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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현대미술 이야기](5) 미니멀리즘

진중권

ㆍ회화도 조각도 아닌 ‘사물’을 지향, 거기서 작가는 죽은 존재

미멀리즘은 도처에 있다. 미술관에서 그것은 예술언어이며, 백화점에서 그것은 상품의 디자인이며, 거실에서 그것은 인테리어 원리다. 우리는 이미 미니멀리즘의 “심플한 디자인”에서 미적 매력을 느낀다. 물론 이런 식의 수용은 미니멀리즘이 애초에 설정한 목표와는 별 관계가 없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미니멀리즘은 현대인의 지각방식으로 자리 잡았지만, 처음 등장한 60년대에만 해도 그것은 예술가 그룹 밖의 대중으로부터 널리 외면당했다. 왜 그랬을까? 

■ 저자의 죽음 

‘비인격성’ 때문일 게다. 대중은 예술에서 서정을 기대한다. 폴록의 작품만 해도 ‘추상적’으로나마 거기서 작가 내면의 ‘표현’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에서 대중이 보는 것은 공장에서 기계로 뽑은 듯이 보이는 물건뿐이다. 작가의 개입이 배제된 익명성, 기하학적 형태의 반복성. ‘모듈’로 진행하는 연쇄성은 대중에게 지루하고 단조로울 뿐이었다. 그린버그도 미니멀리즘은 “느껴지거나 발견된 것이 아니라 뭔가 연역된 것처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작가의 인격은 사라진다. 토니 스미스가 ‘죽다’(1962)를 제작할 때 한 일이라곤 ‘철판으로 커다란 주사위 모양의 조형물을 만들어 미술관 마당에 설치해 달라’고 전화로 철공소에 지시를 내린 것뿐이었다. ‘5월 25일의 대각선’(1963)을 위해 단 플라빈은 그저 시장에서 산 형광등을 전시장 벽에 비스듬히 걸어놓았을 뿐이다. 칼 안드레는 벽돌을 사다가 바닥에 깔아놓고, 전시가 끝나면 다시 해체해 트럭에 실어 날랐다. 때는 마침 롤랑 바르트가 ‘작가의 죽음’을 선언한 시기였다.

‘미니멀리즘’은 미국형 미술이다. 가령 구성의 포기는 폴록의 ‘올오버’(all over), 단순성의 효과는 뉴먼의 ‘전체성’, 공업용 재료의 사용은 워홀의 ‘오브제’를 연장한 것이다. 한 마디로, 전후 미국의 미술을 대표하는 액션페인팅, 색면추상, 팝아트의 세 갈래가 미니멀리즘에서 하나의 물줄기가 된 셈이다. 미니멀리즘은 통일된 강령을 가진 운동이 아니었다. 그저 ‘회화도, 조각도 아닌 사물을 지향한다’는 목표를 공유했을 뿐 참여한 작가들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존재했다. 

■ 독특한 대상 

먼저 미니멀리즘의 대표자 도널드 저드. 그는 환영주의를 추방하려는 모더니즘의 기획에서 출발했다. 이 점에서 그린버그의 강령을 충실히 따르나 그의 반(反)환영주의는 그린버그의 것보다 철저했다. 환영효과를 없애려면 대상성을 지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성, 즉 작품을 부분들의 관계로 짜는 것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전체로서 사물, 전체로서 그것의 특질. 그것이 흥미로운 것이다.” 

물론 반(反)관계주의만으로 환영주의를 없앨 수는 없다. 그림이 그림인 한 환영효과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폴록의 물감 자국은 제 주변에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낸다. 로스코의 모가 둥근 사각형은 “거의 전통적으로 환영주의적”이다. 라인하르트의 검은 캔버스는 “평면적이나, 그러면서도 무한히 깊다”. 미니멀리즘 이전에 이 집요한 환영효과를 쫓아내는 데에 유일하게 성공한 것은 스텔라가 아닐까? 그는 액자를 형태와 동일하게 잘라냄으로써(‘shaped canvas’) 공간감을 주는 배경 자체를 없애 버렸다. 

저드가 보기에 ‘환영의 공간’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작품이 아예 ‘실제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3차원은 실제의 공간이다. 실제의 공간은 평면에 발라진 물감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독특할(specific) 수 있다.” 왜? 그것은 “환영주의와 가상적 공간의 문제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그 문제야말로 유럽 미술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반대해야 할 유물이다.” 미니멀리즘에서 작품은 실제의 공간으로 들어가 거기서 ‘사물’이 된다. 이 ‘사물’을 저드는 “특정한 객체”(specific object)라 부른다. 

