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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트렌드] 타인의 고통은 나의 구경거리?

문소영

“지하철 선로로 떠밀린 이 남자, 죽기 직전이다-끝장이다”.

며칠 전 미국 타블로이드판 일간지 뉴욕포스트는 부랑자에게 떠밀려 선로로 떨어진 남성이 플랫폼으로 올라가려 애쓰다 다가오는 전동차를 마주하는 장면을 1면 전면에 싣고 이런 헤드라인을 붙였다. 희생자나 유족에 대한 일말의 배려가 없는 이 ‘돌직구’적 헤드라인과 사진은 뉴욕포스트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이 이게 아니었던가 의심하게 만든다 - “영화가 아닌 실제상황에서 죽기 직전인 사람의 (흔치 않은) 사진을 구경하세요! 자세한 게 궁금해요? 궁금하면 신문 사요.”

미국 전역을 들끓게 한 뉴욕 지하철 사망 사건은 피해자가 한인 재미동포라서 한국에서도 비중 있게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한인이 아니었다 해도 인간보편적으로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를 많이 내포한 사건이다. 그 문제 중에 특히 충격적이고 혐오스러운 것은 바로 뉴욕포스트가 이런 사진을 실었다는 것과 그 헤드라인에 담긴 태도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표지
물론 프리랜서 사진기자가 피해자를 도울 생각은 않고 계속 셔터를 눌렀다는 점과 피해자가 선로에 떨어진 뒤 전동차가 들어오기까지 22초 동안 플랫폼의 누구도 도우러 나서지 않았다는 점도 중대한 이슈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목숨 걸고 도운 의인을 많이 봐온 한국인으로서는 특히 놀랍다. 미국 사회의 분노와 자성도 사진기자든 주위 사람이든 피해자를 돕지 않은 것에 주로 쏠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 초점을 맞출 것은 미국의 작가이며 문화평론가인 수전 손택(1933∼2004)이 그녀의 저서(사진)에서 말했던 “타인의 고통이 스펙터클한 구경거리로 소비되는 현상”이다. 그 현상의 극단적인 예를 뉴욕포스트의 사진과 헤드라인에서 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사진기자가 피해자를 돕지 않고 셔터만 누른 것과 연관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문제의 기자 아무르 아바시를 ‘수단의 굶주린 소녀와 독수리’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고 얼마 후에 자살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사진기자 케빈 카터에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비교는 카터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다.

카터의 사진은 아프리카 수단의 유엔 식량보급소로 가다 지쳐 쓰러진 해골같이 말라비틀어진 어린 소녀와 근처에 앉아 아이가 죽기를 기다리는 듯한 독수리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이 충격적인 사진을 보고 많은 사람이 소녀의 생사를 궁금해했으나 알 수 없었다. 그러자 사진을 찍은 후 독수리를 쫓았을 뿐 별다른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카터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카터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함께했던 사진기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곳은 식량보급소 바로 옆이었고, 잠시 아이를 놔두고 식량을 타러 간 부모들이 많았기에 소녀의 부모도 근처에 있을 것으로 추측됐으며, 사진기자들은 곧 식량수송기를 타고 다시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적어도 카터의 사진은 아프리카 기아의 참상을 어떤 텍스트보다도 강렬한 이미지로 전달해 보는 사람이 각성하게 하고 도움을 생각해 보게 하는 힘이 있다. 물론 수전 손택의 엄격한 시각에 따르면 이것도 “타인의 고통”을 소비거리로 전달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녀는 제3세계의 기아와 전쟁을 전하는 미국 다큐멘터리 사진이 거기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나라의 중산층에게 잠깐의 값싼 연민만 일으킬 뿐, 오히려 ‘저런 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신들의 행복을 재확인하는 수단으로 소비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카터의 사진을 보고 아프리카 구호기금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사진은 보도사진으로서의 올바른 사명을 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뉴욕포스트의 지하철역 희생자 사진은 무슨 메시지를 주는가? 이 사진이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어떤 행동으로 인도하는가? 만약 피해자를 외면하는 플랫폼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사진이라면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뉴욕포스트의 사진은 희생자와 그를 향해 돌진하는 전동차에 초점을 맞췄을 뿐이었다. 거기 담긴 메시지는 헤드라인 그대로 “이 남자는 곧 죽는다” 이것뿐이다.

대체 이런 사진을 왜 실은 건가? 뭐라고 변명해도 결국 사람이 죽기 직전의 모습을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소비재로서 실은 것밖에 되지 않는다. 손택이 인용한 영국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의 말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적지 않은 즐거움을 느낀다”가 소름 끼치게 울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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