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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비추는 북디자인] ⑨ 스기우라 고헤이

전가경

스기우라 고헤이(杉浦康平·작은 사진)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일본 오사카에서였다. 한국의 1세대 북디자이너인 정병규, 그리고 다른 일행과 함께 오사카 ddd갤러리에서 열린 ‘스기우라 고헤이:잡지 디자인 반세기전’을 관람하던 중이었다. 1932년생이라는 것을 잊게 할 만큼 정정한 그는 훤칠한 키에 도복에 가까운 복장을 하고선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그의 첫인상은 인자하고, 온화했다. 마치 세속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도인이 뿜어낼 법한 분위기였다. 외모 역시 그의 사상만큼이나 범상치 않았다.

스기우라는 본래 도쿄예술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건축학도였다. 하지만 1956년 일선미전이라는 공모전에서 LP 재킷 디자인을 통해 그랑프리 상을 받으면서 그래픽디자인으로 전향하게 된다. 현대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추상적인 그래픽을 적용시켜 현대적인 음반 재킷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60년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음악과 출판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을 진행시켜 나갔다. 그것은 상업적인 디자인과는 확실히 선을 긋는, 비상업적이고 문화적인 디자인이었다. 그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화두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스기우라 고헤이 디자인을 쓴 우스다 쇼지의 표현대로 스기우라는 “하늘이 준 아이”처럼 등장했다. 하지만 그것은 조용한 서막에 불과했다.

그에겐 인생에서 두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60년대 독일 울름 체류가 하나였고, 72년 인도 여행이 다른 하나였다. “독일 울름에 갔을 때 일본에 대해 눈을 떴다고나 할까, 자신의 존재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도 사람, 한국 사람, 인도네시아 사람, 그런 사람들을 통해 아시아에 대한 인식의 눈이 열렸다. 그들에게 근대화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스기우라는 당시 저명한 독일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오틀 아이허의 제안으로 모더니즘 디자인의 성지인 독일 울름조형대학에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그는 서양 디자인의 일방적인 수용이 아닌, 일본인이자 아시아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맞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인식의 전환은 서양에서 출발하고 발전한 ‘디자인’이란 개념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를 그는 단계적으로 풀어나갔다. 서양식 디자인에 대한 물음,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의 북디자인이 첫 단계였다.

독일에서 돌아온 후 그는 ‘표지는 얼굴’이라는 개념을 통해 잡지 디자인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책 표지는 내용을 시각적으로 요약하거나 압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뒤집어 표지에 책의 내용을 많이 반영했다. 이 때문에 스기우라가 디자인하는 표지는 활자들로 빼곡했다. 60년대 서양에서는 스위스 타이포그래피라고 하는 질서정연하고 깔끔한 디자인이 주류였다. 하지만 스기우라는 이런 서양적인 타이포그래피에 저항하듯, 정반대의 개념을 내세운 것이다. 잡지 ‘SD’ ‘도시주택’ ‘계간 긴카(사진 1)’ ‘파이데이아’ ‘에피스테메’ 등에서 스기우라는 사각형의 표지를 여러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활자 배열을 시도했다. 당시 서양적 시선에서 바라보면 이런 배열은 혼돈과 난잡함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 혼돈에서 스기우라의 ‘노이즈’ 사상이 피어나게 된다. 그것은 인류 삶과 문화의 다층적인 면면에 귀 기울이는 것이었고 인간 이성을 중심으로 한 서양 합리주의에 대한 반기였다. 그리고 72년 떠난 인도 여행.

“인도 사람은 모두 서예가인가. 나는 문득 글씨 쓰는 습관을 잃은 나 자신을 돌아보며 암담한 심정이 되었다. 활자 문화가 주위를 덮기 시작하면서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사회화된 문자 형태의 활자가 우리 주변에서 육체화한 말들을 모두 지워버린 것은 아닌지.”

서양과 달리 생명력이 넘치는 동양의 문자와 문화에 스기우라는 시선을 옮긴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집요하다고 할 만큼 문자와 아시아 도상학에 대해 연구하고 관련 자료들을 수집해 나갔다. 70년에 창간된 ‘계간 긴카’를 시작으로 호화본 작업들인 문자의 우주 문자의 축제(사진 2) 전진언원량계만다라(傳眞言院兩界曼茶羅) 등은 동아시아 시각문화를 집대성한 작품들이다.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거론되는 전우주지(1979·사진 3)라는 우주학에 관한 책에서 스기우라는 책이 지니는 3차원적 물성을 실험한다. 책 배를 훑으면 드러나는 도상부터 검은 종이 위에 인쇄된 금·은박으로 인쇄된 활자, 그리고 전 페이지에 걸쳐 드러나는 잡음적 패턴들. 이것은 스기우라가 평소 좋아한다는 인도 철학서 우파니샤드에서 인용한 “한 톨의 씨앗 속에도 우주가 있다”는 사상을 그대로 농축시킨 것이었다.

서양 디자인 개념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시작으로 동아시아 시각문화의 원류를 탐구해 나가는 그는 어쩌면 북디자이너라기보다는 인류학자이자 사상가에 더 가까울 것이다. 사상가들이 텍스트 층위에서만 자신들의 사유를 기록해 나갔다면 스기우라는 그 사유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북디자인을 통한 동아시아 사상의 실천이다. 현대화가 곧 서구화였던 동아시아의 문화 속에서 스기우라의 디자인은 끝없는 도전과 실험의 연속이었다. 우리의 원류를 찾는 것이 곧 도전이자 실험일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아시아의 운명. 스기우라 고헤이는 이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라, 아시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과제임을 보여주었다.


- 중앙선데이 2012.11.18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8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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