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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삶](Ⅰ-1) 현대 도시들은 왜 아름답지 않은가

유현준

ㆍⅠ. 도시는 살아 움직인다

우편엽서에 어울릴 만큼 건축적으로 아름다운 몇몇 도시를 떠올린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흰색 회벽으로 만들어진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이나 벽돌로 아름답게 지어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어느 누구도 서울의 논현동이나 서초동의 근린생활 건물들이 들어선 거리가 담긴 우편엽서를 떠올리지는 않을 것 같다. 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세워진 오래된 도시들은 멋있고 그 이후에 만들어진 도시들은 그렇지 못한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건축구조 기술과 재료의 관점에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 그리스 산토리니와 한국 아파트촌

옛 도시에는 그 시대, 그 지역에서 사용 가능한 구조적 기술이 하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교통과 유통망이 발달한 때가 아니었기에 건축 재료도 가까운 곳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주변에 나무가 많은 경우에는 나무로, 돌산이 가까우면 돌로, 이도저도 없으면 흙으로 빚어 구운 벽돌로 도시 내 대부분의 건물을 지었다고 봐야 한다. 구조 기술적인 면에서 본다면 성당이나 궁궐 같은 특별한 건축물만이 가끔 큰 스케일로 구축됐을 뿐 나머지는 대부분 인간의 노동력으로만 지어야 했기에 휴먼스케일의 건축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한옥을 보더라도 소달구지로 옮길 만한 나무 무게와 몇 사람이 힘을 합쳐서 들어올릴 수 있는 크기와 길이의 대들보가 그 건물의 단위와 크기를 규정했다. 따라서 휴먼스케일의 건물들과 대형 스케일의 랜드마크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강약의 조화를 이루었다. 이 같은 구축 기술적, 건축 재료적 제약들이 도시 DNA의 통일성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선 이후 크레인, 철골 구조의 도움으로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휴먼스케일을 넘어 대형화한다. 이로 인해 인간의 소외가 일어나고 소통이 없어지는 도시 공간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건축 재료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현대도시에는 전 세계에서 수입된 재료들이 난무한다. 따라서 통일성과 컨텍스트가 부재한 카오스적인 도시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브라질, 중국, 시리아 등에서 수입된 다양한 석재, 유리, 철재, 타일, 페인트 등이 지나치게 풍부하게 넘쳐난다. 타일로 마감된 건물 옆에는 커튼월 건물이, 그 옆에는 벽돌 건물에 네모난 창이, 그 옆에는 밝은 화강석으로 마감된 건물이, 그 옆에는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그 옆에는 짙은 회색 제주도 현무암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도시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도시의 간판만 정리하면 좋은 거리가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간판이 정리된 뒤 그 뒤에 보이는 건축물들의 모습도 이런 혼돈이다. 그다지 많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물론 간판들은 정리되어야 한다. 간판이 정리되면 건물이 보일 것이고, 그때서야 건물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건물이 정리가 될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리나라도 건축물을 보기 위해 해외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도시를 가지게 될 것이다. 서울은 여름철이 그나마 좀 볼 만하다. 가로수와 잡초가 건물과 간판을 많이 가려주기 때문이다. 사실 건축적으로 아름다운 도시가 되려면 겨울에 아름다워야 한다. 가로수 한 그루 없는 유럽의 도시들이 가로수가 많은 우리나라 도시보다 더 아름답다면 우리 도시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 통일된 재료, 그리고 지형에 맞춘 다양한 형태

과거에는 재료가 한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형태는 오히려 지형에 맞게 복잡하게 만들어진 반면 최근에 지어지는 도시에서는 재료는 복잡한 반면 형태는 단순하다. 건물을 짓기 쉽게 불도저로 밀어 평평하게 만든 후에 단순한 상자형태의 건물을 짓는 것이다. 여기에 경제적인 사정까지 고려돼 각 건물의 형태가 비슷비슷하게 나온다. 다양성을 형태가 아닌, 재료로 손쉽게 얻으려 한다는 점이 문제다. 이로 인해 도시의 통일성이 사라지고 다양성 또한 우리의 미적 감각으로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카오스의 수준으로 가버린 것이다. 

도시를 형태와 재료 두 가지 요소로 본다면 네 종류가 나올 수 있다. 형태도 단순하고 재료도 단순한 경우(한국의 아파트 단지), 형태는 복잡하나 재료는 단순한 경우(그리스 산토리니 섬), 형태는 단순하나 재료는 복잡한 경우(서울의 논현동 뒷골목), 형태도 다양하고 재료도 다양한 경우(서울의 청담동 명품 플래그샵 거리)이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형태는 다양하고 재료가 통일되었을 때 도시공간이 다이내믹하고 좋아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보스턴의 뉴버리 스트리트는 신축되거나 리모델링되는 건축물의 재료를 모두 벽돌로 통일시킴으로써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재료만 통일되었다고 다 아름다운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모두 콘크리트로 지어진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가 아름다워 보여야 할 것이다. 다만 지역성이 드러나는 재료의 통일성은 일단 좋은 도시로 가는 전략 중 하나라는 것을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보면 느낄 수 있다. 

■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가 빛나지 않는 이유

현대의 도시들에서 살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를 하나 더 찾아본다면 ‘골목 대신 복도’의 건축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건축물, 특히 개발도상국에 지어지는 대부분의 현대건축물 및 도시를 만드는 가치관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이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다. 

