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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人] 배명지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씨 책임큐레이터

윤동희

한국 미술계에서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씨는 단순히 기업의 이미지를 고려한 사립미술관의 범주에 머물러 있지 않기에 주목받는 곳이다. 알다시피 이 공간은 (주)코리아나화장품의 유상옥 회장이 지난 30여 년간 수집한 미술품을 기반으로 한 화장품박물관과 한 몸을 이루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을 ‘전통문화, 예술, 자연의 아름다움’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어느 기업의 부속 공간으로 간주하는 미술인은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미술계에서 스페이스 씨는 화려하지 않지만 미술계가 고민해야 할 담론을 뿌리 삼아 소리 없이 열매 맺는 탄탄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물론 스페이스 씨가 그동안 보여준 전시의 얼개를 들여다보면 모 기업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보여주는 ‘방식’이 은근하면서도 정돈되어 있다.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리메이크 코리아》전(2005)에서는 써니 킴, 김종구, 김지혜, 이순종, 정주영 등 과거에서 출발하되 현대적 삶의 의식과 동시대성을 고민하는 9명의 작가를 모아 전시의 밀도를 증폭시켰다. 인간의 피부와 화장(化粧)이라는 눈에 보이는 요소를 통해 미(美)와 추(醜), 인종과 성(性), 계급 등의 사회적 개념을 미학적으로 탐구한 《울트라 스킨(Ultra Skin)》전(2009년)은 모 기업의 이미지가 없었다면 오히려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자칫 불필요한 소문에 노출될 수도 있는 공간이 한국 미술계에 없어서는 안 될 곳으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학예적’인 관점으로 전시를 마주하는 배명지라는 큐레이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예술가의 신체》전, 90년대 ‘몸’ 담론의 ‘이후’를 살피다큐레이터 배명지는 2004년 6월 코리아나미술관에 합류해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한결같음. 예술이라는 소명으로 한 기업의 이미지를 책임지고, 기업형 사립미술관으로서의 책무를 의식하며 미술계에 회자되는 전시를 만들어온 7년 남짓한 시간을 한자리에서 보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영향력 있는 젊은 큐레이터의 자리에 오른 데에는 이러한 ‘지구력’과 ‘시각문화 생산자’라는, 큐레이터의 본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진지한 ‘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배명지는 ‘메시지가 스며 있는’ 작품과 전시 앞에 서면 지금도 떨린다고 말한다. 모호한 층(layer)이 겹겹이 쌓여 있는 작품들이 촘촘히 연결된 전시를 만날 때 느끼는 행복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단다. 이러한 생각은 올해 8월 20~2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실시한 큐레이터 연수를 거치며 더욱 확고해졌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유명 미술관을 다니며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했어요. 좋은 작품과 좋은 전시는 분명히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할까요. 이 직업을 택하길 정말 잘했다, 큐레이터로 살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동시에 지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경고를 스스로에게 보냈습니다.”
배명지는 유독 (현대)미술의 다원성과 신체 담론이 갖는 복합적인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는 큐레이터로 알려져 있다. 미술의 다원성은 2006년 연극과 미술의 합일을 꾀한 《이미지 극장》전에서, 신체 담론을 향한 모색은 올 상반기 많은 관객들을 불러 모은 《예술가의 신체》전(2010. 5. 6~6. 30)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한 바 있다. 배명지에게 《이미지 극장》전은 조형예술가와 무대미술가, 배우, 연출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무대와 연극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물론 각각의 영역에서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시각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탐색하는 시간이었다. 어느 예술도 자신의 고유한 지위를 애써 주장하지 않는, 그 열린 시공간 속에서 관객들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예술의 세세한 부분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었다.
국내외 16명의 작가가 자신의 신체를 매개 삼아 다양한 예술적 의미들을 생산한 《예술가의 신체》전은 모 기업의 정체성을 고려하되, 90년대 한국미술계를 강타했던 ‘몸’ 담론의 ‘이후’를 살펴보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겉으로 보면 90년대 특정 흐름의 복고적 재현으로 비칠 수 있는 이 전시에서 배명지는 특유의 학예적인 접근을 통해 인간의 이성, 즉 정신에 예속된 ‘억압된 신체’를 해방시키고자 했던 90년대의 몸 담론이 세기가 바뀐 지금 미술가들의 ‘신체’를 도구 삼아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수년 전부터 스페이스 씨가 역점을 두고 있는 국제적인 네트워킹을 향한 노력 덕분에 고승욱, 니키리, 이형구, 장지아 등 국내 작가들과 재닌 안토니(Janine Antoni), 마커스 코츠(Marcus Coates), 줄리 자프레노(Julie Jaffrennou), 피필로티 리스트(Pipilotti Rist), 스텔락(Stelarc) 등 해외 작가들이 같은 공간에서 호흡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특히 마리나 아브라모빅(Marina Abramovic)의 <누드와 해골>을 MoMA와 같은 시간대에 공유했다는 건 전시 기간 내내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이전까지 몸을 주제로 한 미술 작품은 감각적인 자극과 충격을 던지는 데 그친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신체미술’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예술가가 자신의 신체를 거울삼아 무엇을 바라보는지, 무엇을 반영하는지를 살펴보자는 거죠. 덕분에 인간의 몸과 몸이 서로 긴밀하게 소통하는 순간을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모빅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정신과 대립적 구도를 펼치는 데 주력했던 과거의 신체예술이 이제는 정신적인 명상과 사유를 유도하는 성숙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동감이다. 이 전시가 이미 한 차례 국내 미술계에 유행했던 유사한 성격의 이론과 전시를 다시 보는 듯한 진부함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배명지는 일찍이 장 엡스탱(Jean Epstein)이 영화를 “시간을 생각할 수 있는 기계”이자 “스스로가 원인이 되는 철학의 장이자 도구”로 간파했던 것처럼, ‘예술가의 몸’이라는 설정을 통해 신체의 새로운 방향을 가늠하려 했다. 몸이라는, 정신과 결부된, 혹은 정신의 대척점에 자리한 특정 주제를 세상에 존재하는 이미지로 화(化)함으로써 그것이 갖는 미학적 의미를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그 사이를 오가는 큐레이터로 살아가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이 한결 같은 큐레이터의 예술관이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지를 짐작케 해주었다.
작품을 모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으려면배명지는 큐레이터라는 ‘업(業)’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들에게 ‘고민’과 ‘학습’을 요구했다. 어떤 작품이 좋은지를 고민하려면 그것이 품고 있는 메시지를 음미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겠지만, 큐레이터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공부를 게을리 할 경우 자칫 작품을 모아 ‘진열’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크거든요. 저 역시 늘 고민합니다. 내가 만드는 전시가 하나의 이벤트인지, 아니면 작게나마 미술계와 소통할 수 있는 전시인지 돌아봅니다. 다행히 저는 지원을 아끼지 않되 간섭하지 않는 참 좋은 미술관에서 공부하며 일할 수 있어 행운아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배명지는 “큐레이터가 천직인 것 같다”며 “예순이 되는 날까지 미술 현장에서 살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런 그녀에게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당신의 바람은 바로 우리 미술계의 바람이라고.
필자소개
윤동희는 연세대 영상대학원을 졸업하고, [월간 미술] 기자, [아트인컬처] 편집위원, 안그라픽스 편집장으로 일했다. 현재 도서출판 북노마드 대표, 광주비엔날레 계간지 [눈(noon)] 편집위원이며 여러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위클리@예술경영
http://www.gokams.or.kr/webzine/03_data/03_01_veiw.asp?idx=585&page=1&c_idx=37&searchString=배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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