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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제뉴미디어 페스티벌(NeMaf) 프로그램 노트

이선영

서울 국제뉴미디어 페스티벌(NeMaf) 프로그램 노트


이선영(미술평론가)

  

<언랭귀지드 서울> (서울익스프레스,  2016년,  9분) 


사운드 아티스트 전유진과 비디오 아티스트 홍민기의 작품은 보기 보다는 듣게 한다. 세 명의 아이가 등장하는 영상은 큰 움직임이 없지만, 상영을 위해 어두워진 공간에 가득 울려 퍼지는 것은 그들의 목소리이다. 이 작품에서는 시각보다 청각이 활성화된다. 크고 작은 스펙터클에 항시적으로 융단폭격을 당하는 현대에, 웬만큼 자극적이지 않다면 시선을 붙잡아둘 수 없기 때문이다. 멀뚱히 서서 입만 움직이는 이미지들은 소리로 치면 거의 침묵이나 다를 바 없다. 반면 무반주에 실려 오는 아이들의 맑은 소리는 성가곡이 그러하듯이 천상의 소리 같다. 돌림 노래 식으로 진행되는 곡조는 단성이 아니라 다성(多聲), 공간에 편재(遍在)하는 소리들이다. 관객은 노래를 부르는 아이의 얼굴 영상이나 그 아래 멀티채널 비디오에서 명멸하는 단어들에 집중할 수도 있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보다 분산적이다. 


편재하는 소리는 절대적 타자(신)를 포함한 타자의 현존을 일깨운다. 소리는 의미와 상관없이 흘러간다. 루소가 [언어의 기원에 관한 시론]에서 말했듯이, 감정과 이미지의 표현을 위해 요구되는 리듬과 음, 즉 선율은 생각을 표현하는 언어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내용과 형식의 통일이라는 미학적 가정을 적용시킨다면, 성가곡은 원래 그런 낯선 언어로 불려야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시각화된 텍스트는 의미에의 강박증을 불러일으킨다. 몇 개만 추려본 말들—‘...조각조각 쏟아지는/ 거짓말/ 넘치는 말과 기호들/이어질 수 없는 점들/ 헛된/ 춤추는 환영들/ 공허함의 힘과/ 공기 중에 떠도는 텍스트...’--에는 기표와 기의가 끝없이 미끄러지면서 의미를 고정시킬 수 없는 현대의 말 문화에 대한 비평이 있다. 그것은 만족될 수 없는 욕망처럼 공허하기도 하지만, 붙잡아 맬 수 없는 소리처럼 심미적일 수도 있다.   


    




<내 귓속에 묻힌 묘지들> (김현주, 2017년,  21분)


김현주의 작품 속에서 감춰진 역사적 진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신이다. 분신이란 주체의 분열상을 말한다. 역사가 신화나 종교 못지않은 거대한 서사의 하나임을 생각할 때, 분열이라는 정신분석학적 소재로 거대서사를 비춰보는 것은 특이하다. 후기 구조주의자들에게는 프로이트 또한 헤겔이나 마르크스 못지않은 거대 서사의 주인공이지만, 정신분석학은 여전히 사회보다는 개인이나 가족에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작품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뚫린 통로 앞에 선 주체와 그 반영상이라 할 만 한 분신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된다. 주인공과 분신은 말을 하지 않지만, 수수께끼 같은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들이다. 그들이 숲으로 이동하는 것은 지금보다는 더 자연적인 환경에 살았을 수 십 년 전의 사람들의 터전을 향하는 것이다. 


매미 소리 크게 들리는 여름 숲의 우거진 수풀들 아래에 누워 있는 것은 한국전쟁 당시 몰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 가족이다. 시체들이 매립된 장소를 알려주는 밧줄, 희생 당시에 폭포수같이 흘렀을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천 등, 암시적인 사물들이 인물과 함께 행동한다. 무대는 숲으로부터 계곡으로 옮겨진다. 이미 그곳에 와있는 망자들과 만난 여자는 가족사진을 찍듯이 함께 포즈를 취한다. 계곡물에는 그들의 반영상이 비춰진다. 숲이나 계곡은 이야기가 처음 시작되는 무대인 고속도로 터널과는 다른 영역, 즉 자연이다. 자연에서 캐낸 진실은 우리의 역사적 무의식에 해당된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분열상인 분신의 부정적 측면을 드러낸다. 여기서는 죽음에 이르는 폭력이다. 사빈 멜쉬오르 보네가 [거울의 역사]에서 말하듯이, 분신 이야기는 나르시소스의 신화처럼 종종 죽음으로 끝난다. 폭력과 죽음에 얽힌 분신의 테마는 남과 북이 원래 한민족이었음을 떠올린다.    

  

출전; NeM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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