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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Young Artist Project 꿈드림 워크숍 참여 후기

이선영

1.

서인혜의 작품은 동양화 재료인 주사가 발하는 붉은 색조로 가득하다. 색채학자들에게는 붉음은 색 그 자체와 동격이 될 정도로 대표적이다. 붉은 색은 어떤 색보다도 그 존재감이 강하다는 말이다. 작가는 주사에 콩 즙을 넣어 레드 톤을 차분하고 부드럽게 만들었다. 콩 즙을 넣는 것은 동양화의 전통적 기법이지만, 일반인의 관점에선 마치 레시피같은 느낌이 든다. 화학적으로 생산되기 이전의 모든 색들은 자연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동시에 그것은 자신만의 색채를 만들기 위해 요리에 버금가는 실험을 떠올린다. 밀도가 다른 액체가 섞이는 순간을 포착한 듯한 작품은 연금술적이다. 서인혜에게 서서히 풀어지는 듯한 붉은 색은 한국의 대표음식인 김치와 관련된다. 물론 김치라는 소재는 추상화되어 있어서, 작품정보가 있지 않은 한 관객은 거기에서 김치라는 소재를 찾기 힘들다. 추상화를 통해 보다 다양한 상징가가 확보되는데, 서인혜에게 김치는 여성의 노동과 연관된다. 


서인혜, [버무려진 흐름], 장지에 채색, 2016


작가는 김치 담그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발효와 숙성에서 여성성을 감지한다. 빨랫대가 있는 설치작품에서는 여성의 이야기가 더욱 구체화된 대상으로 나타난다. 주로 여성이 담당해왔던 가사노동은 가부장제가 ‘그림자 노동(shadow work)’(이반 일리치)으로 숨겨온 사회적 잉여가치의 원천이다. 비정형적으로 흐르는 붉은 액체는 여성의 체액을 떠올리며 몇몇 작품에서는 그 체액이 흘러나왔을 구멍이나 갈라진 틈이 보인다. 먹는 것에서 출발한 상상력은 성까지 확장된다. 김치는 한국인에게 필수적인 음식이며, 식욕만큼이나 성욕 또한 보편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제자리를 벗어나 새어 나갔을 때, 매혹은 혐오로 변하고 만다. 매혹과 혐오는 경계선상의 미묘한 문제이다. 금기위반이나 순수/오염에 대한 의미를 탐구하는 종교학이나 인류학의 가설은 체액 뿐 아니라, 여성이나 어머니의 영역 또한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서인혜의 작품은 모호한 형상에 내재된 양가감정을 표현한다. 

  

2.

이채연은 키치와 민화가 결합된 작품을 하고 있지만, 원래 전공은 유리공예/예술이었다. 반짝이는 것에 매혹되었던 작가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세상과 보다 깊숙이 관여하는 생활인이 되면서 많은 도구와 장치가 필요한 유리 작업 대신에 우연히 접하게 된 민화를 소재로 작업하게 되었다. 대중적인 민화나 키치 또한 반짝이는 세계, 기복과 유토피아의 세계이다. 유리 작업과 민화 작업, 그 사이에도 빵 만들기 등 많은 섭렵이 있었으며, 그 과정들은 이것저것이 모여 있는 지금의 작업에 자주 등장한다. 자녀 학대 사건이나 세월 호 등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던 큰 사건들도 빠지지 않는다. 책가도 형식에서 영감을 받은 서재의 풍경에는 자신의 실제와 상상과 관련된 작은 세계들이 자연스럽게 꼴라주 되어 있다. 그것들은 유기적으로 종합되어 있다기보다는, 단지 집합(또는 축적)되어 있다. 그림이라는 형식을 통해 모인 많은 사물들이 서로의 관계에 대한 의미의 강요 없이 각각의 세계로 존재한다.



이채연, [나의 퀘렌시아], 한지에 분채, 2016


예술은 인간이 섭렵해온 어떤 사소한 것도 무익한 것으로 버리지 않고 넉넉하게 받아준다. 물론 작가란 체험된 것 중 기억된 것을 그릴 것이다. 요즘 작업의 주요 조형 언어가 되어준 민화는 새로움과 창조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그리기의 즐거움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그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만의 스타일로 변화된다. 이채연이 자신과 동일시하는 캐릭터인 푸르른 파는 대학입시를 위해 그리곤 했던 정물화의 흔한 소재였지만, 작가의 싸인으로 변용된 것이다. 소중하게 지켜져야 할 가족의 상징인 달걀 등, 평범한 일상은 낱낱이 소재화 되고 또 변용된다. 거기에는 재현주의가 요구하는 순수한 기원과 목표 대신에 끝없는 변용의 과정이 있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는 등, 평범하게 일상을 영위하기 조차도 버거워진 시대—달걀 파동이 일어나기 한참 전에, 깨져 바린 달걀 무늬로 된 커튼이 등장 한다—에, 작품 속 일상은 오히려 낯설고 새롭게 다가온다.  