이는 회화가 조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조각 역시 환영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환영을 없애려면 작품은 “회화도 아니고 조각도 아닌” ‘사물’이 돼야 한다. 그리하여 액자나 받침대로 일상의 공간과 분리되지 말아야 한다. 과거에 우리는 물감에서 풍경을 보고, 돌덩이에서 인체를 보았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덩그마니 놓인 하나의 사물뿐이다. “네가 보는 것은 네가 보는 그것이다.” 이 순수한 ‘현전’(presence)이 미니멀리즘의 특성이다. 모더니즘의 ‘자기 지시성’은 여기서 극한에 도달한다. 

■ 현상학적 미니멀리즘 

로버트 모리스의 과제 역시 “조각을 재현에서 해방”시키는 데에 있었다. 그의 모범은 러시아 구축주의자들이었다. 특히 그는 타틀린의 카운터 릴리프를 미니멀리즘의 선구로 여겼다. 건축도 조각도 아니며, 아무것도 재현하거나 암시하지 않는 순수조형물이라는 점에서다. 조각에서 환영주의를 추방하는 모리스의 방법은 저드와 다르지 않다. 조각을 가상으로 만들어 현실과 분리시키는 것은 받침대(pedestal)다. 그것을 치움으로써 모리스는 작품과 관객을 등질의 공간 속에 집어넣는다. 

하지만 ‘사물’에 집착한 저드와 달리 로버트 모리스는 ‘지각’을 강조한다. 그가 설치한 L-자(字) 모양의 철제빔들은 정확히 같은 모양이나, 놓인 위치나 자세에 따라 모양이 사뭇 달라 보인다. 이성은 세 개의 빔이 같다고 말하나, 지각은 서로 다르다고 말한다. 이 중 세계가 주어지는 근원적 방식은 어느 것일까? 근원적인 것은 지각이다. 모리스의 미니멀리즘은 이 원초적 지각의 현전, 최초 지각의 직접성을 확보하려 한다. 이는 물론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모리스의 미니멀리즘은 ‘신체’의 움직임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상대적 크기를 지각할 때, 인간의 신체는 자신을 규모의 상수로 설정하게 된다.” 그리하여 객체가 너무 크면 우리는 뒤로 물러나고, 너무 작으면 앞으로 다가서게 된다. “객체와 주체 사이의 이 거리가 더 확장된 상황을 만들어낸다.” 왜? “여기에는 신체적(physical)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몸을 움직여 “객체를 다양한 위치, 변화하는 조명의 조건 및 공간적 맥락에서 감상할 때, 사람들은 저 자신이 직접 (작품과) 관계를 설정하고 있음을 전보다 더 잘 의식하게 된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저 물건들에서 체험할 게 얼마나 되겠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모리스에 따르면, 객체가 단순할수록 체험은 외려 복잡해진다. “형태의 단순함을 경험의 단순함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단일한 형태는 (작품에 대한 관객의) 관계들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다. 외려 그것들을 요구한다.” 

■ 유물론적 미니멀리즘 

저드가 반(反)관계주의적이고, 모리스가 현상학적이라면, 칼 안드레는 유물론적이다. 아마 조각을 수평으로 만든 것은 그가 사상 처음일 것이다. 초기에 그는 나무를, 다음에는 벽돌을, 그 다음에는 정방형의 금속판을 바닥에 깔았다. 작품과 관객을 등질의 공간에 넣는 전략은 여기서 도달한다. 안드레는 작품을 밟고 지나가게 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금속이 가진 물성, 그것의 촉감과 무게를 직접 느끼게 만들었다. 물리적 속성에서 비롯되는 감각의 현전을 강조했던 것이다. 

안드레는 제 작품을 “무신론적, 유물론적, 공산주의적”이라 불렀다. ‘무신론적’이라 함은 작품에 초월적 의미가 결여되어 있음을 가리키고, ‘유물론적’이라 함은 그의 작품이 재료의 물성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의미하고, ‘공산주의적’이라 함은 그의 작품을 이루는 목재·벽돌·금속판과 같은 요소들이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똑같은 자격을 갖는다는 뜻이리라. 그는 누구나 살 수 있는 재료로, 누구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배열된 자신의 작품이 ‘평등주의’를 구현한다고 믿었다. 

