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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품 박물관을 찾아서] <3> 영국인의 뒤뜰 영국박물관

편집부

로제타석·파르테논 신전 조각 등 세계 유물 가득20110208004317
개관 250년을 훌쩍 넘긴 영국박물관은 한 해 6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을 맞는다. 국내에선 이름을 놓고 ‘대영박물관’이냐 ‘영국박물관’이냐로 논란이 된 적 있다.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두던 시절에 영국으로 옮겨온 유물 위주로 전시한 탓에 다른 나라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리스나 이집트보다 해당 국가 유물이 많다는 비아냥까지 들을 정도다.
여러 논란에도 이곳은 영국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책에서나 본 로제타석, 파르테논 신전 조각 등 세계 유물이 박물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여유 있는 점심 식사를 위해 박물관 뜰을 자주 찾는다는 한 영국인은 “내겐 그저 공짜 박물관”이라고 말한다. 세계 최초의 ‘공공’ 박물관을 지닌 영국인의 자긍심이 이런 걸까.
◆250년 전부터 일반인에 개방
박물관에 들어서면 커다란 원형 상자가 먼저 눈에 띈다. 기부함이다. 영국의 박물관은 입장료 대신 이처럼 기부금으로 일부 운영비를 충당한다. 돈 한푼이 아쉬운 학생이나 배낭 여행객에겐 꿈같은 일이다. 하지만 영국의 살인적인 물가가 ‘무료 입장’의 기쁨을 반감한다.
기부함에 5파운드를 넣고는 5분가량을 지켜봤다. 돈을 넣는 사람이 별로 없다. 박물관 직원에게 이유를 묻자 대수롭지 않게 “박물관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답한다. 돈을 내든 말든 그들 마음이란 의미다. 언제부터 후덕했을까.
박물관은 왕립의사이자 고고학자인 한스 슬론(1660∼1753)의 유언에서 출발했다. 그는 아이작 뉴턴에 이어 왕립학회 의장을 지냈는데, 생전에 동전과 메달 2만3000점, 책과 필사본 등 5만점, 고대 의상 1125점, 방대한 양의 식물표본집 등을 모았다. 슬론은 이것들을 왕에게 넘기며 박물관을 지어달라고 했다. 공짜는 아니었다. 자기 후손에게 2만파운드를 보상해 주는 조건을 걸었다. 이 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유물을 해외에 매각할 뜻도 내비쳤다. 왕과 의회는 논의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슬론은 개관 5개월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박물관이 일반인에 공개된 건 개관 6년 후인 1759년. 지금까지 250년 넘게 공공재로 남은 셈이다.
◆19세기 인기 유물 들여와 관람객 급증
박물관이 처음부터 북적거린 건 아니다. 일반에 공개될 무렵 관람객은 고작 한해에 5000명이었다고 한다. 왜 당시에는 그렇게 인기가 없었을까. 관람객이 몰리는 곳을 찾아가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1층 고대 이집트관에 있는 로제타석은 박물관의 상징으로 불린다. 개관 반세기 후인 1802년 박물관 유물에 포함됐다. 나일강 하구의 마을 로제타에서 발견된 이 돌은 이집트 고대문자 해석의 단초가 됐다. 영국인 가이드는 “나폴레옹 시대 영국과 프랑스군 원정 길에 발견됐지만 결국 영국에 와서 여러분이 볼 수 있는 귀중한 돌”이라고 설명한다. 1818년 유물에 포함된 람세스 2세의 흉상은 로제타석 인근에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관의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은 1816년에 박물관에 왔다. 영국인 엘긴이 그리스 신전의 조각들을 떼어 온 것이라고 해 ‘엘긴 마블스’로 불리며 여러 논란을 부른 유물이다. 아테나 여신을 모신 거대한 신전 규모를 그대로 따라 해서 그런지 전시실이 가장 크다. 신과 인간, 기마병과 말의 근육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석화(石畵)가 전시실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 거대한 조각들을 떼 그 먼 거리를 배로 운반할 생각을 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4층 고대 이집트관의 핵심은 미라관이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어 가족 관람객이 유독 많다. 미라 제조 과정과 미라가 안치된 관, 천에 말린 미라와 고양이 미라 틈에서 아이들은 눈을 번뜩이기도, 질끈 감기도 한다.
이처럼 시선을 사로잡는 유물은 19세기 이후부터 전시된 게 대부분이다. 이후 관람객 발길이 늘었다고 한다. 전시품을 늘려가던 20세기 초 가이드맵이 처음 생기는 등 공공 서비스가 확충되면서 영국박물관은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밀레니엄에 생긴 한국관과 ‘대정원’
‘남과 북으로 나뉜 한반도는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으로 중국·러시아·일본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너무 익숙한 내용이지만 이런 문구가 영국박물관 홈페이지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는 건 꽤 뿌듯하다. 2000년 중국도자기 전시관 바로 옆에 문을 연 한국관에 대한 설명이다.
규모 면에서 한국관은 중국관과 일본관에 못 미친다. 조선의 백자 항아리, 고려 칠기함 등 전시 내용도 우리 문화를 알리기에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관은 한 독지가가 사재를 털었다.
일본관은 우리나라보다 10년 일찍 문을 열었다. 2008년엔 일본의 글로벌 자동차기업이 10년 후원까지 약속하면서 테마 전시가 활성화했다. 중국은 중국관 외에 전 세계 1700여 도자기들을 모은 중국도자기 전시관이 따로 있다. 한국, 중국, 일본관을 다 둘러보면 뒷맛이 씁쓸한 이유다.
유럽인에게 한국이든 중국·일본이든 아시아 문화는 변방일 수밖에 없다. 유독 외진 곳에 있는 각국 전시실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난다. 한옥의 창살과 툇마루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외국인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박물관에 들어설 때 햇살을 한껏 비춰주던 ‘대정원’의 천장 유리가 어둠을 품으려 한다. 관람객이 박물관에 들어서면서 규모에 놀라는 대정원은 새천년을 기념한 ‘1억파운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생겼다.
3312개의 유리판이 비춰주던 햇살은 언제쯤 다시 즐길 수 있을까. 그 때쯤이면 한국관에서도 외국인 관람객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대하며 발길을 돌린다.
-세계 2011.2.9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10208004317&subctg1=&subct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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