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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찾던 손, 명작을 잡다

‘궁극의 취향’ 아트 컬렉션

미술 경매는 ‘억’소리 나는 세기의 명화들과 드라마틱한 반전으로 가득 찬 흥미진진한 세계다. 배경은 서울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점의 ‘Andy Warhol & Toy Paintings’ 전시장.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게 되며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이 아니다.”


-유한준, ‘석농화원’에서》

●경매시장 달구는 ‘궁극의 취향’ 아트 컬렉션 

세계 경제가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이 시점에도 끄떡없는 불황의 무풍지대가 있다.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나날이 치솟는 가격, 꾸준히 커지는 시장 규모와 넓어지는 저변까지 이례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활력이 감도는 미술시장이 그 주인공이다. 올해 5월 소더비 경매에서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가 1억2000만 달러(약 1363억 원)에 팔리며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으며 불과 며칠 뒤 마크 로트코의 ‘오렌지, 레드, 옐로’가 크리스티 경매에서 8700만 달러(약 990억 원)에 팔려 현대미술품 중 최고가 기록을 세우는 기염을 토했다. 신기록 행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잭슨 폴록, 로이 릭턴스타인 등 수많은 작가들이 불황에 아랑곳없이 개인 판매 기록을 갈아 치웠다. 

국내 미술시장도 경기와 동떨어진 흐름을 보이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감했던 고가 미술품 수입이 다시 늘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 미술품 평균 수입가격은 3444달러(약 376만 원)로 지난해(595달러)의 약 6배로 뛰었다. 

무엇이 이 시장을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기본적으론 미술시장 자체의 속성 때문이다. 미술시장은 고가 예술품을 거래할 자금력을 갖춘 수집가들에 의해 움직이기에 상대적으로 경기를 덜 탄다. 런던의 한 미술품 투자 전문가는 “돈 많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사지 않고 있으면 스스로를 처량하게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정조 시대 문장가 유한준이 쓴 ‘알게 되면 보이고 보이게 되면 모은다’는 유명한 문구는 아트테크가 대세가 된 이 시대에도 미술품 수집 행위의 본질이 무엇인지 힌트를 준다. 미술품 수집에서 돈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알아야만 볼 수 있고 볼 줄 알아야만 살 수 있는 미술은 감식안만으로도, 돈만으로도 접근할 수 없는 독특한 취향의 세계다. ‘A style’이 아는 자만이 진정 즐길 수 있는 ‘궁극의 취향’ 미술의 세계를 경매 기록들을 바탕으로 살펴봤다. 

▼그림은 그냥 볼때, 알고 볼때, 집에 두고 볼때의 느낌 천양지차▼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뭉크는 ‘외침’이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없던 다른 것으로 바꿔버렸다.” -벤 샨》

일찍이 미국 화가 벤 샨(1898∼1969)이 뭉크의 ‘절규’에 대해 내린 평가는 이 작품의 독창성뿐 아니라 가격적인 측면에서도 유효한 분석이 됐다. 영혼의 번민, 죽음의 불안을 특유의 과장과 왜곡, 개성적인 색채로 기묘하게 표현한 뭉크의 걸작 ‘절규’는 세계 경매 기록상 ‘지금까지 없던’ 가장 비싼 그림으로 꼽히게 됐기 때문이다. 

올해 5월 소더비 뉴욕 경매에 나온 이 작품은 약 1363억 원에 낙찰되며 미술경매 최고가 기록을 새로 썼다. 작품 한 점당 가격이 1000억 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미술품의 작가로는 뭉크 외에도 입체주의 미술 창시자 파블로 피카소, 인간의 실존을 응축한 듯한 길고 가는 조각으로 유명한 알베르토 자코메티, 황금빛 이미지와 찬란한 색채로 관능미를 형상화한 구스타프 클림트 등 누구나 알 만한 대가들이 있다. 

1990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938억 원에 팔린 기록으로 20년 넘게 세계 미술품 경매가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과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이트 인 파리’에 등장하기도 했던 클로드 모네의 ‘수련’(913억 원)도 가격으로 10위권에 드는 고가 미술품이다. 

