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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산 벽화 스캔들

손수호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는 ‘키스’에서 보듯 남녀의 관능적 사랑을 주제로 삼은 작품이 많다. ‘유디트’처럼 여성의 치명적 유혹을 다룬 그림도 있다. 그러나 클림트는 에로티즘뿐만 아니라 사회성 강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것이 1900년 전후로 빈 대학의 강당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한 ‘철학’ ‘의학’ ‘법학’ 연작이다. 

이들 작품은 고정관념을 전복한 것이어서 격렬한 논쟁을 몰고 왔다. ‘철학’의 경우 지혜의 위대함이 아니라 지식세계의 모호함을 엽기적으로 묘사했다. ‘의학’은 생명을 치료하는 학문의 성격보다 죽음의 운명을 표현했다. ‘법학’ 역시 정의의 화신을 그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배반하고 문어(文魚)가 죄수를 칭칭 감고 있는 장면을 그려 법의 위선을 드러냈다. 

빈의 지식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여론은 학문에 대한 모독으로 규정했고 ‘외설적이며 성도착적 표현’이라는 이유로 기소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해 클림트는 “자유롭고 싶다. 검열은 필요 없다”고 항변하고 제도권 미술을 박차고 나온다. 빈 대학에서 쫓겨난 작품은 2차대전 때 소실되었으나 지금은 습작으로 남은 ‘의학’마저 명품 대우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2010년 벽화 스캔들이 일어났다. 이반씨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2007년 통일부 요청으로 도라산역 통일문화광장에 생명과 평화를 염원하는 길이 97m, 폭 2m짜리 벽화 14점을 설치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작가 허락 없이 철거해 불살라 버린 것이다. 외설스러운 표현이 있다, 일반인이 찾는 공간에 음침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격렬히 반발한 작가는 이듬해 소송에 들어갔다. 정부 의뢰를 받아 제작한 작품을 일방적으로 철거한 것은 저작인격권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걸작인 것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시체가 나뒹구는 엽기적 표현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그렸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올 3월에 내려진 1심에서 법원은 8000만원의 제작비를 받고 작품을 넘긴 이상 국가의 소유권 행사에 따른 벽화 파괴는 정당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최근 내려진 고등법원 판결은 작가 손을 들어줬다. 작품을 정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예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위자료 1000만원을 주라고 했다. 진일보한 판결이다. 예술작품을 물건처럼 다루거나 검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 국민일보 2012.12.07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696735&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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