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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를 가다-역사는 100년 뒤, ‘우리시대’의 전통을 무어라 기록할까

정준모

오래된 미래를 가다 : 전시정보보기
-역사는 100년 뒤, ‘우리시대’의 전통을 무어라 기록할까  

글/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문화정책, 미술비평)

Ⅰ. 시작하면서 
  새삼 ‘전통’이란 단어와 ‘전승공예’라는 말을 떠올린 것은 조금은 생경하겠지만 올해는 “문화재를 보존, 활용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하고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문화재보호법’을 시행한 1962년으로부터 50년이 되는 때문이다. 이 법은 문화재를 유형·무형문화재·기념물 및 민속자료로 구분하고, 지정문화재는 국가지정·시·도지정문화재와 문화재자료로 구분하여 보존관리 하도록 하고 있다. 
  50년 전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문화재 보호법’을 제정 시행함으로서 유·무형의 문화재보존을 위한 기초를 마련했고 이를 근거로 1964년 12월 7일 처음으로 종묘제례악과 양주별산대 놀이, 남사당놀이와 함께 전통공예인 ‘갓일’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1945년 광복을 맞은 신생국가가 “문화재를 보존하여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함과 아울러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문화재관련 법안을 마련해 국가주도로 전통문화의 ‘보존과 관리’에 적극 나섰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1961년 국가개건최고회의에서 의결 통과된 이 법안은 오늘날 한국의 전통문화와 문화재를 보존 관리·유지하는 바탕이 되었다. 문화재 보호법의 제정은 일제가 만든 ‘조선고적천연기념물보호령’을 폐지하고, ‘문화재보호법’을 새로 제정하여 이를 대체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법안의 가장 큰 특징이자 성과는 유형문화재외에도 ‘무형문화재’를 ‘민족문화의 원형’을 보유한 문화예술의 한 형식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에 대한 보존과 관리를 위한 규정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무형문화재 제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선진적이며 진보적인 문화유산 정책이다. 유네스코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여타의 국가에 전통문화와 민속보호를 위한 권고안을 통해 이 제도를 참고할 것을 권 할 정도이다. 이 법에 의하면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즉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 정부로부터 매달 소정의 전승지원금을 받을 권리가 생기며, 전통문화를 재현해 보여주고, 또 후학들에게 가르쳐 전승시켜야하는 전수교육의무를 진다.
  우리 무형문화의 보존과 관리의 시작은 문화에 대한 폭 넓은 인식의 산물이다. 5.16 군사혁명을 주도했던 세력들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담보해내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제정된 법안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전통문화와 문화재의 처지를 보면 역시 과보다는 공이 크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제도가 일정부분 성과를 거둔 것도 분명함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 어느 누구보다 앞선 우리 무형문화에 대한 보존과 관리의 방법이 오늘에도 여전히 적정한 것인지 되 집어 볼 필요가 있다. 

Ⅱ. 전통 속 무형문화 또는 무형문화 속 전통

    가. 우리, 나에게 있어서의 전통의 의미
       문득 거울을 보다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내 몸 안의 부모님 유전인자 때문이다. 간혹 처음 보는 생소한 풍경이나 물건에서도 유난히 끌리거나 가까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이는 언젠가 나의, 우리의 몸과 생각 속에 들어 앉아있어 생기는 일이다. 이것이 전통이다. 
 하지만 이런 전통에 대한 인식은 가능하지만, 규정을 하기에는 무언가 모자란다. 대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의 뜻이나 의미를 헤아리기보다는 그냥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그 낱말의 뜻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당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아마도 우리말에 대한 일상성과 모국어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지만 한편으로 보면 우리의 언어사용이 그리 명확하지 않은 점과 늘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다보니 막연하게 잘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전통이란 것도 마찬가지이다. 평소에는 무심하다 문득 민족주의자나 국수주의자의 자세를 갖추며 정색을 하고 꺼내 쓰는 단어가 ‘전통’이다. 사실 우리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보존과 관리도 이런 측면에서 시작된 부분이 있다. 
 이런 일상화되고 패턴 화 된 단어 중 하나가 ‘전통’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사실 우리는 전통의 의미에 대해 곰곰 따져 보거나 그 철학적 의미나 분명한 뜻을 헤아려본 일은 없는 것 같다. 익숙하게 사용하다보니 막연하고 어렴풋하게 알고 있다고 착각해서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따지고 분명하게 규정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미루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전통이란 단어의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하여 내려오는 사상ㆍ관습ㆍ행동 따위의 양식”이라는 사전적 의미조차도 잊어버린 채 사용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혁신’이나 ‘개혁’이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변질된 요즘, ‘전통’이란 ‘극복해야 할 대상’이거나 ‘넘어서야 할 가치’라는 의미가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것 같다. 이는 물론 입으로는 ‘전통예찬’을 늘어놓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전통이란 단순하게 ‘지난시대’라고 하는 시간적 한정 때문에 일어난다. 하지만 그 지난시대의 기준 또는 준거가 어디서부터인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오늘도 내일이면 지난 시간이 될 것이므로 전통 특히 무형문화재의 연속성과 지속성에 방점을 두고 읽어야 한다. 

