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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11>함부로 못 파는 미술작품

김형진

“명작 팔면 지역경제 타격” 텍사스 주민들, 기부금 모아 매각 막아
1990년 미국 텍사스주의 포트워스 미술관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소장 작품 중 가장 유명했던 토머스 에이킨스의 ‘물웅덩이(The Swimming Hole)’를 팔기로 한 것이다. 이 작품은 다른 나라에서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지만 미국에서는 19세기 미국 미술을 대표하는 명작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원래 미술관이란 미술품을 모아서 전시하는 곳이지만 작품을 그저 모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종종 미술관들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버리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버리는데, 이 같은 행위를 미술용어로 ‘작품처분(deaccession)’이라고 한다. 미술관들이 애써 모은 작품을 처분하는 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미술관이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모을 수 없을 만큼 수장고가 가득 차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미술관의 성격과 맞지 않는 작품들을 정리하려고 할 수도 있다. 가령 현대미술을 주제로 하는 미술관이 100년이 훨씬 지난 작품들을 계속 소장하는 것은 미술관의 성격에 맞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또한 199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아먼드 해머 미술관이 소송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3000만 달러에 팔아버렸듯이 미술관들은 새로운 작품을 사기 위한 자금이나 심지어 미술관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작품을 부득이 처분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미술관들은 소장 작품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예전에 어느 독지가로부터 기증받은 작품이라면, 미술관이 그러한 작품을 기증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제3자에게 파는 것은 비도덕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기증자와의 약속을 저버린 계약 위반 행위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기증자나 그 후손들이 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의 판결에 따라 미술관은 작품을 기증자에게 돌려주거나 일체의 처분행위가 금지될 수 있다.
설사 미술관이 처분하고자 하는 작품이 기증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금으로 구매한 것이라고 해도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명작이 넘쳐나는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이라면 모를까, 소장품 중에 명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라곤 가물에 콩 나듯 있는 작은 도시의 미술관에서 그러한 명작을 처분하는 것은 단지 미술관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변 상권의 몰락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의 명성에도 심각한 해를 끼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법적으로만 규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대체로 소장 작품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화랑들과는 달리 미술관들은 보다 많은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긍정적인 사회적 기능을 한다. 그럼에도 화랑들은 마음대로 작품을 팔 수 있는 데 비해 미술관에는 오히려 더 불이익을 주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공기나 물과 같이 명작도 일종의 공공재이므로 개인이 미술관으로부터 구매해 자기 집에 보관하는 것보다는 가급적 더 많은 사람이 감상할 수 있도록 미술관에서 전시돼야 한다고 보는 견해도 많다. 외국에서는 미술관 협회가 윤리규정을 통해 작품처분으로 인해 얻어지는 수익을 미술관의 운영비로 사용하지 못하고 반드시 미술관의 소장품을 늘리는 데 쓰이도록 규정하고 있는 곳도 있다. 심지어 미국의 뉴욕주는 주립미술관 한 곳에 대한 법률이긴 하지만, 미술관이 처분행위로 얻은 수익은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고 오직 작품의 구입이나 관리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법률을 96년에 통과시켰다.
생각건대 오늘날 미술관은 사립 미술관이라 하더라도 단지 개인의 소유물만은 아니다. 미술관이 가지는 사회적 중요성 때문에 어느 나라의 정부라 하더라도 국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사립 미술관들에 대해서조차 여러 가지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그렇다면 사립 미술관이라 하더라도 소장 작품을 마음대로 처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서 얘기한 텍사스 포트워스 미술관 사건은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미술관이 ‘물웅덩이’를 팔기로 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자 텍사스에서는 그동안 미술관 근처에도 가지 않던 사람들까지도 미술관의 처사를 입을 모아 불평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미술관이 작품을 파는 이유가 관람객 감소로 인해 빚어진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자존심이 센 텍사스 사람들은 앞다투어 모금에 참여했다. 결국 미술관은 지역사회로부터 거액의 기부를 받을 수 있었고 작품은 텍사스에 계속 머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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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 중앙선데이 2011.5.29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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