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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김태익

'형님깨 드립니다. 누님과 조카들도 별고 없으시고 가개도 잘되시는지요. 오늘도 썹시 51도. 시원한 냉막걸리 생각 간절합니다. 비행기 뜰 적마다 가고싶은 내 고향. 첫달 봉급 26만원 송금했습니다. 형님, 다음에 만나 웃어봅시다.' 맞춤법이 틀린 곳이 많다. 그러나 좁은 우편엽서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남부럽지 않은 미래를 만들겠다는 열망이 가득하다. 1970년대 중동에 나가 일했던 근로자가 보내온 편지다. 

▶고향의 아버지가 중동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도 있다. '너는 우리 가문의 빛나는 별이 될 材木(재목)이니라. 비록 먼 땅에서 돈을 번다고 고생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8월 15일은 할아버지 기일이다. 기억해라.' 어느 파독(派獨) 간호사는 '은행에 가 송금하고 기숙사에 돌아올 때면 그렇게 발걸음이 가벼울 수 없었다'고 썼다. 그 돈으로 동생이 대학에 들어가 장학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더욱 힘이 났다고 했다. 

▶모두가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노력하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있다는 희망이 모두를 버티게 했다.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의 피와 땀이 밴 기록과 물건들이 이제 대한민국 64년을 후대(後代)에 증언할 역사가 됐다. 크고 작은 역사 자료 4만여점을 모은 '대한민국 역사기념관'이 26일 서울 세종로에서 문을 연다. 


▶유진오가 기초한 대한민국 헌법 초안, 정석해 권오돈 박두진 등이 친필 서명한 4·19 교수단 데모 명단철, 한·일협정을 앞두고 작성된 김종필-오히라 메모…. 굽이굽이마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지은 문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1950년대 이를 박멸하는 데 쓰였던 DDT 분무기, 드럼통을 두드려 펴 차체를 만든 최초의 국산차 시발택시도 관객을 맞는다. 1965년 저축 장려를 위해 농협이 만든 저금통에는 '푼돈 넣어 황소 사자'는 구호가 새겨져 있다. 

▶전시품 설명문에서 5·16은 '군사 정변'으로 기록됐다. 10월 유신으로 '민주주의가 실종됐다'고 썼다. 60~80년대 반공주의의 뒷면에는 '인권 탄압과 고문, 사상의 자유 박탈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고도 했다. 전태일로 상징되는 산업화의 그늘, 유신 반대와 6월 항쟁 같은 민주화 운동에도 적지 않은 공간을 배려했다. 기념관을 둘러본 후 '나와 우리 편의 역사는 홀대받았다'고 섭섭해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렇게 서로 부대끼며 살아왔던 게 우리 역사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그걸 고쳐가는 과정 역시 우리의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다.


- 조선일보 2012.12.24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23/20121223011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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