이 자연의 리얼리티와 회와의 리얼리티를 중첩시켜 만들어낸 화면에는 시간이 접혀 있는데, 그것의 3차원 화는 화면에 접혀있던 시간을 풀어내는 과정이다. 그리고 설치의 방식으로 구현된 입체를 관객이 감상하는 데에도 시간성이 개입된다. 호랑이 상의 표면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선들은 그림 속에 접혀있던 시간을 풀어내 다시 쌓은 흔적들이다. 3D프린터를 이용한 배문경의 명화 재해석 작업은 유사성의 효과를 창출한다. 그것은 질 들뢰즈가 [의미의 논리]에서 ‘복사물의 복사물’, ‘무한히 떨어진 도상’, ‘무한히 느슨해진 유사성’이라는 점에서 시뮬라크르이다. 




(참고) 3D_피카소_도라 마르의 초상,  3D print, acrylic color, 12×8×19cm, 2015



(참고) 3D_샤갈_Birthday, 3D print, acrylic color, 16×7×21cm, 2015



(참고) 3D_신윤복_미인도, Pojection mapping, 3D print, 50×45×85cm, 2016



(참고) 3D_다빈치_모나리자, Projection mapping, 3D print, 60×60×80cm, 2016



시뮬라크르는 이미 고대—플라톤은 참된 형상인 이데아에 비해 이 가짜 존재를 비난했다—부터 나온 개념이지만, 인공물로 가득한 환경에 둘러싸여 사는 현대에 와서 보다 중요해졌다. [의미의 논리]에 의하면, 인공물은 언제나 복사물의 복사물이며, 이러한 과정은 그것이 본성을 바꾸어 시뮬라크르로 전환될 때까지 나아간다. 들뢰즈는 그 대표적인 예를 팝아트에서 발견한다. 들뢰즈는 [시뮬라크룸과 고대철학]에서도 ‘시뮬라크룸은 퇴락한 복제가 아니다. 그것은 원본과 복제, 원형과 재생산을 부정하는 긍정적인 힘을 품고 있다. 원본으로 지정될 수 있는 것도 복제로 지정될 수 있는 것도 없다. 위계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재현과 표상의 철학이 무너지는 현대미술사는 원본에 대한 신비적 특권을 부정한다. 이 맥락에서 미술의 역사는 시뮬라크르의 역사가 된다. 즉 미셀 카미유가 들뢰즈를 따라 말한대로, 미술의 역사는 결코 대상이 아니라, 대상의 시뮬레이션에 관한 것이다. 


배문경의 작품은 이전의 화가의 작품을 붓으로 재해석하는 정도가 아니라, 미술사에 내재되어 있던 과정을 보다 직접적으로 실행하는 셈이다. 전시된 작품은 선대 예술가들과의 대화적 관계에 놓여 있지만, 난해함은 없다. 대중들은 이미 ‘시뮬라크르의 실재적인 장’(도나 해러웨이)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자본과 기술력이 투입되는 대중문화가 대표적이다. 인간의 몸이 사이보그로 대체되는 SF적 상상력에서 시뮬라크르에 대한 사고가 발견되듯이, 예술의 몸체 또한 변환될 수 있다. 배문경의 작품에는 변환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차이에 주목한다. 가령 3D프린터는 같은 파일을 출력해도 물질로 쌓이는 과정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미지에서 고형물이 되는 과정에서 습도나 온도 같은 물리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일률적 반복이 아니다. 들뢰즈가 말하듯이 차이는 반복에 거주한다. 반복은 차이의 분화소이다. 예술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반복과 차이의 관계 속에서 이어져 왔다.




(참고) 3D_이중섭_꽃과 어린이, 3D print, acrylic color, 17×7×19cm, 2015



(참고) 3D_이중섭_흰소, 3D print, acrylic color, 18×6×10cm, 2015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예술작품에는 심지어 지극히 기계적인 반복, 지극히 일상적이고 습관적이며 천편일률적인 반복까지도 등장하지만, 이 반복은 다른 반복들을 위해 반드시 어떤 차이가 추출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들뢰즈가 높이 평가하는 팝아트는 ‘모사, 모사의 모사 등등을 밀고 나가 결국 모상이 전복되고 허상으로 변하게 되는 극단의 지점에 이르는 방식’을 보여준다. 들뢰즈는 ‘기계적인 반복들로부터 어떤 자그마한 변화들이 분리되어 나오는’ 현대 소설의 예도 든다. 배문경의 작품은 모호한 기원을 가지는 민화를 ‘원본’으로 삼고 기계를 동원해서 수없이 반복한다. 애초에 민화 속 호랑이가 선택된 것도 이본(異本)이 많아서였다. 근대 화가들의 작품 또한 마찬가지다. 근대 낭만주의에 의해 창조의 정수로 자리매김 된 모더니즘 또한 전적인 새로움을 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모더니즘 또한 이전의 관례와 대화적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작가 배문경은 ‘스마트’한 시대의 도구를 사용하여 이전 시대의 화가들과 대화한다. 그것은 원본을 알기 힘든 수많은 파생 실재들로 에워싸인 현대적 삶을 반영하는 동시대적 예술인 셈이다.  

 

출전; 범어아트스트리트커브2410전시 평론가 매칭 프로그램(대구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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