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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무명작가부터 피카소까지…그림 값 어떻게 결정되나

편집부

동서양화 모두 22.1×15.8㎝ 1호 가격에 호수를 곱해 산정
국내작가 중 박수근 인기작품이 10호당 16억으로 최고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파리는 세계의 수도였다. 적어도 예술에서만은 그랬다.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방세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예술가들이 하나 둘 이 언덕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몽마르트르는 예술의 수도가 됐다. 가난했던 예술가들은 서로 의지하고 때로는 반목하면서 힘든 시절을 보냈다.

19세기가 끝나갈 무렵 키 작은 스페인 출신 화가 한 명이 파리에 온다. `파블로 디에고 도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로 후안…`으로 시작하는 무려 열아홉 번이나 띄어쓰기를 해야 할 만큼 긴 이름을 가진 열아홉 살 청년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에서 맨 첫 단어와 마지막 단어만을 뽑아 `파블로 피카소`라고 불렀다. 파리에 온 피카소는 다른 스페인 출신 화가들 작업실과 방을 전전하면서 살았다. 훗날 그림으로 엄청난 부를 쌓아 올렸던 피카소도 이 시절 비참한 가난에 허덕였다.

어느 날 한 화상이 피카소를 찾아왔다. 그는 피카소에게 그림을 700프랑에 사고 싶다고 말했다. 너무나 싼값을 부르자 피카소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저녁 피카소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고집을 부린 걸 후회한다. 다음날 피카소는 자기 발로 장사꾼을 찾아간다. 그러나 장사꾼은 700프랑이 아닌 500프랑에 사겠다고 다시 값을 깎는다. 화가 난 피카소는 상점을 나왔다.

하지만 그 다음날 배가 고팠던 피카소는 도저히 방법이 없어 상점을 찾아갔다. 그 사이 그림값은 300프랑으로 내려가 있었다. 결국 피카소는 눈물을 머금고 300프랑에 그림을 팔았다. 하지만 피카소는 얼마 후 이름 있는 화가가 됐고 그림 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리고 그가 사망하고 꽤 긴 세월이 흐른 2010년, 작품 `누드, 녹색잎과 상반신(Nude, Green Leaves and Bust)`이 뉴욕 경매시장에서 1억650만달러(약 1190억원)에 낙찰되는 기록을 세운다.

피카소의 일화는 그림값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누구도 그 그림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때의 가격과 모든 사람이 그 화가 그림을 소장하고 싶어할 때의 가격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더구나 해당 작가가 사망해서 더 이상 그의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없게 되면 그 가치는 배가된다.

◆ 그림값을 결정하는 요인


그림값이 작가별로 편차가 큰 근본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인들이 모두 알고 소장하고 싶어하는 작가는 극소수인 반면에 그렇지 않은 작가는 상대적으로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림값도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수요ㆍ공급 원칙을 적용받는다. 하지만 세분화하면 그림값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수하게 많다.

우선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작가 유명세는 그림값에 결정적인 요인이다. 전 세계인 중에 피카소나 고흐를 모르는 사람은 없고, 한국인 중에 이중섭이나 박수근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거의 모든 대중이 그들 그림을 소유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값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의미 없을 정도다.

그 다음으로 그림 소재나 질도 영향을 미친다. 같은 작가가 비슷한 시기에 그린 작품임에도 가격 차이가 나는 건 이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같은 작가가 그린 그림이라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그림이 있다는 의미다.

경매회사 아트컴퍼니 김순응 대표는 책 `돈이 되는 미술`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중이 선호하는 그림 특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초상화는 젊은 여인을 그린 것이 가격이 비싸다.

