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조각 이어진 색다른 세상

이선영(미술평론가)

박미소의 작품은 다양한 무늬의 천을 잘라 붙여 산동네 풍경을 표현한다. 광대한 조망적 시점은 그 풍경이 반드시 산동네가 아닐지라도 다닥다닥 밀집된 도시 주거환경을 포착한다. 여러 종류의 천을 붙이는 작업은 다양한 조합을 낳는다. 숙련된 상황에 따라서는 물감으로 그리는 것 보다 더 빠르게도 화면을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천 꼴라주는 산동네 풍경의 다채로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형적 선택으로 보인다. 또한 잘라서 붙이는 구성적, 구축적 방식은 건축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유사하다. 따라서 그 풍경들은 실제와 구조적 동형성을 가지는 것이지,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미술사에서 꼴라주는 르네상스 이래의 재현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했다. 이때 꼴라주는 현실을 흉내 내는 눈속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평행하게 존재하는 세계가 된다. 꼴라주로 구현된 현실은 더욱 가변적이다. 특히 박미소의 작품처럼 꼴라주의 단위가 거의 분자적인 수준으로 조밀할 때 그렇다. 

같은 무늬의 천이 한 작품의 이곳저곳에서, 그리고 다른 작품에서도 나타나곤 한다. 한 색조로 이루어진 풍경과 다른 색조로 이루어진 풍경이 한 쌍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것들은 마치 레고로 이루어진 세상처럼, 이런 저런 조합으로 실재를 구축/해체 한다. 작은 자투리도 기술적으로 붙인 모양새를 보니 어릴 적 친구네 할머니가 부업으로 하셨던 가죽 꼴라주가 떠오른다. 그 집에 놀러 가면 어디선가 수거해온 버려진 색색의 자투리 가죽들이 산처럼 쌓여있고 친구 할머니는 그것들을 하나씩 집어 솜씨 좋게 오려서 또 다른 가죽 판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판이 만들어지면 그것으로 알록달록한 무늬를 가진 옷이나 가방 등이 만들어졌고, 피에로나 아를르깽의 의상처럼 나름의 멋이 있었다. 말 그대로 색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단색으로 또는 여러 배색 관계를 가지고 빈틈없이 맞춰지던 꼴라주가 매우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1970년대, 버린 것도 다시 쓰는 가난한 시대의 풍경이었지만 자원 재활용이라는 점에서는 훌륭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전통 조각보같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박미소의 작업 역시 단편들을 덧대어 만드는 단편 속의 또 다른 단편들을 끼워 넣는 작업 방식이다. 판과 판, 덩어리와 덩어리 사이에서 무엇인가 생겨난다. 계획도시처럼 이전의 것을 완전히 밀어낸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굴곡진 삶의 마디마디에서 무엇인가가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한 방식은 자연 생태계와 어울린다. 자연 생태계에서 제로 베이스에서의 출발은 재난을 의미한다. 가령 난데없이 지구와 혜성이 충돌하여 기후가 급변하고 어떤 종들을 멸종하는 사건들이 그렇다. 이러한 무리한 변화가 근대문명에서는 보편적으로 시도 되었고 그런 만큼 저항도 낳았다. 개발주의자의 시선으로 볼 때 박미소의 작품 속 풍경은 당장 사라져야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싹 밀어버리고 세워진 콘크리트 블록들에서는 생태계와 닮은 다채로움을 복원하지는 못할 것이다. 풍경 속 집 들은 매우 빽빽하다. 예쁜 무늬의 천이 아니었다면 한국 전쟁 당시 피난민들로 가득했던 칙칙한 산동네 판잣집들을 연상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은 젊은 작가들의 공공예술 활동 덕분에 누추함 보다는 언덕 마을 그자체가 가질 수 있는 나름의 아름다움과 운치가 드러나기도 한다. 화면 상단 부분에 약간 보이는 하늘, 그리고 집과 집 사이에 나 있는 좁은 길은 그 밀집상태를 가늠하게 한다. 근대의 도시화는 밀집을 요구해왔다. 근대는 집중된 생산과 소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레드 오션에서의 저임금 노동력을 유지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한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도 밀집해 살지만 부유한 사람도 밀집해 산다. 전자는 도시의 주변부나 산동네, 후자는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칭해지는 콘크리트 장벽들이 밀집된 삶의 거처가 된다. 

