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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25> 추상표현주의를 출현시킨 미국 사회

최태만

불안한 시대가 가져온 장대한 규모


잭슨 폴록, 아쉴 고르키, 윌렘 드 쿠닝과 같은 행동회화를 추구하던 화가와 바넷 뉴먼이나 마크 로드코와 같은 색면 추상회화를 추구한 화가를 통칭하여 '미국 추상표현주의'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규모의 장대함이다.

정력적이며 거칠고 대담하여 서부의 카우보이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마초적 성향이 강한 잭슨 폴록에 비해 바넷 뉴먼과 마크 로드코는 명상적이고 관조적인 특징이 두드러진다. 성격에서나 작품에서 대조적인 이들을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대부분 대공황기에 청년시절을 보내야만 했으며, 연방예술프로젝트(FAP)와 같은 연방 정부의 예술가 생계지원 사업을 통해 함께 작업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유럽의 많은 전위 예술가들이 전쟁을 피해 뉴욕으로 몰려들었는데, 그들 중 초현실주의자들은 이들 청년세대들에게 개념보다 직관을 중시하도록 자극했고 신화, 무의식, 상상력에 대한 영감을 제공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인 1940년대 후반 초현실주의자들이 유럽으로 돌아갈 즈음 미국의 젊은 미술가들은 그들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들만의 고유한 표현을 찾아 추상회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미국 맨해튼의 그리니치빌리지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은 클로포드 스틸과 마크 로드코 등이 주축이 돼 결성한 '미술가들의 주제'란 토론모임을 발전시킨 '예술가클럽'에서 매주 만나 토론을 벌인 후 맨해튼 10번가에 있던 시더 태번이란 술집으로 몰려갔다.

이 술집이야말로 19세기 말 인상주의자들의 집결지였던 파리의 카페 게르부아처럼 뉴욕 문화계의 사교중심지였다. 그러나 이 시기는 전후 냉전체제의 구축과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소련의 원자탄 개발, 한국전쟁 등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때보다 팽배했다. 미국을 휩쓴 맥카시즘의 광풍 아래 미국의 추상 예술가들이 현대미술을 공산주의의 도구로 간주한 보수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이러한 불안한 시대를 헤쳐 나갔던 마크 로드코는 영적 감흥이 물씬 풍기는 색채 공간으로부터 발산되는 고고한 빛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울려 퍼지는 비극적 서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의 색면추상은 자연의 장엄함에 대한 외경뿐만 아니라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가져온 엄청난 폭발이 불러일으킨 거대한 위협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도 있다.

뉴욕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오렌지색위의 마젠타, 검은색, 녹색'은 제목처럼 오렌지색 바탕 위에 검은 색면이 화면을 대부분 차지하고 그 사이에 수평으로 녹색, 흰색, 보라색의 띠처럼 보이는 색면이 가로지르는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나 보기에 따라 초원 위로 떠오르는 여명이나 박모(薄暮) 또는 바다나 사막과 같은 거대한 자연에 나타나는 빛의 조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어쩌면 원자탄의 폭발이 만들어낸 강렬한 빛과 거대한 먹구름이 대지를 엄습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광대한 자연 앞에서 느끼는 공포에 의해 고양된 숭고미와 함께 로드코의 내면으로 잦아드는 비극의 울림을 색채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추상회화가 그린버그처럼 한때 좌파지식인이었으나 전후 형식주의 평론가로 전향한 지식인들의 지지와 냉전체제에서 소련의 사회주의리얼리즘에 맞서 미국은 예술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미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현대미술의 주류로 성장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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