  나. 무형문화재의 의미
      유네스코는 2002년에서야 무형문화재에 대해 “문화는 한 사회 또는 사회적 집단에서 나타나는 예술, 문학, 생활양식, 더부살이, 가치관, 전통, 신념 등의 독특한 정신적, 물질적, 지적 특징”으로 정의하고 여기에 전통 대중문화의 형태로 언어, 문학, 음악, 춤, 놀이, 신화, 의식, 관습, 공예와 건축, 기타 예능의 기술 등을 무형문화로 규정했다. 하지만 1960년대 초 제정된 우리 문화재 보호법이 이미 무형문화에 대한 보존과 관리를 규정한 것과 비교해 보면 당시 우리 정부의 문화에 대한 인식의 크기를 알 수 있다.
 봉건에서 근대로의 이행과 전환이 늦어지면서 겪은 일제강점과 광복 그리고 6.25 전쟁 등 은 우리에게 많은 희생과 노력을 요구했고 우리는 뒤늦게 근대화의 대열에 뛰어들었지만  모든 면에서 후발주자는 아니었다. 적어도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우리의 정책과 태도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의 배경에는 군사혁명을 일으킨 군부세력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국민경제의 획기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정책을 펴는데 필요한 개념이기도 했다.  
 새로운 조국건설을 위해서는 경제개발을,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위해 국가의 전 자원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국민을 경제개발이라는 체제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국민일반의 의식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이념이나 가치가 필요했다. ‘단일민족’, ‘한민족’이라는 말과 ‘민족동질성’은 국민들의 일치단결을 위한 수단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그 동질성을 서로 확인해 줄 수 있는 것은 문화 특히 일상을 공유하는 연희나 수공예 등등의 풍속이나 풍습 류의 무형문화재라고 판단했다. 무형문화유산은 그 민족의 유전인자나 혈액형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한 셈이다. 