물론 개별적으로 거래된 작품 중에는 훨씬 더 비싼 작품도 많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은 프랑스 후기 인상파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로 올 2월 2억5000만 달러(약 2800억 원)에 팔렸다. 판매자는 그리스 선박 재벌 게오르게 엠비리코스, 구매자는 카타르 왕가였다. 이 작품 이전의 최고가는 소더비 프라이빗 세일(Private Sale)에서 판매된 미국 추상화가 잭슨 폴록의 ‘NO.5’(1억4000만 달러)였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훗날 박수근 선생의 그림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나는 이 사실을 그가 작고한 지 몇 년 만에 열린 유작전을 보고야 알았다.” -박완서》

박수근 화백과 그의 작품 ‘나목’을 모델로 동명의 소설을 썼던 소설가 박완서 씨는 박 화백의 작품 값이 사후에 치솟은 데 대해 속상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생전의 가난과 절박했던 예술가의 생애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수근의 그림 값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치솟았고 현재까지 한국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세계의 값비싼 그림들과 비교하면 단위의 차이가 크다. 박수근의 ‘빨래터’가 2007년 5월 서울옥션에서 세운 45억2000만 원의 기록을 깬 작품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뭉크의 ‘절규’에 비하면 30분의 1 수준이지만 국내 미술시장에서 박수근을 빼놓을 수 없다. 낙찰가 상위 10점 중 총 네 점이 그의 작품이다. 나머지 세 점은 ‘시장의 사람들’(25억 원), ‘농악’(20억 원), ‘공기놀이 하는 아이들’(20억 원)로 모두 2007∼2009년에 팔렸다. 

한국 미술경매의 주요 기록들은 아트펀드 조성이 붐을 이루며 금융자본이 유입돼 국내 미술시장이 정점을 찍던 2007년 무렵 달성됐다. 낙찰가 기준 상위 10점 중에서 절반이 넘는 6점이 2007년에 거래됐다. 김환기의 ‘꽃과 항아리’(30억5000만 원), 앤디 워홀의 ‘자화상’(27억 원),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색구름’(25억2000만 원) 등이다. 

최근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낸 것은 퇴계 이황의 서화첩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으로 올해 9월 K옥션 경매에서 34억 원에 낙찰돼 기존 고미술품 최고 기록을 갈아 치웠다. 국내 최고가 미술품 가격 역대 3위다. 

상반기 국내 미술경매에서 거래된 작품의 규모는 김환기 작가가 가장 컸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김 작가의 작품은 총 24점이 출품돼 20점이 낙찰됐으며 낙찰총액은 38억 원에 달했다. 전체 거래 규모의 10%에 해당된다. 박수근 작가가 낙찰총액 30억 원, 이우환 작가가 23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협회 측은 “오랫동안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박수근 작품의 희소가치가 높아지며 거래 빈도가 낮아진 동안 김환기가 빈자리를 빠르게 채우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미술품으로 터뜨리는 잭팟
《“그런데 말이에요, 1년쯤 뒤에 이 사람이 다시 찾아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림을 하나 들고 왔어요.”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중》

후기 인상파 화가 고갱을 모델로 한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에는 고갱이 머물던 타히티 섬 사람들 중 일부가 곤궁하던 화가에게 소액을 꿔준 대가로 그림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차마 버리지 못해 다락에 처박아 뒀던 그림들은 고갱 사후 엄청난 가격에 팔려 나가게 된다. 소설 같은 일이지만,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결코 아니다. 현재 고갱이나 박수근의 작품을 구매하기란 많은 사람들에게 불가능하지만, 미래의 고갱이나 박수근을 미리 발견해 사둘 수만 있다면 그림으로 인생 역전을 하는 것도 허황된 꿈만은 아니다. 

평범한 미술 애호가들의 수집욕을 자극하는 미술경매사의 드라마틱한 사건들은 현재진행형이다. 가장 최근 한국 미술시장에 등장한 대박 스토리는 김환기의 ‘정원’이란 작품이다. 소장자는 올해 4월 열린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11억3000만 원에 팔았다. 1000배가 넘는 차익을 거둔 셈이다. 

손상기 작가는 미술품 투자의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힐 만큼 수익률 변화가 극적이다. 2010년 ‘누드화 8호’가 경매에 출품돼 2400만 원에 낙찰됐는데 같은 주제의 작품이 다음 해인 2011년 9500만 원에 낙찰됐다. 같은 작가, 같은 주제의 작품이 대개 비슷한 가격을 형성함을 감안하면 1년 만에 가격이 약 4배로 뛰었다고 볼 수 있다. 

해외에서는 피카소의 ‘누드, 초록 잎과 상반신’이 5000배가 넘는 대박 시세차익을 거둔 작품으로 화제가 됐다. 미술품 수집가인 소장자가 1950년 1만9800달러(약 2000만 원)에 산 이 그림은 오랫동안 창고에 보관돼 있다 2010년 1억640만 달러(약 1200억 원)에 팔렸다. 

