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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세계 명품 박물관을 찾아서] <1> 파리 로댕 박물관

편집부

제자 카미유와 불꽃같은 사랑…‘세기의 걸작’을 낳다
기원전 300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궁전 무세이온(Museion)에서 시작된 박물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살아 있는 교육 장소’다. 고대에는 학문 연구의 장으로, 근·현대기에는 인물과 역사를 되새기는 기억의 장소로 활용된 박물관은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발전할수록 더욱 가치를 인정받는다. 각 시대에 걸친 다양한 문물과 인간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세계 명품 박물관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귀엽고 앳된 카미유 클로델(1864∼1943)이 19살,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이 43살이던 1883년 겨울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났다. 파리 노트르담 데 샹에 있는 로댕의 작업실에서였다. 그즈음 로댕은 중견 조각예술가 반열에 올라 있었고 카미유는 그저 그런 처녀 작가였다. 그 당시 로댕은 거대 역작 ‘지옥의 문’ 제작에 몰두 중이었다. 유명 인사 로댕을 처음 만난 카미유는 숨겨진 끼와 불 같은 열정을 뿜어내면서 로댕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그녀에게 매료된 로댕은 인간의 갖가지 감정의 형상을 묘사한 ‘지옥의 문’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 애원하는 등 그녀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내 인생이 구렁텅이로 빠질지라도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오. 나의 영혼은 그대로 인해 꽃을 피웠으며….” 로댕이 그의 모델이자 제자이며 연인이었던 카미유에게 1883년 보낸 구애 편지의 일부다.
로댕은 카미유를 사랑하는 도중에도 파리 근교의 작업실에서 수많은 여인들과 섹스를 즐겼다. 제자들의 수군거림에도 개의치 않았다. 여인의 몸을 어루만지는 행위가 작품의 영감을 얻기 위한 노력이라는 로댕 나름의 논리도 내재돼 있었다.
◇로댕 박물관 전경. 18세기 건축물로, 고풍스러우며 우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로댕 박물관 제공
로댕이 여성 편력을 지속하는 가운데서도 한 송이 수선화 같으면서도 열정을 지닌 카미유는 로댕의 예술적 성적 욕구 충족에 합치됐다. 로댕이 세기적인 조각 작품을 일궈낸 데는 로댕을 향한 카미유의 사랑과 열정이 밑거름이 됐다. 둘은 10년 동안 연인 관계를 지속하며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았다. 젊은 시절 로댕의 열정적인 예술 활동 이면에는 정부 카미유의 사랑과 후원이 대단한 역할을 했다고 비평가들은 말한다.

◇로댕박물관 야외에 있는 ‘생각하는 사람’
당시 조각예술 비평가들은 ‘지옥의 문’을 비롯한 로댕의 작품이 카미유의 작품과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성이 많다며 논란을 벌였다. 1883년에 그린 로댕의 ‘광폭한 연인’은 카미유에 대한 불타는 정열의 표현으로 가득 찼다. 두 사람은 사제이자 연인이면서 예술가로서는 경쟁자라는 복잡미묘한 관계를 이어갔다.
로댕의 유명 작품들은 특히 외설적 행동 양태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조각은 르네상스 이후 오랫동안 장식미술의 일부로만 여겨졌으나 여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미술의 독보적 분야로 끌어올린 것은 순전히 로댕의 공로였다. 예술적 정열에 못 이겨 번민과 고통에 휩싸일 때마다 그는 카미유를 탐닉했다. 그녀의 육체를 즐기면서도 아울러 그녀의 작품 표현력에 감탄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후 결별하는 순간 카미유는 로댕과의 만남을 ‘꿈 같은 지옥’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녀 역시 로댕의 천재성에 영향을 받아 위대한 여류 조각가의 반열에 오른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는 게 훗날 비평가들의 해석이다.
“여자의 음부는 욕망의 미로다. 그 미로에서 남자들은 진정한 자유를 찾는다”는 명제는 후기 로댕 작품의 주요 테마로 자리 잡는다. 옷을 입지 않은 여인이 거룩하다고 외치는 로댕은 여성의 몸 중에서도 음부에 관심을 두었다. 여성을 모델로 한 로댕의 후기 작품 80% 이상이 여성의 음부에 초점을 맞췄다. 작업실을 방문한 사람마다 로댕에게 “망측한 외설 작품이나 하려면 그만두라”고 불평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열정적인 작품활동을 하면서 인간의 말초적 욕망을 위대한 예술세계로 승화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사상이었다.