Ⅲ. 무형문화정책, 50년의 공과  
   
  가. 전통, 오늘로의 귀환 
     처음 문화재 보호법을 제정할 당시 지녔던 전통에 대한 생각은 매우 단순하고 외형적인 전통은 지켜져야 하고, 보존되어야 할 가치지만 그 이상의 가치에 대해서는 인식을 하지 못한 채였다. 결국 적극적인 육성 보다는 소극적인 보호에 치우쳤고 때로는 ‘보호’와 ‘관리’가 통제의 수단이 되어 역효과를 낳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재 보호법의 테두리 안에서 무형문화재는 나름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존립하고 생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광복 후 급작스럽게 봉건시대에서 근대로 전환하면서 전통문화는 전근대적인 것이라는 인식과 태도로 인해 새로운 근대교육체계로 조차 편입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는 전통기예의 계승 발전의 기회를 박탈당했음을 의미한다. 또 자체의 보수적인 태도로 인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존립기반조차 흔들렸다. 
 이런 전통 즉 무형문화를 국가가 보존하고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그 과정에서 일정부분 무형문화재는 정통성을 부여받았고 권위를 인정받았다. 기능보유자들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 또는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국가의 개입 때문이다. 또 관주도의 지원에 의한 것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 명맥을 유지하는 데는 성과가 컸다. 
세상은 많은 변화를 거치면서 문화재보호법이 처음 시행되었던 50여 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지난 50년의 한국의 변화는 세계가 지난 200년 동안 겪었던 변화의 ‘양과 질’보다 최소한 같거나 크다. 따라서 짧은 시간에 비해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다. 이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의 무형문화유산이 버티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문화재보호법이 규정한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보존과 관리의 결과이다. 현재는 전통공예분야만 살펴보면 총 49종목에 전승보유자가 64명에 이른다. 물론 총 49종목 중 41종목이 지속가능성에서 부적합한, 지원이 없으면 명맥을 유지하지 힘든 종목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성과는 어느 나라, 누구보다 앞서 우리의 무형문화에 대한 보존과 관리의 방법을 도입한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960년대의 정책과 방법이 오늘날에도 적정한 지되 집어 볼 필요가 있다. 그간의 성과에 대해 만족한다면 이는 ‘자만’이다. 무형문화 유산은 실체가 없는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움직임을 따라잡을 만큼의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50년의 성과를 돌아보고 향후 50년의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해 준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나.  정지 또는 지속과 변화
       우리의 발 빠른 무형문화 보존정책에도 불구하고 놓치고 있었던 것은 전통이란 개념의 철학적 정의였다. 우리의 무형문화재 정책은 보존중심이었다. 하나 ‘전통’이란 박제되고 정지된 것이 아니다. 문화란, 흐르고 넘치며, 번지고 스며드는 속성을 지녔다. 
 어느 날 한강물을 보존한다고 한강에 언 얼음을 잘라내 냉동고에 보존한다면 이는 더 이상 한강물이 아니라 한강의 얼음일 뿐이다. 따라서 전통을 ‘흐르는 물’의 어느 ‘한 순간의 부분’인 얼음의 형태로 정지시켜 보존하려는 정책은 옳지 않다. 
 전통이란 말에는 ‘지속’과 ‘변화’가 모두 포함되어있다. 하나 우리 문화재보호법에서는 지속성에만 유의미하게 접근 했을 뿐 변화성은 놓치는 오류를 포함한 채 출발했다. 이는 무형문화의 가변성과 복합성 그리고 다양성이라는 기본개념을 무시한 것이다. 사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는 일은 인류학이라는 X축과 역사학이라는 Y축이 만나 새로운 문화로 변화 또는 이동해 나가야 하는 작업이다.
 즉 정지된 단지 고루한 규범이나 제약으로서의 문화가 아니라 오늘을 가능하게 한 지난 시간의 축적이자 지혜의 집적이며, 그것을 다루고 경험해 온 시간의 침전물로서의 문화여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무형문화의 가치이다. 특히 일상사와 미시사가 역사학의 중심개념이 되는 시대에 무형의 문화는 정지된 시간이 아니라 움직이는 시간이다. 따라서 무형문화를 시간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인식하고 다루어야 한다. 즉 전통이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보아야 한다. 전통은 움직임이 눈에 잘 띄는 시계의 초침이아니라, 쉬지 않고 움직이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시침과 같다. 느리게 흐를수록 강물은 깊다는 사실을 새삼 떠 올려야 한다.   
 우리 무형문화재 정책의 성공과 실패의 이면에는 민속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 부족도 한 몫 했다. 즉 좁은 의미의 무형문화는 통시성과 공시성을 기반으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무형문화재 정책은 통시성보다는 공시성에만 중점을 두었다. 
 여기에 분명한 이유와 근거 없이 어떤 특정시점을 기준으로 무형문화재의 내용과 형식을 지정과 보존관리를 위해 선택했다. 이는 컵에 담긴 강물을 흐르는 강물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무형문화는 정지된 것이 아니다. 시대와 만나 새롭게 진화하는 것이다. 동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무형문화란 존재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정책이 보존과 관리에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체 또는 정지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우리는 무형문화유산이 지나온 1960년대, 70년 대 한국사회의 급변하는 문화적, 풍속적, 생활사의 변화를 무형문화는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무형문화는 봉건과 근대 또는 전통과 탈근대 사이에 놓인 20세기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우리의 무형문화에 대한 정책을 전면재검토 해야 한다. ‘문화재 정책’은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필요하며 가능하묘 가능해야 한다.  
 
