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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3>예술에 희생된 동물들

김형진

표현의 자유와 동물보호법 사이 끝없는 논란
몇 년 전 덴마크의 현대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깜짝 놀랐다. 새로운 전시품 중 믹서가 있었는데, 믹서에 담긴 물통 안에는 예쁜 금붕어가 헤엄치고 있었다. 그런데 믹서의 작동 버튼에는 “누르시오”라고 쓰여 있었다. 물론 관람객이 버튼을 누르면 금붕어는 바로 믹서에 잔인하게 갈리게 된다. 작가는 “관람객들은 마음속 욕망이나 호기심이 양심과 갈등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많은 관람객이 이런 작품에 화를 냈고 누군가는 작가를 동물학대죄로 고발했다.
198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독일 정부 수립 40주년 기념 미술전에서는 한 작품이 문제가 됐다. 이 작품은 이른바 행위예술이었다. 작가는 살아 있는 카나리아를 병 안에 넣고 독일 국가의 음률에 맞춰 병을 흔드는 퍼포먼스를 했다. 사회적으로 동물학대 문제가 제기됐고, 작가는 동물학대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받았다. 하지만 작가는 예술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면서 항소, 결국 승소했다.
또 다른 독일의 작가는 인권침해에 항의하는 의미로 무대에서 생닭의 목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러나 이 작가는 운이 그다지 좋지 않아 결국 동물학대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오늘날 동물학대는 단지 행위예술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작가는 작품의 재료나 소재로 사용하기 위해 살아 있는 동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벨기에의 델보이는 돼지에게 문신을 하는 작가다. 연약한 돼지 피부에 문신을 하는 게 잔인하다는 이유로 유럽에서 반발이 심해지자 그는 아예 중국으로 이주, 한적한 곳의 돼지농장을 통째로 사 버렸다.
사실 돼지 피부의 문신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미술가 나탈리아 에덴몬트는 종종 토끼와 같은 동물을 직접 죽여 자기 작품의 소재로 사용한다. 또 현대미술의 수퍼스타인 대미언 허스트도 종종 송아지나 상어를 해부해 작품을 만든다. 그의 작품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육체적 죽음의 불가능성’은 상어를 이용한 것이고 ‘분리된 어머니와 아이’는 어미 소와 송아지를 절반으로 잘라 전시한 것이다. 그래서 저명한 동물보호단체들은 대미언 허스트의 작품들이 동물학대를 부추긴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작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이러한 비난에 맞서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에서 동물을 도살하거나 학대하는 동영상이 넘쳐나고 있다. 만약 철없는 고등학생들이 개를 도살하고는 이것을 자랑스럽게 예술행위라고 주장한다면 문제는 매우 복잡해질 것이다. 우리나라에 예술가임을 인정하는 국가 자격증 제도가 없는 이상 외국의 대미언 허스트는 되고 우리나라의 고등학생들은 안 된다고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동물과 같이 산 지는 수백만 년이 됐지만 인류가 동물보호법을 만든 지는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다. 사실 1933년 동물보호법을 세계 최초로 만든 사람은 당시의 독일 총리 히틀러다.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다는 히틀러가 동물들을 지극히 사랑했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만 분명히 사실이다.
그 후 서구에서는 앞다퉈 동물보호법을 제정했고 이제는 동물학대를 금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동물학대를 조장하는 행위도 처벌하고 있다. 가령 미국은 99년부터 동물학대를 묘사한 작품을 만들거나 팔거나 소지하는 행위를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91년 제정된 동물보호법에서 “누구든지 동물을 사육·관리 또는 보호함에 있어서는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식하고 그 동물이 본래의 습성과 신체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는 동물을 학대한 자에게 500만원 이하의 벌금만 부과하고 있으나 앞으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상습적으로 동물을 학대한 자에 대해서는 형량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을 할 수 있도록 개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를 상당히 존중하기 때문인지 예술을 위해 동물을 학대했다고 해서 문제가 된 적은 아직 없다.
앞서 말한 덴마크 미술관의 금붕어 재판에서도 작가와 큐레이터는 동물학대죄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금붕어들이 고통 없이 죽었을 것이라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죽은 동물이 작은 금붕어들이 아니라 덩치가 큰 개였다면 아마 무죄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같은 동물이라도 법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 보신탕을 즐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예술을 위해 개를 희생시키더라도 작가를 동물보호법으로 처벌하기는 쉽지 않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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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중앙선데이 2011.4.3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1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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