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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념·열정이 만든 독특한 화풍… 그가 중년까지 살았더라면…"

권녕호

처음 반 고흐의 원화를 본 것은 1981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였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나는 화가로서 문화여권을 발급 받았고, 그 동안 꿈꿔왔던 유럽 10여개국으로 미술관 여행을 떠났다. 반 고흐 미술관에는 그가 네덜란드와 파리에서 그린 그림이 다수를 차지했다.

스물다섯 나이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에 심취해있던 내게 어두운 색감에 제대로 미술교육도 받지 못한 반 고흐의 그림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 즈음은 한국일보 백상미술관에서 최연소 개인전을 하면서 자신감이 충만했던 시기여서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러던 중 프랑스 파리의 국립미술학교에 합격해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파리에 머물게 됐다. 그 이후 반 고흐에 대한 두 번째 인상이 다가왔다. 난 파리뿐 아니라 아를르, 오베르쉬르우아즈 등 반 고흐가 거쳐간 프랑스 지방을 서울에서 지인들이 찾아올 때면 몇 번이고 방문했다. 동생 테오와 나란히 묻힌 소박한 반 고흐 형제의 무덤과 성당이 있던 오베르쉬르우아즈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 예술이 무엇인지 알게 될 즈음 반 고흐의 생애와 작품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불멸의 화가Ⅱ:반 고흐 in 파리'전에는 파리에서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어서 대작보다는 소품 위주이지만 그가 짧은 시간 동안 창의력과 개성을 발휘하고 완성해가는 과정에 새삼 감탄했다. 불과 10년에 불과한 그의 화가로서의 삶은 파리에서의 2년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반 고흐는 미술사에서 후기인상파에 속하지만 그는 사실주의 회화부터 빠르고 탄탄하게 실력을 쌓아 올렸다. 그렇게 빠른 시간 동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독특한 화풍을 통해 완성한 것은 실로 대단하다. 이건 그의 천재성이라기보다 율동적인 리듬, 색채감을 얻기 위한 집념과 열정이라고 본다. 만약 반 고흐가 중년까지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파블로 피카소가 50대에 예술의 절정을 맞았던 것처럼 그 역시 지금 우리가 보는 화풍과는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다.

예술가의 초기작을 보면 그 사람의 성장과정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잘 팔리는, 똑같은 화풍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뒷심이 약하다. 훗날 평가 받을 수 있는 좋은 작가가 되려면 자신이 처한 환경과 문화가 어우러지며 도전할 필요가 있다. 50대인 지금 나는 그처럼 깊은 맛을 내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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