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안동권씨족도’

최영창

조선시대 역대 왕 27명 가운데 제6대 왕 단종(재위 1452∼1455)처럼 왕위 계승의 정통성이란 측면에서 완벽한 신분을 타고난 임금도 없었다. 1441년(세종 23) 세종의 맏손자(원손·元孫)이자 왕세자(문종)의 맏아들로 태어난 단종은 1448년(세종 30년) 왕세손으로 책봉됐다.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가 된 단종은 2년 뒤 문종이 재위 2년만에 급서하는 바람에 왕위에 올랐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래 선대 왕의 재위시절 적장자((嫡長子) 또는 적장손(嫡長孫)으로 태어나 왕위에 오른 임금은 단종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완벽한 신분을 타고난 단종은 계유정란(1453)을 일으킨 수양대군(세조)에게 1455년 왕위를 빼았기고 2년 뒤 강원도 영월 유배지에서 죽음을 당했다. 단종 이후에는 각각 성종과 중종의 맏아들(원자·元子)로 태어나 임금이 된 연산군과 인종이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확보한 군주였다. 그런데 연산군은 반정(反正)으로 쫓겨나고 인종은 단명(短命)하는 등 신분상 흠 잡을 데 없었던 왕들의 최후가 좋지 않았던 점이 눈길을 끈다.

비운의 왕 단종의 외가쪽 족도(族圖)가 최근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1999년 공개 구입해 소장해온 유물로, 2011∼2012년 보존처리와 연구를 진행한 결과 단종의 ‘외증외가(外曾外家·외조부의 외조) 족도’로 밝혀졌다. 단종의 혈통을 천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팔고조도(八高祖圖) 가운데 하나로 외가쪽 고조인 권여온(權呂溫)을 기점으로 현손(玄孫)인 단종과 내외후손이 수록돼 있어 ‘안동권씨족도’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비단 바탕에 묵서(墨書)된 두루마리 형태의 족도에 기록된 인물과 관직을 분석한 결과, 제작시기는 1454년에서 1456년 사이로 추정됐다. ‘안동권씨성화보’(1476) 등 조선 초기 족보들과 달리, 첩자(妾子)·첩녀(妾女) 등 적서(嫡庶)를 구분하고 인물들의 관계를 붉은 색 계선으로 표시했으며 두루마리 장황의 형태가 조선 초기 공신교서 등과 유사해 국가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는 게 국립민속박물관 측의 견해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가족을 중심으로 사육신 사건(1456) 연루자들이 대거 기재돼 있고 7건의 동성동본 사례가 확인되는 등 족도는 앞으로 연구가 진행되면 단종과 조선전기 사회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사료가 될 전망이다.

족도가 공개되기까지 국립민속박물관이 기울인 노력도 소장 유물의 보존과 연구의 모범 사례로 주목된다. 1999년 350만 원을 주고 산 ‘가승’은 구입 당시 만지면 바스러질 정도로 열화(劣化)가 진행된 상태였으며 자료 앞부분도 없어지고 상단부는 배접지만 남아 있었다. 구입 후 ‘세계도’로 유물등록이 된 족도는 2006년 국립민속박물관에 서화 보존처리 담당자가 생기고 손상된 부위를 보강하는 열화 비단이 자체 개발되면서 빛을 보게 됐다. 

자외선(UV)을 쬐어 만드는 인공 열화견 개발을 완료한 뒤 2011년부터 족도의 본격적인 보존처리와 연구에 착수해 근 2년만인 이번 달에 전시와 학술세미나 개최, 연구성과를 담은 유물보존총서 발간 등을 진행했다.

족도의 명칭에 대한 재검토 및 추가 연구가 전제돼야 하지만, 국립민속박물관 측은 2013년 중 족도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지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열린 학술세미나 참가자들이 한결같이 지적했듯이, 족도 프로젝트는 학제(學際)간 협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가 전국의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지에 소장돼 있는 유물들에 대한 보존처리와 연구에 하나의 전범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문화일보 2012.11.28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112801033830074002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