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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반 고흐' 전을 보고

최진환

<…/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지만 / 당신의 사랑은 진실했어요 / 어떠한 희망도 없을 때 / 별이 빛나는 그 밤에 / 당신은 여느 연인들처럼 삶을 끝냈죠 / 빈센트, 당신에게 이 말은 하고 싶었어요 /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에겐 세상이 어울리지 않았다는 걸… >

돈 맥클린이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를 추모하며 부른 노래 '빈센트'의 일부이다. 애절한 내용과는 달리 감미로우면서도 잔잔한 선율은 언제 들어도 메마른 가슴을 촉촉히 적신다. 서른일곱 해의 짧은 삶을 더없이 우울하고 외롭게 살다 간 천재화가 반 고흐. 그에게 바치는 노래를 읊조리며 '불멸의 화가Ⅱ-반 고흐 in 파리'전을 최근 둘러봤다. 

2007년 회고전에 이어 5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파리에서 자유분방하고 생기 넘치는 인상주의 화풍을 흠뻑 빨아들여 자신만의 세계를 정립할 때의 작품들이 나왔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역시'탕귀 영감'과 자화상들이다. 노랑 초록 파랑 등 현란한 원색들이 거침없는 붓놀림에 따라 향연을 펼치는 가운데 깊은 생각에 잠긴 탕귀 영감의 진지한 표정에는 그 영혼까지도 담겨 있는 듯하다. 전시 포스터로도 쓰인 '회색 펠트모자를 쓴 자화상'은 광기 어린 형형한 눈빛, 괴팍하게 생긴 광대뼈, 신경질적으로 뻗은 턱수염이 '늑대인간'을 연상시킨다. 섬뜩할 정도로 강렬한 시선은 왜, 무엇을 향한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정물화 두 점에서 찾아보았다. '새 둥지가 있는 정물'과 '뒤집어진 게가 있는 정물'. 두 작품이야말로 그가 암울한 인생을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는지와 이를 위해 발버둥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절박한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다. 어둡고 으스스한 분위기의 '새둥지'는 땅바닥에 있는 세 개의 둥지와 그 중 하나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새끼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유난히도 새둥지를 좋아했던 그에게 둥지는 다름아닌 가정이었다. 새끼는 그가 품은 희망이었다. 

'나는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가정의 기쁨과 슬픔을 그려보고 싶어.'그가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동안 부인은 바느질을 하고, 아이는 마당에서 새둥지를 찾아다니며 노는 평온한 가정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런 소박한 꿈조차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남편을 여읜 외사촌 누이를 찾아가 결혼해 달라며 자신의 오른손을 등불에 올려놓는 소동을 벌였고, 매춘부에 이어 열두 살 연상인 여성을 아내로 삼으려 했지만 그 뜻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절규했다.'나는 정열을 가진 남자이다. 만일 여자가 없다면 차가운 얼음이 되거나 돌이 되거나 파멸해 버릴 것이다.'

아를의 노란집에서 함께 살았던 폴 고갱마저 의견대립으로 떠나자 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고, 그후 발작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직후 그린 그림이 '뒤집어진 게'. 붉은 색과 녹색을 절묘하게 대조시키고, 과감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붓질로 배의 터럭에까지 생명을 불어넣었다.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바둥거리는 게, 그것은 어쩌면 그 자신이었다. 아무리 몸부림 쳐도 헤어날 수 없는 현실과 운명에 그는 끝내 절망했다. '이제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다.'그의 유언이다. 

시대를 앞서 가는 천재들이 늘 시대와 불화했다지만 그는 유난히 심했다. 따뜻하게 감싸준 부모도, 애틋한 사랑을 받아줄 여인도, 동행할 친구도, 그의 작품을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다. 폴 세잔조차 반 고흐의 그림을 '미친 사람의 작품'이라고 폄하했다. 반 고흐에게 그림은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림 그리는 일은 구원과 같았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테니까.'

'인생을 걸고 이성의 반을 대가로 치르며 토해냈다'는 그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 같다. 병든 조개가 진주를 키워내듯 그는 찬란한 예술과 진실을 일구었다. 시시각각 뻗쳐오는 죽음의 유혹에 맞서 구원의 붓질을 이어갈 때까지 보여준 그의 도저한 인생과 예술혼을 세상은 너무 늦게 알아보았다. 우리를 쏘아보는 그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오래도록 따갑게 느껴진다.


- 한국일보 2012.11.26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2520230211870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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