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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삶](Ⅰ-2) 뉴욕 이야기 - 도시는 살아 있다

유현준

ㆍ닭털 뽑던 공장이 예술가들이 사는 아파트로

건축은 사회, 경제, 역사의 산물이며 도시는 살아 움직인다. 이 명제를 뉴욕의 로프트(Loft)처럼 잘 보여주는 건축 형태도 없다. 로프트의 사전적인 정의를 찾아보면 ‘예전의 공장 등을 개조한 아파트’라고 되어 있다. 이 사전적 정의는 단순하게 결과만 설명하는 것이다. 과정은 더욱 재미있다. 로프트 하면 흔히 뉴욕 소호지역에 있는 로프트를 말한다. 

■로프트(Loft)

초기 산업시대에 뉴욕은 아메리카 최대의 항구도시였다. 물건을 만들어 파는 산업도시로서의 기능도 많이 요구되면서 고밀도의 공장이 생겨났다. 그것이 지금의 소호지역 등에 많이 지어진 높은 천정고의 건물들이다. 높은 천정고 덕분에 창문도 크게 만들어졌다.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는 공간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닭털 뽑는 공장이나 방직기계들이 들어선 섬유공장들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2차 산업이 쇠퇴하면서 이러한 공장들이 차차 문을 닫고 비어 있는 건물로 남게 되었다.


버려진 공장 건물들은 비어 있게 되고 치안 문제가 발생했다. 뉴욕시는 방법을 고안했다. 예술가들에게 헐값에 임대를 주어 비어 있는 건물에 사람들이 살게 한 것이다. 가난해서 임대료를 내기 힘든 미술가들이 빈 공장 건물에 대거 들어오기 시작했다. 큰 창문과 높은 천정고는 커다란 캔버스에 작업을 해야 하는 화가와 조각가들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커다란 화물 엘리베이터는 완성된 대형 그림이나 조각품을 옮기기에도 적합했다. 이들에게 한마디로 최적의 공간이었다. 예술가들은 이 공간에서 숙식을 하면서 창작 활동을 했다. 

예술가들이 모이자 당연히 그들의 작품을 파는 화상들이 주변 건물 1층에 갤러리를 내게 되었다. 그들의 전시회를 보고 작품을 사기 위해서 돈 많은 은행가들이 오기 시작했다. “뱅커들은 모이면 예술 이야기를 하고, 예술가들이 모이면 돈 이야기를 한다”고 한 오스카 와일드의 말도 있지 않은가. 돈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예술가들이 로프트에서 사는 모습이 아주 멋있어 보였다. 하나 둘 돈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오게 되고 높은 천정고의 오픈 스페이스에서 사는 것이 뉴욕 여피(Yuppie)들의 ‘쿨’한 삶의 형태가 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로프트에서 사는 모습은 미키 루크가 정말 멋있는 젊은 시절 출연작인 <나인하프위크>(9 1/2 weeks)라는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면 잘 나와 있다. 

안타까운 것은 돈 많은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점차 이들을 위한 명품숍들이 들어서고 임대료가 올랐다는 사실이다. 그걸 구경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모여들면서 정작 예술가들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채 다시 다른 동네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과거 푸줏간들이 많이 있던 첼시지역으로 예술가들이 대거 이동해서 이 지역의 부동산가격이 점차 올라가는 추세다. 

■소호의 변신

여기서 조금 곁길로 빠져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뉴욕시에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싶으면 건축설계사무소가 밀집된 지역의 사무실을 사면 된다. 건축설계사무소들은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단위 면적당 벌어들이는 돈이 적기 때문에 임대료가 싼 지역으로 모인다. 소호지역이 그랬다. 보통의 변호사 사무실은 33㎡(10평) 정도의 공간에 레이저 프린터 한 대와 사무장 한 명, 전화 받는 비서만 두고서도 충분한 매출을 올린다. 하지만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같은 수준의 매출을 올리려면 직원 10명은 있어야 하고, 직원마다 도면 놓는 대형 책상과 컴퓨터를 놓는 책상, 대형 플로터까지 두어야 한다. 많은 면적을 요구하는 건축설계사무소는 임대료가 저렴한 곳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건축설계사무소들이 들어서고 나서 20년가량 있으면 주변의 상업시설들이 활성화한다.