다. 칼 하나로 두 가지 요리 
    무형문화재가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유형문화재는 ‘무생물’이다. 유형문화재는 형태를 가지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반면에 무형문화재는 실재는 있지만 실체는 없는 특징을 지닌다. 또 같은 종목의 연회나 공예기술이라 하더라도 지역과 풍습, 환경,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르다. 따라서 이러한 무형문화재의 특성과 습성에 맞는 정책수단과 집행이 필요하다. 특히 그것의 문화적 속성과 문화를 배태하고 성장시킨 생태환경을 고려한 보존과 관리방안이 필요하다. 
  사실 그간 무형문화재 정책은 기반과 형식이 모두 유형문화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화재보호법에 의거 모든 종목의 무형문화재를 같은 방법으로 관리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물론 이런 정책의 집행방식은 관리와 보존의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는 분명하게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시정되어야 한다.   그럼 점에서 지금까지의 무형문화재 정책은 행정 편의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문화재보호법의 기본 원칙인 ‘원형보존’은 유형문화재의 보존, 복원기술과 매장문화재 발굴기술 등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 왔지만 유형문화재 중심의 정책과 제도 운영은 무형문화재의 입장에서는 시대변화에의 적응실패, 창의성 결핍과 대중화, 일반화의 실패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시장에서의 실패와 퇴출로 이어졌다. 
 실은 이러한 문제점은 이미 문화재보호법에서 시작되었다. 문화재 보호법 제 1조는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만 제3조 문화재보호의 기본원칙에서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은 원형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함으로서 이미 무형문화재의 특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1조의 목적을 3조의 원칙에서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유형문화재의 보존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수단이다. 하지만 무형문화재는 다르다. 보존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실체가 불분명한 ‘현상’이자 가시적이라기보다는 불가시적인 것이며, 계량화, 도식화, 정량화, 수치화가 불가능한 말 그대로 무형인 때문이다. 
  사실 무형문화재의 원형을 규정한다는 것은 실제로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원형을 보존한다고 할 때 원형의 정의와 무형문화재 지정기준도 모호하다. 현재 대개의 무형문화재가 조선시대 후기 또는 일제 강점기였던 1930년대가 기준인 것처럼 짐작된다.  실체가 없는 현상으로서의 무형문화재와 결과물로서의 연회나 공예품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무형문화재는 그런 점에서 과정의 예술이지 결과물로서의 예술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의 무형문화재의 계승과 활용 그리고 보존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빗나간 정책’의 산물이거나 ‘문화재 정책의 사각지대’에 다름 아니다. 과정으로서의 무형문화재의 현장이 고려되지 않은 때문이다. 특히 무형문화재의 지역적 특성과 전승기능 보유자 개개인의 편차 등을 고려해서 각각 개별 종목의 특성과 전승현황과 환경에 맞는 관리, 지원정책이어야 한다.

라. 지원, 적응과 변화를 유도해야 
 우리 무형문화재 정책의 가장 큰 실책은 무형문화의 범위가 너무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되면 국가가 일정한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한정된 재정 때문에 많은 분야의 다양한 형식들을 모두 지정하면 그 재정적 부담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주도의 무형문화재의 보존과 관리가 주는 더 큰 문제는 무형문화의 종 다양성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즉 국가가 지정하지 않은 많은 다양한 무형문화유산들은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국가의 공인을 받은 것과 받지 못한 것의 차이는 문화라는 형식 안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사회적으로는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 결국 일반국민들은 지정받은 것은 원형이고, 순종이며 나머지는 잡종으로 인식되면서 사라지고 만다. 지정받지 못한 것은 ‘나머지’에 속하면서 존재가치를 잃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분명한 가치를 인정받을 도자기가 현재 별 가치가 없다고 평가되어 소홀하게 관리·보존되면서 훼손되어 없어지는 것과 같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시대와 사회적응력의 문제이다.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즉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 국가나 지방정부는 매달 일정금액의 전승지원금을 지급한다. 물론 전통기술이나 기능을 유지하기위한 방편이라는 점에서 이해를 못한 것은 아니지만. 적은 지원금이라도 인간문화재들에게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대승적인 측면에서는 해가 된다. 차라리 지원금보다는 작품의 판매량에 비례해서 장려금을 지급하는 제도가 더욱 효율적이지 않을까.  

