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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10> 디아스포라 예술가 신순남

최태만

화폭에 펼쳐진 소수민족 유민사 파노라마
필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던 1993년께 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관이 외교 행낭으로 보내온 전신을 통해 타슈켄트에 사는 고려인 3세인 신순남(Nikolai Sergeevich Shin)이란 화가가 한민족의 유민사(流民史)를 대하소설처럼 유장하게 그린 작품을 한국에 기증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96년에야 마침내 타슈켄트를 방문, 일주일 동안 그곳에 체류하며 신순남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그가 그려놓은 모든 작품을 하나하나 꺼내 보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그때 본 신순남의 작품은 고향으로부터 추방당한 예술가가 지닌 '디아스포라의 고통과 상흔' 그리고 '조상의 고향으로 향한 향수'를 압축하고 있었다.
1928년 8월 24일 연해주 나홋카 근교에서 태어난 신순남은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화물열차에 마치 짐짝이나 짐승처럼 실려 지금까지 살던 땅과는 전혀 풍토가 다른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 내팽개치듯 버려졌다. 그가 네 살 되던 해인 1931년께 아버지가 2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고 그 이듬해 어머니마저 재가했기 때문에 그는 두 누이와 더불어 청상과부였던 할머니 손에 의해 양육되었다. 잠시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던 그의 가족은 1940년 우즈베키스탄으로 재이주하여 타슈켄트에 정착했다.
신순남의 어린 시절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간이었다. 나뭇가지와 풀, 거적으로 만든 남루한 거처에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척박한 황무지를 일궈야했던 그들에게 생존은 본능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신순남은 전통적인 한국적 사고방식을 지녔던 할머니의 열성적인 보살핌에 힘입어 황무지에 버려진 소수민족이 겪어야 하는 온갖 어려운 환경 속에서나마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즉 타슈켄트에 있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화가로서의 일생을 설계할 수 있었던 것도 할머니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1957년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청년작가축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함으로써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같은 해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주최한 '우즈벡공화국 청년작가전'에서도 2등상을 수상했다. 1978년에는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선정한 영예예술가(Honoured Art Worker) 훈장을 받으면서 구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우즈베키스탄에서 존경받는 예술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신순남은 개념에서든 실제 삶에 있어서든 디아스포라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그는 대지로부터 추방당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강령이 창작을 통제하던 시대에 정부에서 배급된 재료를 이용해 체제가 요구하는 그림을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급료를 아껴 구입한 좋은 재료로 주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밤에 사회주의체제에서 불온한 것으로 취급되던 소수민족의 유민사를 장중하게 그려나갔다.
신순남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으로 '진혼곡(Requiem·레퀴엠)' 연작을 꼽을 수 있다. 강제이주 당한 소수민족의 아픈 역사의 체험을 매우 장중하고 비극적인 색채와 극적인 구도, 마치 서사연극을 보는 듯이 굽이치는 유민사의 파노라마로 보여주고 있는 이 연작들은 이웃 어른들의 증언과 자신의 기억에 바탕을 두고 그린 역사화라고 할 수 있다.
황폐한 늪지대에 내버려진 카레이스키들이 척박한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죽어간 뼈저린 역사를 상기하며 그린 것, 특히 질병과 기아로 쓰러진 많은 어린이들의 주검 앞에 슬퍼하고 있는 부모와 어른들의 모습을 그려놓은 작품을 보면 죽음 앞에 절규하는 인간의 처절한 슬픔이 그대로 전달된다. 동시에 그의 작품은 어둡고 비극적이면서 동시에 종교적 숭고성마저 느끼게 만든다. 신순남은 2007년 자신의 제2의 조국인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서 영면했다.
- 국제신문 2011.7.17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key=20110718.22021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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