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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17>작품 아이디어와 저작권

김형진

모처럼의 일요일 나들이, 길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려 주는 화가에게 돈을 주고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면 그 초상화의 저작권은 누가 가질까? 혹은 맘먹고 가족들과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으면 그 사진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초상화를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때 이러저러하게 그림이나 사진이 나오도록 해 달라고 화가나 사진사에게 구체적으로 부탁했을 때는 그 결과가 달라질까? 이 경우 그림이나 사진을 직접 만든 화가나 사진사만이 저작권자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돈을 지불한 사람이나 구체적으로 작품에 대해 이러저러한 부탁을 한 사람들이 저작권을 가지는 것일까?
이와 같은 미술작품의 저작권자 문제를 둘러싼 소송이 1990년대 미국에서 있었다. 문제가 됐던 작품은 스티브 조핸슨이란 작가가 그랜트 우드의 유명한 작품 ‘미국의 고딕’을 바탕으로 창작한 ‘미국의 유산’이라는 작품이었다. 작가인 조핸슨이 이 그림을 그릴 때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그린 것은 아니었다. 그랜트 우드의 작품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조핸슨은 주변의 화가 친구들에게 자기가 그릴 그림에 대해 말해 주고 그들의 의견을 구했다. 친구들은 조핸슨에게 기꺼이 무엇을 어떻게 또 어느 부분에 그려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줬다. 심지어 원래 ‘미국의 고딕’에서는 한 남자가 촛대를 들고 있지만 조핸슨의 작품에서는 기타를 들고 있는 것도 사실은 한 친구가 말한 것이다.
그런데 조핸슨의 작품이 뜻하지 않게 걸작으로 평가받아 유명해지자 이렇게 자세하게 가르쳐 준 친구들과 조핸슨의 관계가 갑자기 나빠지게 됐다. 친구들은 조핸슨이 한 것이라곤 자기들이 말한 대로 색칠한 것뿐이므로 조핸슨뿐만 아니라 자기들도 ‘미국의 유산’ 저작권자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미술에서 저작권자가 중요한 이유는 저작권자가 되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미술 저작권자는 작품을 팔아 버린 뒤에도 작품에 대해 많은 권리를 여전히 가진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그림을 샀어도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는 그 그림의 사진을 팔거나 인터넷에 올리지 못하며 그림을 마음대로 수정할 수도 없다.
그런데 미술작품의 저작권자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며 저작권자가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도 많다. 가령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석굴암을 보면 신라시대에 김대성이란 분이 주도한 것으로는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장인이 만들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저작권자가 한 명이 아니고 여러 명이면 어떻게 될까? 어떤 작품에 대해 저작권자가 여러 명이면 원칙적으로 작품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자 모두가 찬성해 줘야 한다. 가령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명한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아름다운 도록으로 만들어 판매하려 하더라도 만약 그 그림의 저작권자 중 몇몇이 반대하면 도록으로 만드는 것을 단념해야 할 것이다.
지금 전국적으로 마을 곳곳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마을미술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마을미술 프로젝트에 그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된다면 마을미술의 저작권자가 누구인지가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모든 마을 주민이 마을미술에 열심히 참여했다면 법적으로는 그들 모두가 저작권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어느 집의 벽에 그려진 공동 미술작품을 집주인이 고치려 할 때에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집주인이나 이장님 혹은 동장님이라 하더라도 마을미술 프로젝트로 그려진 그 많은 그림을 저작자인 모든 주민의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변경하거나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저작권자가 많을수록 나중에 작품을 여러 가지로 이용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비록 많은 사람이 작품 제작에 도움을 줬다 하더라도 까다로운 자격을 통과한 사람들만이 저작권자로 인정된다. 조핸슨 사건에서 미국 법원은 그의 친구들이 아무리 작가에게 작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구체적인 지시를 했더라도 그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으므로 저작자라고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사람이 작품의 표현을 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작품의 아이디어나 소재를 알려 줬거나 작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료를 제공했더라도 저작권자가 아니라고 본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 초상화나 가족사진의 경우에도 오직 화가나 사진사가 저작권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 걱정할 것은 없다. 사진사는 여러분의 가족사진을 광고로 사용할 수는 없다. 여러분이 비록 저작권은 없어도 아마도 초상권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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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 중앙선데이 2011.7.10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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