마. 사람이냐, 문화냐  
 전통이란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다. 어떤 경우는 새로운 시대와 환경, 조건 등등과 결합해서 또 다른 형식으로 변모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변화와 변모를 가로막는 ‘전통을 고수하는 형식’의 보존은 무형문화재의 진화를 막는 조치이다. 진화를 제한하면서 생활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원금으로 전통을 고수하려는 것은 국가의 또 다른 폭력이다. 결국 이러한 지원방법이 계속된다면 결국 퇴보하고 종래는 ‘공룡’처럼 적응하지 못해 멸종하고 말지 도 모를 일이다. 지원과 함께 적응과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게다가 보유자들의 뒤를 이을 사람들을 찾는 것도 어려워졌다. 인간문화재가 되면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야 하는 격이라 젊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설혹 그 종목을 배운다 하더라도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현대화를 하는 것이 제한되는 때문에 지원금이라도 받는 인간문화재가 되기 전에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대개 무형문화재는 아버지로부터 대물림 된다. 가업을 잇겠다는 열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실력을 갖추지 못했었어도 자식이라는 이유로 대물림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기계와 도구와 싸울 것이 아니라 기계와 도구를 다루는 방향으로의 전환도 필요하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다. 도구를 만들기 위해 도구를 쓰는 행위는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전통을 보존한다는 이유로 새로운 도구와 전통의 만남을 부정해 왔다. 시대에 뒤떨어 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따라서 무형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를 위해서는 보존보다는 계승이라는 전향적인 입장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기능을 가진 사람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소비할 주체도 중요하다. 사실 그간의 무형문화정책은 소비자 즉 관객이 없는 공연을 해 온 셈이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하는 사람도 신명이 날 리 없다. 따라서 전통문화 특히 무형문화가 오늘이라는 현재와 접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대와의 조우와 상호통섭이 필요하다. 
 시대가 지나 효용가치가 소멸한 종목의 경우 그 결과나 성과물을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보내 영구 소장하고 전시하는 방식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현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전시하는 유물들도 실은 지금 또는 지난 날, 지지난 날과 시대의 무형문화의 성과물과 결과물을 수집해 놓은 것 아닌가 말이다. 
 사라져 가는 것을 사라져 가도록 하는 것도 문화다. 그것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것도 문화지만 말이다. 요즘 50여년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우리 무형문화재의 현실을 돌아보면 참담하다. 
 사실 공예분야의 전통기술이 사라지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을 보고 평가할, 전통기능과 기예를 알아보고 다음 기능보유자를 지정하는 일을 할 준거를 갖춘 학자나 전문가는 더욱 귀하다. 무형문화재의 진가를 알아보고 지정할 전문 인력은 현재 전무는 아니더라도 절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현행지원의 범위에 우리의 무형문화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책도 아울러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제 기능보유자라는 사람이나 유물 즉 유형의 것에 집착하는 무형문화정책보다는 무형의 것을 무형으로 대하는 태도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Ⅳ. 결론에 대신해서 
  사실 전통이란, 말 그대로 오래된 것은 아니다. 전통이란 개념은 근대의 산물이다. 근대가 자기전개상 필요에 의해 만든 담론이다. 근대화로 인해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와 민속 등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이 제 3세계를 침탈하면서 민속이라는 이름의 신기한 볼거리로 자국으로 가져가고, 후진국의 새로운 문화와 사람까지 데려다 이것을 풍물로 전락시켜 돈을 받고 보여주면서 생겨난 근대의 산물이다. 
