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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라고?

오미환

이번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4일 첫 TV 토론회 직후 '다카키 마사오'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충성 혈서를 써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한국 이름 박정희'를 거론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과 해방 후 쿠데타, 장기 독재를 비판한 것이 일으킨 현상이다.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집중 공격한 이 후보의 이날 발언과 태도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속이 다 시원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싸가지 없는 X'이라는 욕도 들린다. 어쨌거나 덕분에 평소에 역사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다카키 마사오를 알게 됐다. 

말 많고 탈 많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26일 개관한다. '박정희 찬양관' '정권 홍보관'이 될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산 현대사박물관이다. 거기서 우리는 다카키 마사오를 비롯한 한국 현대사의 오점과 어둠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8ㆍ15 경축사를 통해 건립 계획을 발표했을 때부터 이 박물관의 초점은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맞춰졌다. 건립위원회는 '고난과 역경을 딛고 놀랍게 발전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여줌으로써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사회 통합으로 국가 미래 발전의 동력을 확보한다'는 취지를 거듭 강조해 왔다. 이대로라면 독재와 인권 유린 등 국가가 저지른 폭력은 되도록 가려지거나 발전 과정에 일어난 불상사 정도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비판적 역사학계가 가장 우려한 것도 이 점이다.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빠진 채 국가성공사관에 입각한 현대사박물관은 자아도취적 국가홍보관에 불과하며 세계의 비웃음을 살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이니 계획된 일정을 모두 중단하고 전면 재검토하라고 촉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달 가 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일부에서 우려하듯 박정희 찬양관은 아니었다. '5ㆍ16은 군사정변' '인혁당 사건은 사법살인'등으로 박정희 정권의 죄와 어둠이 설명문에 씌어 있긴 했다. 하지만 잘 보이게 구성된 건 아니고, 산업화와 민주화로 뭉뚱그린 여러 사건 중 하나로 나열된 상태였다. 거기서 견결한 역사의식이나 반성, 피해자들의 고통과 눈물을 느끼려면, 특별히 애를 써야 할 듯하다. 

일방적으로, 졸속으로 진행된 건립 추진 과정에 대해서도 비판이 많았다. 당초 2014년 연다고 알려졌던 것이 2013년 2월, 12월, 올해 11월 22일로 계속 앞당겨지더니, 한 달 뒤인 26일로 늦춰졌다. 이 대통령의 임기 내 업적으로 남기려고 개관 시점을 계속 당겼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관장도 안 정해진 상태에서 11월 22일 열려다가 늦춘 것은 관장으로 내정됐던 인물이 박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의장으로 가서 재공모를 하게 된 데다 개관 준비도 덜 된 탓이다. 전시장을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채울 것이냐는 구성안은 올해 상반기에나 나왔다. 국고 448억원이 들어가는 사업을 형식적인 공청회 한 번 없이, 3년 넘게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추진하다가 개관을 몇 달 앞두고 허둥지둥 서두르다니, 동네 구멍가게 개업도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4개 전시실 중 가장 넓은 제3 전시실'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은 역대 대통령 코너로 끝난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현 이 대통령까지 10명의 초상화를 걸고 대통령 집무실 책상과 기자회견 탁자를 갖다 놓았다. 그 책상에 앉아서, 그 탁자 앞에 서서 대통령이 된 것처럼 느껴보라고 마련한 것이란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 박물관은 역사를 성찰하지 않고, 눈요기로 구경하거나 오락으로 체험하라고 권하는 듯하다. 대선이 끝나면, 이 방에 또 다른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리겠지.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강요하는 자랑스럽지 않은 현대사박물관에 초상화로 걸릴 새 대통령만은 부끄럽지 않은 인물이길 바란다.

- 한국일보 2012.12.07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2/h20121206202507244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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