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부안 行宮터에서

안대회

한 달 전에 늦가을 풍경을 마주하며 전라북도 부안을 다녀왔다. 여유가 없이 하루하루 보내던 터라 서울을 벗어나면서부터 온 몸에 한가로운 느낌이 밀려 왔다. 참으로 오랜 만에 맛보는 한가로움이다. 입에서 절로 ‘부생우득반일한(浮生偶得半日閑)’이란 시구가 나왔다. 뜬 인생에서 우연히 반나절 한가로움을 얻었다니 바쁜 일상에서 얻은 달콤한 짬을 잘도 표현했다.

부안을 찾은 목적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부안의 해변에 세워진 행궁(行宮)을 찾아보는 데 있었다. 먼저 부안 읍내로 들어가 식사도 하고 주위도 둘러보았다. 전에도 대여섯 번 들러서 구경한 적이 있기에 낯설지가 않다. 작은 읍은 여전히 포근하고 아늑하다. 군청은 조선시대 내내 관아가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있는데 근자에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다.

군청에서 발길을 돌려 그 오른편에 있는 부안향교를 올라가 봤다. 경사진 언덕 위에 세워진 이 건물은 다른 지역 향교와는 구조가 많이 다르다. 고즈넉한 향교에 서니 읍내 일대가 멀리까지 보이고, 늦가을 오후의 바람이 쓸쓸하다. 부안읍은 역사가 아주 오랜 관아 고을임에도 불구하고 옛 모습을 간직한 곳은 이곳을 빼면 거의 없다. 이곳만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중소도시가 다 그렇다. 관공서고 민가고 가릴 것 없이 대부분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다.

향교는 교육과 종교의 기능을 함께했기에 서구화의 급속한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아 보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찾는 사람이 드물어 적막하기는 어딜 가도 똑같다. 작은 도시지만 수백 년에서 천 년 동안 지방 관아가 있었던 곳에 백 년 이상 된 유적이 달랑 향교 하나 보이는 풍경은 가볍고도 얄팍해 못내 아쉽다. 도시의 규모에 비해 비대칭으로 높은 아파트가 서 있는 경관은 그 얄팍함을 한층 돋보이게 만든다. 경관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은 읍내 주위를 둘러싼 소나무 숲이다. 그 숲은 꽤나 오랜 세월을 견디며 이 경관을 지켜보고 있다.

해안으로 난 길을 따라 격포항을 향해 이동했다. 서해안에서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는 해변의 하나다. 그런데 새만금 공사로 이곳 경관은 크게 달라졌다. 격포진에서 이번 길의 목적인 행궁 터를 찾았다. 옛 문헌에 보면 행궁은 격포진에서 400m쯤 떨어진 곳에 있다고 했다. 옛 지도에도 그 위치가 표시되고 몇몇 역사서에도 행궁이 설치된 사실을 적어 놓았다. 그리고 이곳을 탐방한 학자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도 그 존재와 위치를 잘 모른다. 대부분은 그런 것이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지역민의 기억 속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고스란히 사라졌다.

일흔이 넘은 노인 한 분을 겨우 만났고, 예전 행궁이 있었던 곳이라며 가르쳐 주었다. 행궁이 있었던 곳을 아는 이는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했다. 터는 산 아래 풀밭이다. 늦가을 저녁의 쓸쓸함이 다시 밀려온다. 유사시에 국왕이 와서 묵을 건물로 조성했던 곳이지만 언젠가부터 존재조차 잊어졌다.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주변 승군을 시켜 관리하게 했던 곳이다.

격포항은 횟집들이 화려한 불빛을 흩뿌리며 여전히 활기차다. 바로 옆에는 거의 10년 전쯤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사용했던 전라좌수영 세트장이 있다. 관광 안내지도에도 큼지막하게 세트장이 표시돼 있다. 예전에는 꽤 많은 관광객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곳도 찾는 이가 많지 않기는 똑같다. 행궁은 아예 지도에 나타나 있지도 않다.

뭔가 모르게 주객이 바뀌어도 많이 바뀌었다. 원래 격포항과 그 주변은 서해안 방어에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라서 가까운 지역에 수군 진영이 두 군데나 설치될 만큼 중시됐다. 현재 수군 진영의 흔적이 봉수대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긴 하나, 좌수영 세트장은 위치 선정이 아주 잘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절묘하게 위치를 잘 선정했다고 해도 그것은 가짜다. 짝퉁은 아무리 진품과 비슷해도 짝퉁이다. 폐허로 남아 풀숲만 이루고 있는 터에 역사적 근거가 있고, 지도와 문헌을 통해 고증할 수 있는 행궁을 복원했다면 하는 짙은 아쉬움이 밀려온다. 수백 년 동안 이 지역을 상징하는 건물을 되살리는 것은 가짜를 만드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역사의 향취가 서린 지역으로서 지역의 위상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이 행궁은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려고 애쓴 조선왕조의 고민이 담긴 시설이었다. 부안을 찾는 관광객이 적지 않은데, 아름다운 자연환경 가까운 곳에 행궁까지 관람하며 지난 역사의 숨결까지도 탐문하는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방자치단체마다 파괴됐던 문화유적 가운데 문화관광 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표적 유적을 복원하는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의욕을 갖고 있다 해도 번듯한 유적이 없는 곳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행궁은 폐허가 된 터 위에 되살려내도 좋은 과거의 유적이다. 국토의 어디를 가든 새 것과 낡은 것이 다양한 양식을 보이며 공존하는 경관을 마주친다면 멋질 것이라고 꿈꿔 본다.

- 문화일보 2012.12.07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120701033737191002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