유물론적인 안드레와 달리, 솔 르위트는 탈물질적 예술관을 구현하려 했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은 아이디어 혹은 콘셉트다.” “아이디어는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기계다.” 이는 특히 그의 ‘월 드로잉’(wall drawing)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작품의 콘셉트만 제공하고, 거기에 맞춰 벽에 드로잉을 하는 작업은 고용된 직공들의 손에 맡겼다. 이로써 작가의 인격은 사라지고, 작품은 불현듯 공공미술에 가까워진다. 여기서 미니멀리즘은 서서히 개념예술로 전화하기 시작한다. 

한편, 단 플라빈은 조각을 ‘형태’라기보다는 ‘공간’의 예술로 이해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색채의 형광(螢光)이 주위의 공간을 물들인다. 인상파 화가들이 물감을 가지고 했던 실험을 그는 형광등을 가지고 연출하는 셈이다. 플라빈은 공간을 물들이는 빛의 효과 속에서 ‘숭고함’을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바넷 뉴먼이나 마르크 로스코의 초월적 숭고와는 다른 세속적 숭고, 이른바 현대의 기술적 숭고를 본다. 플라빈은 이를 “현대의 기술적 물신”이라 불렀다. 

■ 미술과 사물성

미니멀리즘의 이 다양한 흐름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작가의 예술적 개입을 배제하고, 공장에서 제작된 기성의 재료를 사용한다. 그 결과 작품이 전체성·반복성·상사성과 같은 형식적 특성을 띤다. 또한 환영보다는 ‘객체’를, 형태보다는 ‘공간’을, 작가보다는 ‘관객’을 중시한다. ‘객체-공간-관객’의 삼각형이 미니멀리즘의 본질적 특징이다. 비평가 마이클 프리드가 미니멀리즘을 “연극적”이라 비난한 것은 그 때문이다. 저 삼각형은 사실 ‘배우-무대-관객’의 관계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애초에 미니멀리즘은 ‘매체의 순수성을 위해 관계주의와 환영주의를 제거해야 한다’는 그린버그 버전의 모더니즘 기획에서 출발했다. 회화에서 그 기획은 ‘평면성’(flatness)의 지향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은 평면의 작업이 아니라 공간의 사물이다. 그린버그가 생각하는 모더니즘의 지평을 이미 떠나 버린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린버그의 충실한 제자 프리드는 미니멀리즘이 “모더니즘 회화로부터 그저 동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대립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리터럴 아트(미니멀리즘)가 사물성을 지지하는 것은 연극의 새로운 장르를 요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연극이란 미술의 부정이다.” 프리드에 따르면, 미니멀리즘은 “작품을 대하는 실제의 상황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연극적이다”. 미술은 정지된 시간 속의 공간예술이나 미니멀리즘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관객과 작품의 관계를 극화한다. 이렇게 미술이 연극을 지향하는 것은 ‘회화는 회화로 돌아가야 한다’는 모더니즘의 계명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 미니멀리즘 이후 

미니멀리즘을 ‘환원주의적’으로 설명하는 것만큼 잘못된 생각도 없을 것이다. 미니멀리즘은 몬드리안의 작품처럼 사물의 근원에 도달하기 위해 형의 복잡성을 단순한 기하학으로 환원시킨 것이 아니다. 미니멀리즘은 ‘상징’이든 ‘도상’이든 ‘기호’가 아니라 그냥 ‘사물’이다. 몬드리안의 기하학이 깊다면, 미니멀리즘의 기하학은 얕다. 그것은 지성으로 본 깊이가 아니라 지각으로 느끼는 표면을 지향한다. 기하학과 현전성의 모순적 만남. 바로 여기에 미니멀리즘의 본질이 있다.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 부르는 60~70년대 미술의 다양한 흐름은 미니멀리즘의 특정 측면을 계승 혹은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발생했다. 가령 ‘퍼포먼스’는 미니멀리즘의 연극성을, ‘과정예술’(process art)은 그것의 시간성을, ‘신체예술’(body art)은 그것의 신체성을 각각 계승한 것이다. ‘설치’(installation), ‘대지예술’(land art), ‘장소특정예술’(site-specific art) 등은 사물을 특정한 장소에 집어넣어 맥락을 창조하는 미니멀리즘의 전략에 근원을 두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가장 큰 업적은 모더니즘의 협소한 감옥에서 미술을 해방시킨 데에 있지 않을까? 미니멀리즘 이후 미술의 영역은 비할 데 없이 넓어졌다. 오늘날 미술은 종종 미술이 아닌 다른 것처럼 보인다. 프리드는 이를 “취향의 타락”이라 비난했으나 오늘날 화가가 공연을 한다고 해도 놀랄 사람은 없으리라.


-경향신문 201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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