르 코르뷔지에가 주창한 도시의 비전 중에 ‘빛나는 도시’라는 게 있다. 파리 도심을 고층 아파트 단지로 리모델링한 신도시 계획안이다. 주된 내용은 고밀도의 대형 고층 건물을 지어 건물과 건물 사이를 크게 떨어뜨려 놓고, 그 사이에 공원을 만들어 도심 속에서도 자연을 느끼며 살게 하자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발코니에 앉아 넓게 펼쳐진 공원을 바라보는 것이 있다. 언뜻 보면 아주 아름다운 경치다.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 계획안도 이를 흉내 내서 만든 것이다. 최근 아파트 광고 전단은 대부분 중앙에 조경 처리된 공원이 있고, 주변으로 고층 건물이 들어선 단지 계획을 홍보한다. 광고의 초점은 얼마나 공원 조경이 잘 되어 있는가에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사기성이 존재한다. 이 디자인이 공원을 제공한다고 광고할 때 우리는 도시 속의 가장 큰 중요한 요소인 길이나 골목을 잃은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는 골목은 없고 복도만 있다. 우리의 옛 도시 속에서 다른 집에 갈 때는 골목을 따라서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아파트에서는 복도나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길을 찾는다. 그렇다면 골목과 복도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그 근본적인 차이는 하늘이 있느냐 없느냐다. 우리의 대형 아파트 단지는 우리에게서 우리 머리 위의 하늘을 빼앗아갔다. 

■ 머리 위 하늘을 빼앗긴 도시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하늘이 보이는 골목길 대신 하늘 없는 복도와 엘리베이터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태는 세대 간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막았다. 과거 대문 앞 골목길에서 이루어지던 일을 생각해보자. 아이들은 모여서 놀았다. 그 동네에는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같은 것이 필요 없었다. 아이들은 모여서 축구와 야구를 골목에서 하고 (어떻게 그렇게 작은 골목에서 온갖 스포츠를 다 했는지 의아하다. 어린이의 스케일은 확실히 어른과는 다르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자연스레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골목길이라는 외부 공간은 우리에게 길 이외에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는 하늘을 향해 열린 공간이었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각각의 세대에서 바라보는 자연이 많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그저 바라보는 자연일 뿐이었다. 실제로는 자연과 소통하면서 세대 간의 교류를 촉진했던 골목길 없이, 세대는 분리되고 소외될 뿐이었다. 자연은 일상에서 체험되지 못하고 보기만 하는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계획안은 실패했다. 자연을 바라보는 대상으로만 이해하면 건축디자인은 실패한다. 

■ 빨래가 사라진 도시

마지막으로 소통이 없는 도시를 만드는 주범인 ‘발코니 확장법’을 말해보자. 홍콩이나 베니스를 가보면 필자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건물의 입면에 널려 있는 빨래다. 빨래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당연하게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한때 주병진씨가 경영하던 속옷 브랜드의 광고 문구에 담긴 “얘야, 속옷 빨래 널린 것을 보니 뼈대 있는 집안이구나”라는 요지의 내용이 기억난다. 이 광고 문구는 빨래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하나의 훌륭한 도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건축물도 중요하고 자연환경도 중요하다. 하지만 도시를 훌륭하게 완성하는 것은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삶을 담아낼 수 있어야 성공적인 도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삶은 도시 환경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이런 면에서 홍콩의 도시 속에 널린 빨래를 쳐다보자. 그 건축은 빈민촌에 가까운 풍경이지만 빨래가 도시에 컬러를 입히고 생동감 넘치게 해준다. 반면 우리나라의 아파트 단지들은 모두가 오피스 빌딩처럼 유리창으로 도배되어 있다. 그 안에 사람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1980년대 강남 아파트만 해도 발코니는 그 집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후 발코니에 알루미늄 새시를 하면서 발코니가 사라졌고, 언제부터인가 발코니를 확장해 집을 넓힐 수 있게 법적으로 허용하면서 우리의 도시에서 발코니는 없어지고 모두 유리창만 남아있게 됐다. 우리의 아파트가 삭막하긴 하지만, 그나마 발코니가 프라이빗한 외부공간으로서 약간의 개인 마당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 발코니마저 내부 공간화시키고 방을 만들어 버리면서 우리의 도시풍경은 삶이 보이지 않는 삭막한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된 것이다. 

다행스럽게 몇 년 전 이런 문제점을 알고 서울시에서 도시에 새롭게 들어서는 건물의 입면에 일정 비율을 발코니로 남겨놓게 하는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만들려 한 바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안타깝게도 실효성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이런 법이 있기를 바랄 것이다. 경제성과 상업성만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용적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현재의 방식이 정답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도시의 풍경은 너무나도 삭막한 공간이 된다. 

우리의 도시가 살 만한 거리로 채워지게 하기 위해서는 건축물에서 사람 냄새가 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유리창 대신 발코니가 있는 건축물을 만들어야 한다. 그보다 더 좋은 방식은 우리나라 도시의 특징인 경사지와 구릉지를 이용해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테라스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 몇몇 아파트 브랜드들이 테라스식 집합주거를 광고하는 것을 보았다.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마당을 빼앗기고 골목을 빼앗긴 우리 자녀들에게 테라스라도 선물해 주고 싶다.

- 경향신문 2012.12.0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1302141235&code=9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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