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30> 21세기의 첫 교통사고로 사망한 로봇이야기

최태만

1963년 독일 부퍼탈의 파르나스 화랑에서 '음악전람회-전자텔레비전'이란 이름으로 첫 비디오작품을 선보인 백남준은 TV에 대한 기술연구를 위해 일본으로 갔다. 13대의 TV와 3대의 피아노, 소음기 등으로 이루어진 이 전시에서 백남준은 관람객들이 자석을 옮길 때 화상이 변화하는 상호작용적 비디오아트 작업을 선보였다. 이 전시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백남준이 비디오에 대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을 때 그의 친형은 예술가가 굳이 기술을 배우기보다 기술자를 만나면 쉽게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형의 말대로 그는 소니의 엔지니어 아베 수야를 만났다. 아베와 의기투합한 백남준은 나중에 '백-아베신디사이저'를 만들어 같이 활동했다.


아베의 기술적 도움을 받은 백남준은 1964년, 알루미늄을 전기회로와 제어장치로 연결한 로봇을 만들어 이 괴상한 기계에게 '로봇 K-456'이란 이름을 붙였다.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456번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는 '로봇 K-456'을 1964년에 열린 제2회 뉴욕아방가르드페스티벌에서 공개했다. 페스티벌을 준비한 인물은 존 케이지의 영향을 받아 플럭서스에서 활동하던 샤로트 무어맨이란 여성 첼리스트였다. 백남준의 예술활동에서 또 한 명의 중요한 동반자였던 무어맨과 함께 그는 1967년 필라델피아미술대학과 뉴욕에서 음악에 섹스를 표현한 '오페라 섹스트로니크'란 공연을 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백남준이 발표한 '로봇 K-456'은 외양부터 우스꽝스러웠다. 머리에는 풍선을 달아 부풀렸고 전자제품에서 떼어 낸 스피커가 입을 대신하고 있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사지는 삐꺽거리며 흔들거렸고, 전자제어장치를 부착한 왼쪽다리는 원격조정으로 앞으로 나아가는가 하면 케네디대통령의 취임사를 들려주기도 했다. 심지어 이 로봇은 집어삼킨 콩을 관객들을 향해 배설하기도 했다.

사실 움직이는 조각은 많은 예술가를 사로잡은 열망이었다. 팅글리는 1960년 '뉴욕에 바치는 경의'란 자기파괴적 작품을 발표했다. 자동차 내연장치, 피아노줄, 풍선, 경적 등으로 조립된 이 기계장치는 뉴욕근대미술관 앞마당에서 장렬하게 폭발했고, 주변에 대기하던 소방관들에 의해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기계장치에 의해 작동하다 스스로 폭발한 '뉴욕에 바치는 경의'보다 훨씬 진화한 사이버네틱스 아트는 이미 1954년 헝가리 태생의 프랑스 예술가 니콜라스 쉐퍼에 의해 시도된 바 있다. 그가 1956년에 발표한 사이버네틱스 조각인 '시스프1'은 주변의 환경에 따라 스스로 작동하는 기계이기도 했다. 필립스사의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받아 제작한 인공두뇌 작품으로 시청각기능을 내장하고 있어서 소리와 빛, 색을 구별하고 그것에 반응했다. 그러나 '시스프1' 역시 제어장치의 결함으로 자신의 창조자인 작가를 향해 돌진하여 작가가 놀라 달아나는 헤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앞의 두 작품에 비해 '로봇 K-456'은 보다 인간화된 기계예술이었다. 걸어 다니고 말도 하며 심지어 관객들을 향해 콩을 배설하면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이 로봇은 탄생 순간부터 거의 20년간 백남준의 전시에 등장하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러나 '로봇 K-456'에게도 최후의 순간이 왔다. 백남준은 이 로봇이 살아있는 생명체란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1982년 뉴욕 휘트니미술관 앞에서 동료 예술가가 몰던 자동차로 깔아버리는 '21세기의 첫 번째 교통사고'란 해프닝을 펼쳤다.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로봇을 자동차 바퀴 밑으로 집어넣어 파괴하였던 것이다. 훗날 백남준은 사망한 'K-456'을 다시 제작해 현재 백남준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국민대 교수·미술평론가

-국제신문 2011.12.19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11219.22021200456#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