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24>술,도박,주먹의 화가 카라바조

김형진

낮에는 붓, 밤에는 칼...살인 저지르면서도 종교그림에 매진


폭력배이면서 도박꾼이고 살인자이자 탈옥수이면서 또 뛰어난 작가인 카라바조는 400년쯤 전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화가다. 당시 우리나라도 참혹한 임진왜란 때의 어려운 시기였지만 이탈리아의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유럽에서 14세기부터 시작된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희생시키고도 여전히 여기저기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빈번한 역병과 기근으로 고생하던 때였으니 사람들의 생활은 고달팠을 것이다.

그런데다가 카라바조는 불행히도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정상적인 교육이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거친 인생에 내몰려 험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는 분명히 그림에 재능이 있었지만 그가 살던 동네의 주민들은 그를 화가로 생각하기보다는 폭력배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걸핏하면 아무에게나 싸움을 걸었는데 아마도 타고난 싸움꾼이었는지 꽤 잘 싸운 듯하다. 그는 동네 주민들을 두들겨 패다가 심지어 말리는 경찰관까지 폭행하게 되어 결국 체포되었다.

그러자 하는 수 없이 대도시 로마로 도망쳤다. 무일푼으로 로마에 도착한 그는 생계를 위해 이것저것 그림을 계속 그렸지만 주로 폭력배 짓을 하며 여러 번 로마 경찰에 체포됐다. 한동안 고생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림은 잘 그렸으므로 그는 시간이 지나자 당시 미술계의 큰손이던 귀족들과 교황청의 관심을 받게 되어 제법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대신 천하의 불한당인 그가 이제는 얌전히 종교 그림을 그려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후 그는 낮에는 붓을 들고 감동적인 종교화를 그리고, 밤에는 주먹과 칼로 밤거리를 평정하는 놀라운 솜씨를 보이면서 살아갔다. 돈도 벌고 유명해지자 그는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술집에서 종업원을 폭행하거나 셋집을 망가뜨려 고소를 당하기도 하고 여러 번 체포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술과 도박과 주먹의 시기였다.

하지만 즐거웠던 로마 생활도 잠시였다. 카라바조는 돈을 걸고 테니스 시합을 하다가 상대 선수와 싸우게 되어 마침내 한 청년을 칼로 살해하고 말았다. 그때 그의 나이는 이미 35세. 당시에 웬만한 폭력배라면 이제 그런 험한 일에서는 손을 씻고 결혼도 하고 안정되게 살아야 할 시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질러 사형선고를 받게 되자 다시 로마에서 도망쳐 경찰이 찾지 못할 곳을 찾아 이탈리아 이곳 저곳을 떠돌게 되었다.

다행히 그의 재능을 귀하게 여긴 어느 귀족의 도움으로 몰타라는 섬에서 좀 편히 지내나 했지만 거기에서도 역시 큰 사고를 쳐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에는 꽤 솜씨가 좋은 덕분에 카라바조는 감옥에서 탈옥해 뭍으로 도망쳤다.

그 후 그는 여기저기를 방랑하며 술을 마시고 또 거리와 술집에서 주먹과 칼을 휘두르면서도 틈틈이 시간을 내 뛰어난 종교적 명화들을 그렸다.

그다지 종교적이 아니었을 그가 왜 종교화만 그렸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때 카라바조가 그린 `골리앗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은 카라바조가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자기의 불같은 성격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그것은 다윗이 들고 있는 골리앗의 얼굴이 바로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카라바조는 이 작품에서 자기를 악당으로 나타내고 심지어 자기의 목을 베어버렸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카라바조는 교황청이 좋아하는 종교적 그림들을 열심히 그려 언젠가는 살인죄에 대해 사면을 받고 로마로 돌아갈 날을 기다렸지만 그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쳐 그는 다시 술을 마시고 주먹을 휘두르고 감옥을 들락거리며 살다가 결국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유언도, 가족도, 재산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일생을 자기 식대로 살다가 시대와 어울리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18세기 우리나라의 괴짜 화가 최북과 비슷한 점도 있는 듯하다. 카라바조나 최북과 같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매장시키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 사람들은 화가에게서도 특이한 스토리를 요구한다.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화가가 시립병원에서 행려병자로 인생을 마치거나 권총 자살을 하면 더욱 인기가 있고, 그렇지 못하다면 화가가 유명한 포르노 배우와 결혼을 하거나 사는 곳을 아예 정신병원으로 옮겨야 주목을 받기가 더 쉽다. 그런 면에서 카라바조가 지금 태어났다면 그의 기이한 행동으로 많은 돈을 벌고 유명해졌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눈을 찔러 외눈이 되었다는 불행했던 조선시대의 옹고집쟁이 화가 최북처럼 그도 너무 시대를 앞서서 태어난 천재인 듯하다.


--------------------------------------------------------------------------------
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 중앙선데이 2011.8.28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2935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