 이후 전통의 보존은 지식인의 책임이자 동시대인들의 의무가 되면서 또 다른 하나의 권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전통과 문화재를 방패삼아 자신들의 영역을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도 이런 근대의 산물인 전통과 관련이 깊다.  물론 이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계승, 발전해 온 독창적이고 고유한 우리 문화에 대한 긍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일제강점으로 인한 역사적 문화적 자존심의 손상과 민족문화유산이 일제강점기 훼손, 반출되었다는 피해의식 그리고 이후 6·25전쟁으로 인한 전통문화 파괴 및 훼손에 대한 트라우마, 1960년대 이후 근대화, 산업화과정에서 많은 문화유산과 전통적 가치의 무시, 파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전통문화의 가치가 근대화를 위한 국민통합의 도구로 인식되면서 국가주도의 전통문화에 대한 정책은 ‘전통’을 민족적 또는 국가적 이념으로까지 그리고 전통문화에 대한 담론은 신화에 가까운 상찬일색으로 치달았다. 이런 상황은 전통에 대한 담론의 생산을 막았을 뿐 아니라 전통문화를 박제화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런 우리의 전통에 관한 태도를 전제로 그간의 우리 무형문화재 정책을 살펴보면  유네스코가 긍정적으로 평가할 정도로 성공적인 세계적으로 유래가 드문 문화유산 정책이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국가주도의 ‘원형보존주의’, ‘중점보호주의’로 일관하면서 일부 학자들과 전승공예가들의 경우 문화 권력으로 자리했다는 지적도 한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또 정부의 문화관련 정책의 금과욕조로 여기는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 우리의 문화재 정책에서는 소홀했다는 의견도 경청해야 할 부분이다. 특히 특정분야의 특정기예에 한정된 지정으로 인해 관련분야의 종 다양성을 해치고 있다는 의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통이란 리눅스처럼 시간을 가지고 사용자 모두가 쓰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을 보태 조금씩 고치고 개선해 나가는 개방구조를 지녔다. 따라서 전통은 누구 한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전통과 전통문화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는 구조도 전통문화와 무형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발전 아니 ‘계승변화’를 위해서 논의의 장을 개방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무형문화정책은 지난 50년간의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제도로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전통이란 불변의 가치라는 부동의 인식으로 인해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하기보다는 원형의 보존이라는 원칙을 고수함으로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를 동일한 방법으로 보존관리하면서 무형문화유산을 과도하게 계량화, 범주화함으로서 특정한 틀에 예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 시대와 현실에 적응해서 함께 변화하여 동행하기 보다는 경제적인 지원을 통해 정체와 현실에 안주하도록 했다. 또 수요자중심의 정책보다는 공급자 중심의 유지차원에서 정책을 집행함으로서 전승공예분야 기능보유자 외에 어떤 우호세력의 육성과 수요도 창출해 내지 못한 한계를 노정했다. 
 따라서 전향적으로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롭게 정책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무형문화의 보존은 문화적 행위이자 하나의 수단이다. 수단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어떻게 살아 왔는가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스스로 묻고 답을 해야 한다. 한국의 전통과 전통공예도 예외는 아니다. 무형문화 특히 전통공예의 가능성은 어느 때 보다도 밝다. 
 이미 시침보다 초침이 우선되는 시대에 ‘물건’의 역할을 ‘제품’과 ‘상품’이 이미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에 식상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다시 ‘손 맛’을 그리워하고 ‘격’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전통공예의 미래를 밝게 해 준다. 여기에 대부분의 전통공예가 늘 자연에서 원료를 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환경·재생이란 시대적 화두와 맥을 같이한다. 게다가 4~50대 이상 되는 연배 사람들에게는 고루하고 진부한 아니면 모더니티를 상실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전통공예지만 우리사회의 중심인 젊은 세대들에게는 새로운 문화이자 신선한 경험이라는 점은 지금까지의 소외와 무관심을 극복할 수 있는 ‘손 맛’ 가득한 ‘친 환경적’인 ‘새로운 전통공예’에게는 절호의 재생기회이다. 
 올해로 ‘문화재 보호법’이 시행 된 지 50년이 된다. 우리의 전통공예가 오늘 이 전시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나마 유지되고 이어져 져 온 것은 이 법이 역할을 한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의 ‘원형보존’에 지나치게 방점을 두면서 전통을 ‘박제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전통은 ‘흐르는 물’과 같다. 상류의 물이 그대로 하류에 도달 할 수는 없다. 변화와 변신은 순리이다. 하지만 변화가 목적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지속가능한 전통공예”이며 수단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여기에 관계자들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쓰고 보며 만들고 의견을 내고 생각을 말하는 리눅스 같은 형식의 열린 의사소통이 또한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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