멋을 아는 건축가들이 가는 식당이나 카페의 인테리어는 일반적인 곳과는 다르게 만들어진다. 차별화된 멋스러운 상업지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때쯤 되면 뉴욕에서 일반적인 10~20년짜리 장기 임대 계약이 끝나고 이 자리에 정보기술(IT) 회사들이 들어오는 것이 뉴욕 부동산의 패턴이다. 이때가 되면 계절마다 이동하는 철새처럼 건축사무소나 예술가들은 다른 지역을 찾아 이동한다. 그리고 그 지역은 한 20년 후에 뉴욕에서 가장 ‘핫’한 지역이 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가 서울의 홍대 앞일 것이다. 물론 홍대 앞의 부동산 가격이 오른 이유 중 하나로 당인리 발전소가 석탄에서 천연가스로 연료를 바꾸면서 석탄재가 떨어지지 않는 청정지역으로 변모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홍대 앞은 예술가들이 그 문화를 만든 지역이다. 그 덕분에 사람이 모이고 그것이 지역 사회의 아이덴티티가 되면서 부동산 가격을 올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지금의 홍대 앞 땅값은 약 30년 전에 비해 수십배가 올랐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싶다면 이제 홍대 앞에서 쫓겨난 예술가들이 가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보시라. 

■할렘

뉴욕의 할렘가는 흑인들만 사는, 범죄율이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필자가 잘 아는 여동생이 지하철에서 잠깐 졸다가 실수로 할렘에서 내렸는데, 자기 빼고는 모두 흑인들만 있어서 기절할 뻔했다고 한다. 깜짝 놀라 정신없이 주변의 가게로 들어갔더니 그 가게 주인이 동양인 여자를 보고 더 놀랐다고 한다. 할렘은 그 정도로 사회와 격리된 곳인데다 치안 유지가 안되는 아주 고립된 지역이다. 하지만 할렘이 처음부터 이렇게 살벌한 슬럼가는 아니었다. 불과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돈 많은 유대인들이 사는 부자 동네였다. 그러나 주변에 흑인들이 이주해 오기 시작하고 강 건너 뉴저지의 마당이 있는 교외지역에서 사는 것이 대세가 되면서 이 지역의 탈유대인화가 가속화됐다. 


심리학에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주창하고 실험으로 입증한 것이다. 실험에서 두 대의 자동차를 보닛을 열어 둔 채 주차시키면서 한 대는 깨끗한 상태로, 다른 한 대는 유리창을 약간 깨진 상태로 두었다. 실험 결과는 천양지차였다. 유리창이 깨진 채 주차한 차는 10분 만에 배터리가 없어지고, 타이어 등이 잇따라 도난당하면서 1주일 만에 완전 폐차상태까지 갔다. 반면 옆에 깨끗한 상태로 보닛이 열려 있던 차는 끝까지 깨끗하게 유지되었다고 한다. 이 실험 결과처럼 약간의 비호감적인 컨디션이 연출되면 부정적인 변화는 가속도가 붙어서 더욱 급속하게 나빠지게 된다. 할렘에서 유대인이 이탈한 것이 이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할렘에 가보면 아름다운 브라운스톤의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한 블록 전체가 모두 버려져 유리창 하나 없는 흉물스러운 건물이 되어버린 것들을 볼 수 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

여기서 장황한 서론을 쓴 것은 이 상황을 뉴욕시가 어떻게 개선해 나가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뉴욕시는 이 건물들을 한 채당 1달러에 100년간 임대해 주는 조건으로 개발업자들에게 장기 임대했다. 물론 시로서는 슬럼가가 개발되면 세금이 들어오고 치안이 좋아지기 때문에 거저 주어도 남는 장사가 된다. 거의 공짜에 건물을 빌린 회사는 한 거리 전체를 한꺼번에 개발했다. 거리가 전체적으로 개발되지 않고 한두 채만 고쳐질 경우에는 사람들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 때문에 이사를 오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집값이 떨어진다며 바깥에 빨래도 못 널게 하는 법이 있을 정도다. 그런 곳에서 옆집의 창문에 합판이 못질돼 붙어있는 집들이 있으면 누가 이사를 오겠는가? 

다시 건축으로 돌아가자. 뉴욕의 거리 사진을 보면 건물 입면에 철제 계단들이 걸려있는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뉴욕의 상징이고 낮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파트 안에서 보면 경관을 가리는 장애물이자 치안에도 적잖은 문제가 있다. 필자도 보스턴에서 살던 아파트에서 이 비상계단을 통해 들어온 도둑에게 집을 털린 경험이 있다. 이 계단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불이 났을 경우에는 반드시 두 개의 탈출구가 있어야 한다는 법이 생기면서 부득이하게 건물주가 만들어야 했던 추가 설치물이었다. 