산의 굴곡 면과 일치된 작품 속 풍경은 다채로운 만큼이나 무질서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 무질서는 가령 재개발 된 이후의 수직적 풍경에 내포될 획일성에 비하면 활력이 있다. 물론 이 산동네 풍경도 도시화에 따른 밀집에 의해 자연이 파괴된 결과일 것이다. 또한 빈곤 또한 획일적일 수 있다. 마치 박미소의 풍경들이 멀리서 보면 비슷한 알록달록함으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파트 숲은 재개발 이전의 주택들 보다 더 짧은 기간만 지속할 수 있으며, 슬럼화 되면 더 빈곤을 밀집시키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더 값비싼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박미소의 작품 속 작은 집들은 대지와 이웃, 그리고 과거(기억)과 더욱 밀착되어 있다. 비록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은 아닐지라도 수직지향적인 삶에 요구되는 긴장과 피로도 적을 것이다. 집들 사이로 이리저리 나있는 골목길은 낮은 집들과 마찬가지로 반 수직적이고 반 직선적이다. 오려진 천에서 풀려진 실오라기들은 직선을 교란한다.

수직, 직선 등의 형태는 진보, 우리나라에 와서는 발전주의로 변모한 이데올로기와 관계있는 은유이다. 홍세화가 편집한 [진보는 죽은 사상인가]에 따르면, ‘모든 것이 하나의 일직선상을 지나야하고 또 다른 선택의 가능성은 없는’ 은유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근대철학자 데카르트였다. 근대의 역사적 기하학에 따르면 인류가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직선으로 가야만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진보를 비판하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오래된 미래]에서 진보란 오직 한가지의 형태만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자연스럽고 냉혹한 과정이라고 비판한다. 그것은 우리의 자본 및 에너지 집약적 생활방식의 낭비와 비도덕성, 사람들을 서로서로 갈라놓는 그런 종류의 개발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근본적으로 세계는 한 종류의 과학과 기술에 기초한 한 가지 개발 모델만을 경험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삶은 근대의 프로젝트가 희망하고 강제했던 곧은 하나의 길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박미소의 작품 속 골목길처럼 미로이다. 아파트식의 숫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곳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앞도 뒤도 위도 아래도 불확실한 미로 같은 여정에서 예정된 것이 아니라, 예외적인 것이 더 많이 등장한다. 거기에는 획일적인 상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삶의 발명품들이 가득하다. 그러한 것들은 대부분 이것저것을 그러모아 조합한 것들이며 하나가 아니라 여러 기능을 가진다. 그러한 사물들의 명확한 기능은 예측되지 않는다. 박미소의 작품 앞 관객은 어떤 집 근처의 다음 집에 어떤 색과 무늬의 천이 붙여질지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그것이 아파트 촌 식의 조형이라면 형태와 색채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그 정도가 심해서 아예 집에다 상표를 달고 살지 않는가. 박미소의 꼴라주 작품은 각양각색의 삶에 대한 조형적 은유이다. 그것은 생태학적으로는 다원주의적 삶을 지지할 것이다. 건강한 생태계일수록 다양한 종이 공존한다. 반면 병적인 환경, 가령 인공적으로 개발된 4대강에서 발견되는 녹조류 같은 것은 하나의 종이 지배하는 생태계의 예이다.  

박미소의 작품 속 알록달록한 동네는 생태적 다양성에 상응하는 문화적 다양성을 지향한다. 지상의 알록달록한 다채로움 위에 군림하는 것은 푸른 하늘 밖에 없다. 작품 속 동네는 산의 실루엣을 크게 거스르지 않으면서 그 내부에 다양한 요소를 품고 있다. 작가가 사용한 천의 종류는 매우 많다. 천들은 원하는 물감을 고르듯이 수집되었을 것이다. 미로에서의 공간성이 그러했듯이 이곳에서의 시간성은 근대적이지 않다. 즉 이곳에서 시간은 한 방향성으로의 흐름, 즉 진보가 아니다. 인간 역사의 모델인 자연사 또한 그렇다. 에드가 모랭은 [인간과 죽음]에서 인간의 역사로서의 생물학의 역사는 하나의 발전의 역사가 아니라,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발전들의 역사라고 본다. 이는 단편적이고 무질서하고 산만한 역사를 말한다. 작은 집들과 골목길로 얽히고섥힌 박미소의 풍경에는 저마다의 색과 형태, 무늬와 향기로 한가득 꽃피운 자연적 삶을 일깨운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17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