◇‘키스’ 24살이나 어린 카미유 클로델과 10년 동안 연인 관계를 지속했던 로댕은 조각 작품에서도 남녀간 사랑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표현했다. 로댕 작 ‘키스’.
로댕의 어린 시절은 부유하지 못했다.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14세 때 국립공예실기학교에 입학해 조각가의 기초를 닦았지만 뛰어나지도, 눈에 띄지도 않았다. 1857년부터 3년간 국립미술전문학교 입학시험에 응시했지만 떨어졌다. 1861년에는 아버지가 퇴직하는 바람에 생활비를 대느라 갖가지 부업을 해냈다. 1864년 파리 시내 살롱에 처음으로 출품한 ‘코가 망그러진 사나이’로 번뜩이는 예술 감각을 인정받았지만, 너무 생생한 묘사가 심사위원들에게 거부감을 줬다는 이유로 낙선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참전했지만 살아남았다. 1878년 파리로 돌아온 이후부터 제작한 ‘청동시대’를 국전에 출품했다. 이 작품은 사실적인 박진감으로 인해 살아 있는 모델에게서 직접 주조 석고형을 뜬 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받으면서도 주목받게 된다. ‘청동시대’는 로댕 예술의 출발점이며 그의 사실적 표현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걸작이었다.
그의 작품 활동은 사실적 표현에 만족하지 않고 내면적인 깊이가 가미된 생명력 넘치는 표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열정적인 작품 활동으로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 ‘아담과 이브’ ‘칼레의 시민’(이상 1884년까지 작품) ‘발자크상’(1898) 등을 잇달아 내놓았다. 로댕은 앞서 국립 장식미술관의 의뢰로 ‘지옥의 문’(1880∼1926) 제작에 들어갔다. 그는 이 대작의 모티브를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얻었는데, 지옥문에 선 인간적 고통을 세밀하게 묘사하려 노력했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1917년 죽음을 맞게 된다.
그가 추구한 웅대한 예술성과 기량은 18세기 이래 오랫동안 건축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던 조각예술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로댕은 영감이 어우러진 생명력 있는 작품을 만들려 애쓰면서 프랑스 인상주의 시대를 풍미하는 깊고 큰 발자취를 남겼다.
현대 조각예술은 직간접으로 모두 로댕을 출발점으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물품 및 전 재산은 만년의 작업장이었던 파리의 호텔 비롱에 로댕박물관을 개설한다는 조건으로 국가에 기증된다. 로댕은 임종의 순간에도 카미유에 대한 연민과 미안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파리=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 로댕박물관 ‘비롱 하우스’는

◇미완성 작품 ‘지옥의 문’로댕은 20여년간 이 작품에 매달렸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1871년 프랑스 정부가 감사원 건물에 세우기 위해 당대 최고 조각가 로댕에게 주문했던 작품으로 높이 7.75m, 너비 3.96m, 폭 1m의 직사각형이다. 로댕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구상했으며,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갖가지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로댕 박물관은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파리 7구에 자리잡은 광대한 정원이 딸린 대저택으로 ‘비롱 하우스’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로댕이 카미유 클로델과 헤어진 이후 1908년부터 1917년 사망할 때까지 만년을 보낸 곳이다. 로댕은 죽기 1년 전 비롱 하우스를 국가에 기증했으며, 프랑스 정부는 로댕 작품을 전시해 1919년부터 문을 열었다.
비롱 하우스는 이전 소유자였던 거물 예술가 비롱의 저택이었으며 18세기 건축물 중의 걸작으로 꼽힌다. 저택 내부와 정원에는 그의 대표작이 대부분 전시되고 있는데 조각 6600점, 그림 7000점, 작품의 기초 틀인 주형을 비롯해 로댕이 수집한 고흐와 르누아르의 미술품, 고대 조각 작품 등이 망라돼 있다. 로댕 박물관에는 카미유의 작품 전시실도 별도로 마련돼 있어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를 짐작케 한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생각하는 사람’ ‘지옥문’ ‘칼레의 시민’ 등은 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로댕 박물관은 파리시내 130개 박물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꼽힌다.

◇스무 살 때의 카미유 클로델.
해마다 50만명의 관람객이 찾아온다. 파리 근교에 있는 뮈동 주택도 로댕과 카미유의 사랑을 간직한 아담한 가정집인데, 지금은 아틀리에 겸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로댕 박물관은 매년 겨울철 로댕과 마티스 작품을 비교 전시하는 ‘마티스 & 로댕’전을 개최한다.
로댕보다 30년 아래인 앙리 마티스와 로댕의 만남은 근대 미술사에서 일대 사건으로 기록된다. 20세기 근대 회화에 큰 영향을 미친 마티스는 로댕을 만난 이후 미술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게 비평가들의 견해다.
비평가들은 로댕이 ‘생각하는 사람’을 그린 반면 마티스는 ‘자유’를 목표로 한 회화를 그려 마치 두 사람이 크게 다른 것 같지만, 실은 인간의 고통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예술로 승화했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풀이한다.
-세계 2011.1.6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10105004085&subctg1=&subct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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