하지만 이런 극적인 사례가 일어날 확률은 극히 낮다. 이 때문에 맹목적으로 블루칩 작가에 연연하기보다는 그림을 선택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최윤석 서울옥션 미술품경매팀 총괄은 “그림은 그냥 봤을 때, 알고 봤을 때, 집에 두고 봤을 때 감상의 격차가 엄청나다”며 “아직까지 한국의 수집가들은 ‘될 만한 그림’에 주로 관심을 갖다 보니 독자적인 기준으로 그림을 고르기보단 전문가들의 전망이나 분석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최대미술시장 떠오른 중국 바람, 국내 30, 40대 컬렉터로 확산▼


현대미술계의 떠오르는 별, 중국
《“이제는 파블로 피카소와 헤어질 때.” -아트프라이스》

세계 미술 분석기관인 아트프라이스는 위와 같은 간명한 표현으로 지난해 미술시장을 정리했다. 이유는? 중국 때문이다. 현대미술 시장의 흐름을 논할 때 중국이 가져오고 있는 지각변동을 빼놓을 수 없다. 1997∼2010년 매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된 작가 피카소였다. 하지만 지난해 피카소는 4위로 추락했다. 피카소의 자리를 차지한 건 중국의 고미술 작가 장다첸이었다. 한 해 동안 5억5000만 달러(약 5940억 원)어치가 거래됐다. 2위는 또 다른 중국 작가인 치바이스. 

3위가 앤디 워홀이었다. 거래가 가장 많았던 작가 10명 가운데 중국 작가가 6명에 달했다. 장샤오강의 ‘혈연: 대가족 1호’는 지난해 홍콩 경매에서 6562만 홍콩달러(약 95억 원)에 거래돼 아시아 현대미술 작품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중국의 미술시장 역시 덩달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미술의 중심지는 이미 런던과 뉴욕에서 홍콩, 베이징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추세다. 비약적으로 성장 중인 중국 경매업계는 세계 양대 경매회사인 소더비, 크리스티까지 위협하고 있다. 중국 예술품 시장 규모는 약 3600억 위안으로 미국을 제치고 점유율(38%) 1위를 차지했다. 아시아 미술경매의 90%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중국 미술시장의 급팽창은 정부의 미술시장 육성 정책, 미술관 및 박물관 건립 확충과 소장품 구입 확대, 국민소득 급상승에 따른 개인 및 기업의 미술품 투자 확대 때문이다. 서울옥션 등 국내 주요 미술경매 업체들도 세계의 컬렉터들이 몰려드는 중국 시장을 겨냥해 매년 두 차례 홍콩 경매를 진행 중이며 장샤오강, 쩡판즈, 천롄칭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중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출품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 미술시장의 성장으로 아시아 시장에 대한 세계 미술계의 관심이 커지는 것이 한국 미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옥션이 26일 여는 홍콩 경매에서는 이우환 작가의 ‘점으로부터’가 추정가 20억 원에 출품돼 해외 미술시장에서 최고가 판매 경신을 노리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작가의 해외 경매 최고가 기록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98만6500달러(약 22억4000만 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그림 ‘나무와 세 여인’이었다.

미술품 경매는 숨가쁘게 진행된다. 경매사의 진행에 맞춰 패들(paddle·응찰패)을 한 번씩 들어 올릴 때마다 호가는 계속해서 뛴다. 3월 열린 서올옥션 경매 현장. 서울옥션 제공


미술품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미술품 향유 계층은 소수의 상류층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재정적 여유가 있으면 컬렉터가 되기 유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반드시 상위 몇 %의 부자들만 컬렉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옥션이 2006∼2011년 낙찰가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500만 원 미만인 작품이 전체의 54%로 절반을 넘는다. 이 중에서 100만∼300만 원 미만 작품은 22%, 100만 원 미만 작품도 19%를 차지한다. 관심만 있다면, 명품 가방 한두 개 구입하는 정도의 투자로 얼마든지 컬렉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내 미술경매 업계에서는 “금융권, 전문직을 가진 젊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미술 경매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한다. 서울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고객에서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30.9%로 가장 컸다. 

초보 컬렉터들이나 상대적으로 금액 부담이 작은 작품을 선호하는 젊은 계층이 이용하기 용이한 미술경매 형태로 온라인 경매가 있다. 중저가 작품이 많은 데다 전시장을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작품에 대한 상세 정보를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인터넷이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서든 작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온라인 경매의 경우 100만 원 미만 작품이 전체의 53%를 차지한다.

화랑을 찾는 고객들도 해당 화랑의 연혁이나 소개하는 작가들의 특성 등에 따라서 연령층이 다양하다. 가나아트센터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가격대, 형태의 작품들이 출품되는 경매와 달리 오래된 갤러리들은 여전히 50대 고객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미술 애호층이 넓어지면서 구매 연령대가 30, 40대까지 다양해지는 추세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미술품 경매의 저변이 넓어지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통적인 미술품뿐 아니라 예술적 희소가치를 인정받는 다양한 물건들이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슈퍼카에서부터 인테리어 소품, 단독주택에 이르기까지 미술경매 출품작들은 갈수록 다채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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