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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29> 머리로 그림 그린 백남준

최태만

존경하는 스승 향한 예술적인 저항


일본의 시라가 카즈오는 1954년부터 발로 그림을 그렸지만 백남준은 1961년 독일의 전위음악가 칼하인츠 스톡하우젠이 쾰른의 시어터 암 돔에서 개최한 '오리지날레' 음악 연극 페스티발에 참가해 머리로 그림을 그렸다. 그 전 해에 백남준은 쾰른의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스튜디오에서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라 이름 붙인 퍼포먼스를 하면서 두 대의 피아노를 해체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자신의 정신적 멘토인 존 케이지의 와이셔츠를 찢고 가위로 그의 넥타이를 자르다 못해 케이지의 머리 위에 샴푸를 붓는 엽기적인 돌출행동을 감행했다. 1957년 프라이부르그고등음악원에 다니던 백남준은 다름슈타트 국제현대음악 하기강습에 참가하면서 평생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미국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를 만났다.

1959년 뒤셀도르프의 갤러리22에서 두 대의 피아노와 테이프 레코더, 계란, 장난감 등을 동원한 백남준 최초의 퍼포먼스에 '존 케이지에게 바치는 경의'로 이름 붙였던 그가 불과 1년 뒤 피아노를 부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스승이나 다름없던 케이지에게 봉변을 가했던 것이다. 케이지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백남준이 벌인 이 돌발적인 퍼포먼스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도 경악하게 만들었다. 케이지의 머리에 샴푸를 쏟아 부은 백남준이 재빨리 스튜디오를 빠져나간 뒤 전화벨이 울렸다. 그것은 백남준의 퍼포먼스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아시아에서 온 20대 후반의 백남준이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케이지에게 '바친' 이 돌발적 퍼포먼스는 정신분석학적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넥타이는 남성 즉, 아버지의 상징이다. 따라서 케이지의 넥타이를 가위로 자르는 행위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시킨 크로노스의 행위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곧 법이자 권위의 상징인 아버지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한다. 아울러 샴푸는 자신으로 인해 흘린 피의 정화(淨化)를 상징한다. 평소 백남준은 자신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친 존재로 케이지를 들었지만 이 행위를 통해 케이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 일이 있은 후인 1961년 그는 다다정신을 계승하여 삶과 예술 통합을 지향했던 플럭서스(Fluxus)란 전위예술단체에 들어갔다. 그해 10월 백남준은 토마토즙을 잔뜩 담아놓은 큰 그릇에 머리를 푹 적셔 붉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로 바닥에 깔아놓은 종이 위에 긴 선을 그은 것이다. 백남준은 머리로 굵고 긴 선을 그은 이 작품에 '머리를 위한 선(禪)'이라 이름 붙였다. 1962년 비스바덴에서는 토마토즙 대신 먹물에 머리를 적셔 선을 그었다. 얼핏 보기에 선승이 수행의 한 방편으로 그어놓은 선처럼 보이지만 이 퍼포먼스를 선적(禪的) 행동으로 보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실제로 그가 존경하던 존 케이지는 자신에게 현대음악을 배우러온 지타 사라브하이란 인도 여성으로부터 인도 전통음악과 사상을 배웠으며, 미국에서 일본 선불교를 강의하던 스즈키 다이세츠에게 영향을 받아 선사상에 바탕을 둔 새로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옷을 찢고 넥타이를 자른 백남준이 이번엔 선을 내세운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일본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배운 백남준이 선에 대해 모를 리는 없었다. 훗날 그가 발표한 'TV붓다' 등을 보면 그가 선에 대해 상당한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서양 현대음악을 배우기 위해 독일로 갔던 그에게는 선사상에 심취한 케이지가 이상하게 비쳐졌을 것이다. 머리에 먹을 잔뜩 묻혀 바닥에 깔아놓은 종이 위에 선을 그은 그의 행위 또한 스승을 향한 저항의 행동은 아니었을까.

국민대 교수·미술평론가

-국제신문 2011.12.12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10&key=20111212.2202119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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