3.

조원득의 작품에는 동양화(한국화)하면 흔히 떠오르는 유유자적한 풍경이 발견되지 않는다.  푸른 빛, 보랏빛 등의 물감이 스며서 엷게 층을 이루거나 목탄이 사용된 화면은 어둡다. 깊은 어둠은 조형적일 뿐 아니라 은유적이다. 작품 속 어둠의 근원은 개인과 사회적 구조 모두에 있다. 경쟁적인 구조는 자기 보존에 힘쓰는 개인에 똬리를 튼 폭력을 고무한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져 만든 사회 역시 힘의 논리가 관철되어 있다. 부분과 전체는 서로 맞물리면서 무엇인가를 확대하는데, 조원득의 작품에서 그것은 폭력이다. 폭력은 개별적 차원을 벗어나 보편적인 게임의 원리가 되며, 작가는 그것을 ‘잘못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 작품의 제목처럼 ‘패배가 예정된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 작품 속에서 묶여 있는 개나, 눈이 가려진 사람은 숲으로 대변되는 자연과 비교된다. 자연에도 생태계의 위계에 따른 그물망이 있지만, 그것은 인간 사회에서처럼 축적되지 않는다. 



조원득, [폭력적 만장일치], 종이위에 채색, 2013


인간은 역사를 통해 자연을 소유하고 축적하는 무엇으로 만들었고 그것이 권력/폭력을 더욱 강력한 것으로 만들었다. 폭력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화되어 확대 재생산 된다. 한 작품에서 ‘바르게 살자’라고 새겨진 육중한 바위는 인간의 상징적 우주를 구성하는 강제를 풍자한다. 조원득의 작품에서 ‘잘못된 게임’은 다수의 낙오자들을 만든다. 폭력은 전염되는 것이기에 낙오자 또한 폭력적으로 된다. 그녀의 작품에는 가정이나 공동체 등에 두루 퍼져 있는 폭력성이 드러나 있다. 작품 속 벌거벗은 인간들을 한데 엮어놓은 공동체의 모습은 억압적이다. 심리학자들은 공격성이 강함의 특성이 아니라 나약함, 가령 두려움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즉 두려움이 폭력을 야기한다. 왕따가 되기 않기 위해서 왕따를 만든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물을 만든다. [희생양], [폭력적 만장일치]같은 작품은 문화의 어두운 기원에 대한 가설—가령 르네 지라르의 이론 등—을 조형적 언어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4.

유준영의 작품에서 인간들이 모여 사는 도시는 과밀한 구조를 가진다. 집이나 건물로 생각되는 단위구조들이 잔뜩 쌓여있지만 안정된 기반이 없다. 건물의 집적체들은 작은 배에 실려 떠돌거나 공중에 붕 떠 있다. 서로 인접해 있어도 각자인 그것들은 불안하다. 도시, 사회, 자연, 인간 등이 고루 등장하는 작품들에는 거시적인 관점이 있으며, 문명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가득하다. 작가가 많이 사용하는 먹과 콘테는 어두운 세계를 더욱 어둡게 표현한다. 작품 속 거대 구조 속에서 개인의 자리는 없다. 있다 해도 초라하다. 작품 속에서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빈 의자는 밀집된 도시 풍경과 반대의 것이 아니다. 개별적 공간은 익명적 구조에 대한 대안으로 다가오지만, 그 또한 위협받는다. 희망이 실현될 개별 공간은 이리저리 꼬인 미로를 뚫고 쟁취해야만 하는 기약 없는 과제가 된다. 작가는 미로 깊숙이에 어릴 적 집으로 상징되는 꿈의 공간을 숨겨 놓았다. 



윤준영, [wall], 한지에 먹, 채색, 콩테, 2017


옛 집 외에 희망을 상징하는 대상이나 색은 달과 블루이다. 그러한 도상들이 미로 곳곳에 포진해 있다. 미로는 방황을 야기하지만, 진짜 소중한 것은 텅 비었을 중심이 아니라, 과정 속에 존재한다. 유토피아를 향한 여정에 대한 이미지는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유준영의 작품에서 낭만은 희망사항이지 현실이 아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예술이 문명이 의식적으로는 포기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희망의 원리가 남아있는 영역의 하나로 간주한다. 예술은 꿈과 같은 것이다. 꿈은 무서울 만큼 현실을 반영하지만 현실 그자체는 아니다. 현실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예술은 자유롭게 실행할 수 있다. 윤준영의 다소간 비관적인 작품들은 그만큼 작가가 개인이나 사회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것, 그리고 예술은 그러한 괴리가 기록되는 장임을 알려준다. 작가는 ‘나에게 있어서 그림은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출전; 2017 Young Artist Project 꿈드림 워크숍(한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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