아름다운 젊은 여인 그림이 그렇지 않은 그림보다 비싼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또한 같은 누드화라 하더라도 외설적인 흐트러진 자세보다는 정갈한 자세가 비싸고, 세로 그림보다는 가로 그림이 비싸다. 거실벽에 걸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은 얇게 칠한 그림보다는 두껍게 칠한 그림을 좋아하고, 어두운 그림보다는 밝은 그림이 잘 팔린다. 이런 요소들 외에도 보존 상태와 희소가치가 그림 가격을 좌우함은 물론 작품에 담긴 사연이나 유행 등도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그 밖에 기대 수익 같은 투기적 요소들도 가격 상승에 일조한다.

보통 그림은 `호(號)`라는 단위로 거래되는데, 이 단위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에 의해 도입돼 국제적 관례로 자리 잡은 일종의 그림 도량형이다. 1호는 인물화를 기준으로 22.7×15.8㎝다. 사람들은 보통 1호가 엽서크기라고 말하는데, 실제로는 엽서 크기(14.8×10㎝) 두 배에 가깝다. 재미있는 건 2호는 1호의 2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2호는 25.8×17.9㎝니 1호보다 조금 클 뿐이다.

보통 그림값은 호수에 호당 가격을 곱한다. 호당 40만원 정도를 받는 작가가 10호짜리 그림을 그렸다면 400만원인 셈이다. 일부 미술전문가들은 이런 호당 가격 제도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비판을 하기도 한다.

◆ 그림은 어떻게 거래되는가

화랑이나 경매를 통해 거래할 수 있는 작가들은 이름이 알려진 소수 작가들이다.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은 이해관계를 가진 지인들에게 판매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름이 알려지면 화랑이나 아트페어 등을 통해 미술품이 거래된다.

이렇게 작가 손을 떠난 작품은 2차 시장에서 거래된다. 컬렉터에서 컬렉터로 거래되는 2차 시장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매다. 1차 시장에서 첫 거래가 이루어질 때는 화랑 등 소비자가 작가와 협의해 가격을 결정한다. 2차 시장에서는 여러 소비자 앞에서 적정 가격이 새롭게 결정된다. 1차 시장보다 높아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미술품은 적정 가격이라는 것이 정해지기 힘들다. `몇 년차 작가가 그린 몇 호짜리 그림은 얼마`라는 가정 역시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가격은 작가 자신이 정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안 팔리더라도 내 그림값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높이 책정하는 화가가 있는가 하면 다소 낮은 가격에 내놓아 대중이 쉽게 접하게하는 작가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가와 실제 팔리는 가격에 상당한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거론하자면 대학생 미술전에 출품하는 유망한 학생들 작품 가격이 호당 2만~5만원 정도다. 어느 정도 지명도를 얻은 젊은 작가는 호당 10만~20만원 정도 된다. 물론 쉰이 넘은 중견작가 중에도 이보다 낮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대중 선호도 같은 수많은 가격결정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미술시장에서도 `좋은 그림이 더 비싸다`는 등식이 꼭 성립하지는 않는다.

그럼 블루칩 작가들 그림 가격은 얼마나 할까. 얼마 전 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한국 미술시장에 가격체계(KAMPㆍKorea Art Market Price)를 구축하고 미술품 가격지수인 KAMP50 지수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미술ㆍ금융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개발팀이 1998년부터 올해 6월까지 국내 경매에서 거래된 미술품 낙찰 순위와 총 거래금액 순위 등을 바탕으로 52명 대표 작품 10호당 평균가격을 산출했다.

이에 따르면 AAA등급 작품 10호당 평균가격이 가장 높은 작가는 박수근으로 16억1600만원이며 이중섭이 그 다음인 13억5900만원을 기록했다. 천경자 AAA등급 작품은 10호당 평균가격이 4억5000만원이었고, 김환기 3억4255만원, 장욱진 3억3700만원, 이우환 1억8900만원 순으로 뒤를 이었다.

그림을 상품이라고 가정한다면 가장 복잡한 가격구조를 가진 상품이다. 무게나 크기, 재료만으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예술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품 시장은 오묘하면서도 매력적이다.

-매일경제 2011.11.12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73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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