개발업자들은 거리 전체의 건물을 한꺼번에 개발하면서 이 철제 비상계단을 없앴다. 옆 건물과 복도를 연결하면서 건물 입면에 붙어 있던 비상계단을 뜯어내고 건물 다섯 채 정도에 하나씩의 내부 비상계단만 설치한 것이다. 철제 계단이 사라지면서 아름다운 브라운스톤 건물의 원래 모습도 회복됐다. 그리고 이렇게 개선된 집들은 흑인 출신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들에게 특혜 분양됐다. 마을에 전문직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주거환경이 개선되고 할렘의 전체 분위기도 달라졌다. 

이런 방법 외에도 도시 개발업자들이 환경 개선을 위해 잘 쓰는 비밀무기가 두 가지 더 있다. 하나는 스타벅스 커피숍이고 다른 하나는 반스앤노블(Barnes & Noble) 서점이다. 이 둘이 합쳐져서 반스앤노블 책방에 스타벅스가 들어간 경우도 있지만, 하여간 이 둘이 들어가면 주변동네가 좋아지면서 개선되는 사례가 많았다. 할렘을 개발할 때도 이 두 가게를 조심스럽게 북쪽으로 배치시키면서 빈민가를 없애 나갔다. 물론 이런 개발 방식에도 문제는 많다. 치안과 환경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뉴욕은 저소득층 사람들이 점점 먼 곳으로 쫓겨나고 부자들만 사는 도시가 되어 버렸다. 이는 도시 재개발을 해야 하는 우리도 연구하고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직사각형 vs 정사각형

알다시피 뉴욕은 그리드 형태의 단순한 격자형 구조를 띠고 있는 도시다. 어찌 보면 아주 실패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지루한 도시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뉴욕이 어떻게 지금처럼 성공적인 도시가 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리드의 프로포션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일단 엄밀히 말하면 뉴욕은 단순한 그리드는 아니다. 그리드이되 가로는 길고 세로는 짧은 형태의 그리드이다. 가로는 스트리트이고 세로는 애비뉴로 명명되어 있다. 만약에 이 블록의 형태가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었다면 상당히 심심한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든지 모두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뉴욕은 애비뉴를 따라서 걸을 때의 느낌과 스트리트를 따라서 걸을 때의 경험이 크게 다르다. 뉴욕의 보편적인 블록 크기는 가로 250m, 세로 60m다. 시속 4㎞의 속도로 걸을 경우에 1개의 블록을 스트리트를 따라서 걷는 데 약 3분45초가 소요되는 반면, 애비뉴를 따라서 걸을 때는 약 1분이 걸린다. 소요되는 시간이 약 4배 더 길다는 이야기는 4배 더 지루하다는 이야기로 풀이될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주로 애비뉴를 따라서 걷는다. 게다가 애비뉴는 남북 방향으로 나 있어서 동서 방향으로 난 스트리트보다 햇볕도 더 잘 든다. 햇볕이 잘 드는데다 1분 걸을 때마다 새로운 거리를 마주치니 좋은 느낌일 것이다. 이는 다른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다이내믹한 체험이다. 이런 물리적인 조건 때문에 뉴욕은 5번 애비뉴나 파크 애비뉴 같은 유명한 애비뉴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에 비해 보행자에게 인기있는 스트리트는 없다. 대신 좀 더 프라이빗한 거리는 가능하다. 동서방향으로 나 있는 뉴욕의 스트리트는 대부분 좁고 어두운 느낌의 서비스 통로 같은 느낌을 준다. 몇몇 장소성을 가지는 거리로 성공한 예를 찾을 수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코리아타운이라고 알려진 32번가일 것이다. 붐비는 5번 애비뉴에서 90도로 꺾어진 32번가는 도심 속의 사각지대다. 외부 세계와는 격리된 장소성을 가진 것이 역설적으로 소수민족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마을 같은 거리를 만드는 조건이 됐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신도시를 건설할 때 지금의 정사각형 도로망이 아니라 뉴욕 같은 직사각형 도로망을 만들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걷고 싶은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 경향신문 2012.12.0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2072049425&code=9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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