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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1> 부산 출신 오윤(吳潤)의 '지옥도'

최태만

광고에 갇힌 지옥같은 현실
예전보다 사정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미술은 일반인에게 어려운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동시대 미술을 시대적 환경 및 상황 등과 연결해 풀어나가면 흥미롭게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도 있다. 최태만 국민대 교수의 새 연재는 이런 미술의 재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오윤은 1946년 4월 13일 부산 동래구 낙민동에서 소설 '갯마을'로 잘 알려진 소설가이자 당시 경남여고 교사로 재직 중이던 아버지 오영수와 어머니 김정선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현대문학' 편집장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간 1955년까지 주로 동구 수정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부산에서 성장할 때는 한국전쟁으로 밀려온 피란민들로 넘쳐나던 격동의 시기였으며, 다소 엉뚱한 장난을 치기도 했으나 과묵한 소년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1986년 만 40세로 요절한 오윤은 죽기 한 달 전 부산 공간화랑에서 생애 마지막 전시가 될 '오윤 판화전'(1986년 6월 20~26일)을 가지기도 했으므로 부산과 인연이 깊은 작가라 할 수 있다.
필자는 미술대학 재학시절 오윤이 창립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현실과 발언'의 전시 뒷풀이에서 그를 본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그를 추억할만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구석자리에 앉아 시끌벅적한 좌중을 굽어보던 그의 깡마른 신체에도 불구하고 형형하게 빛나던 눈빛만 기억날 뿐이다.
1980년대 초반 미대생인 필자에게 오윤은 존경하는 선배이자 영웅이기도 했다. 그는 서울미대 조소과에 재학 중이던 1969년 동료 학생들과 함께 '현실동인'을 결성하였다. 비록 전시는 좌절되었지만 김지하 시인이 집필한 '현실동인 제1선언'을 몰래 구해 읽던 필자와 같은 미술학도에게 오윤이란 존재 자체가 동경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찌감치 목판화에 주목하여 칼에 의해 만들어지는 강직하고 힘에 넘친 형태로 표현된 민중적 낙천주의의 세계를 개척함으로써 민중목판화운동을 이끌어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오윤의 판화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필자는 '전통적인 것과 외래적인 요소를 배합하여야 한다'는 '현실동인 제1선언'의 창작론에 따라 후기산업사회의 만연하는 광고이미지를 전통불화와 결합시켜 소비사회를 풍자한 유채화 '마케팅'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 감로탱 중 시왕도의 도상을 차용한 그의 마케팅 연작 중 '지옥도'에는 지옥으로 온 사람들의 죄업에 대한 기록을 검토하고 있는 시왕의 모습이 불화 특유의 선명한 색채로 표현돼 있다. 그 주변에 화탕개발이 생산하는 펄펄 끓는 화탕지옥과 무거운 돌작두로 고문하는 석개지옥 등을 배치하였는데 칠성판에 묶인 사람을 톱으로 사람을 켜고 있는 악귀 역시 불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도상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것은 한 악귀가 '코카콜라'란 상품이름이 인쇄된 옷을 입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옥의 풍경을 맥심, CX3, 환생보험(還生保險) 등의 각종 상업광고로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화면 왼쪽의 칼을 쓰고 있는 네 인물은 동료회원인 미술평론가 윤범모, 성완경, 원동석과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며, 오른편 아랫부분에는 주재환, 손장섭 등의 작가를 그려 넣음으로써 작품을 유머가 넘쳐나는 익살스러운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지옥의 나락에 떨어진 가련한 존재인 예술가에 대한 가혹한 심판은 역설적이게도 각종 상업광고에 의해 감염되고 최면 걸린 삶에 대해 그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예술의 무기력에 대한 통렬한 풍자정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 그에게 온갖 상업광고에 포위된 현실이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국제신문 2011.5.15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110516.2202019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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