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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2> 문화 반달리즘

김형진

실내 대피하는 미술품 … 작품 훼손 피해자는 보통사람들

20세기 후반부터 미술품 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잘사는 나라의 부자들뿐만 아니라 갑자기 주머니가 두둑해진 개발도상국의 부자들도 돈뭉치를 들고 미술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
2008년 시작된 금융 위기 이래 전 세계 미술 시장이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지난 십년 동안의 실적만 보면 미술품 투자가 주식투자보다 더 나은 투자라고 한다. 특히 아시아 부자들이 좋아하는 인상파 작품이나 그리스 조각의 가격은 크게 뛰어올랐다.
이처럼 미술품의 값이 상승하고는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미술품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세상에는 상습적으로 그림을 망치는 일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이탈리아의 훼손 전문가(?) 카나타는 명작을 훼손하는 것으로 유명해지고자 결심한 사람이다. 그는 사회의 비난과 미술관의 엄격한 감시를 무릅쓰고 거장 미켈란젤로의 걸작품으로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전시되어 있는 다비드 상의 발가락을 잘라냈다. 또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필리포 리피의 프레스코 작품에 페인트를 뿌리는 등 경악할 만한 일을 여러 차례 저질렀다.
카나타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이유로 칼이나 매직펜을 숨긴 채 미술관에 들어가 그림을 찢거나 그림 위에 칠을 해왔다.
1914년 영국의 한 여인은 여성 참정권 문제에 대해 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내셔널 갤러리의 그림을 식칼로 찢어버렸다. 74년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에 페인트를 뿌린 사람은 “나의 행위가 바로 행위미술”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87년 총격을 받은 영국 내셔널 갤러리 사건이나 93년에 폭탄 테러를 당한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 사건처럼 그 이유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도 많이 있다.
이렇게 재산을 훼손하는 행위를 ‘문화 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한다. 이는 과거 4세기부터 5세기 무렵 유럽 일대에서 약탈과 파괴를 했다고 전해지는 게르만족 일부의 이름을 딴 말이다.
하지만 미치광이나 사회 부적응자들만이 미술품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 유적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일반인들의 낙서는 바로 이러한 문화 반달리즘의 대표적인 형태일 것이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예술의전당 야외에 설치되어 있는 많은 조각품들이 관람객들의 낙서와 장난으로 온통 엉망이 되어 몸살을 앓고 있다.
대체로 야외에 설치된 미술품들이 문화 반달리즘에 희생되기 쉽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려고 아무리 주의문을 붙이고 CCTV를 달아도 막무가내로 낙서를 하고 만지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 적발되어도 처벌이 가볍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미술품을 고의로 훼손하는 행위를 가중 처벌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다. 나라마다 고장마다 미술관을 짓고 미술관에 지원을 해주는 이유는 미술품이 단지 소장자의 재산일 뿐만 아니라 미술을 좋아하는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화재와 같이 미술품도 잘 보관해서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통계가 없지만 외국의 자료를 보면 미술품을 훼손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바로 다음 세대를 책임져야 할 20대 청년들이라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미술품 훼손의 가장 큰 피해는 미술관에 갈 형편이 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문화 반달리즘을 걱정한 소유자들이 점차 비싼 미술품들을 안전한 실내로 옮기기 때문이다. 즉 이제까지 무료로 볼 수 있었던 미술품들을 입장료를 받는 미술관 안에 들어가야 볼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문화 반달리즘 때문에 어쩌면 공공 미술작품이나 야외 미술품이 점차 거리에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면서 이렇게 외친다.
“우리 그냥 이대로 미술 작품을 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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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 중앙선데이 2011.3.27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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